영화 벤허 결말 스포 줄거리 평가 해석 원작

영화 벤허 결말 스포 줄거리 평가 해석 영화 벤허 원작
개봉일: 1962년 (대한민국)
감독: 윌리엄 와일러
제작비: 1520만 달러
원작자: 루 월리스
수상: 아카데미 작품상,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아카데미 음악상
《벤허》(Ben-Hur)는 1959년 미국에서 개봉된 서사 영화이다. 감독은 윌리엄 와일러, 제작은 메트로-골드윈-메이어(이하 MGM)의 샘 짐발리스트, 주요 출연진은 찰턴 헤스턴, 스티븐 보이드, 잭 호킨스, 휴 그리피스, 하야 해러릿이다. 원작은 1880년 루 월리스가 쓴 《벤허: 그리스도의 이야기》이며 1925년 개봉된 동명의 무성영화를 리메이크한 판이기도 하다. 각색 작업은 칼 턴버그가 맡았으나 맥스웰 앤더슨, 새뮤얼 베어먼, 고어 비달, 크리스토퍼 프라이가 힘을 보탰다.

벤허는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장르의 하나인 기독교적인 호화 스펙터클 영화의 견본으로 꼽힌다. 제작 당시 기준으로 역대 가장 거대한 규모의 세트장에서 촬영된 동시에 가장 많은 제작비(1517만 5천 달러)가 투입되었다. 의상 제작자 엘리자베스 해펜든은 영화 내 의상 제작자 100명, 프리즈·조각상 제작자 200명으로 구성된 워크숍을 통솔했다. 촬영은 1958년 5월 18일 시작되어 1959년 1월 7일까지 진행되었고 주 6일, 하루 12~14시간 작업하였다. 사전제작은 1957년 10월 무렵 치네치타에서 시작되었으며 후반 작업에는 6개월이 걸렸다. 로버트 서티즈 및 MGM 임원진의 결정으로 와이드스크린 형식으로 촬영되었다.(다만 와일러 감독은 이 형식을 아주 싫어했다.) 1만 명 정도의 엑스트라, 낙타 200마리, 말 2500마리가 촬영에 동원되었다. 해전 장면은 캘리포니아주 컬버시티의 MGM 스튜디오 내 야외 촬영 부지에 거대한 물탱크를 설치하고 거기에서 찍었다. 작품 중 나오는 9분 분량의 전차경주 신은 영화사에 있어 매우 유명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배경 음악은 로저 미클로시가 작곡, 연주하였고 그의 음악들은 단일 영화작품에 쓰인 것으로는 당대에 가장 긴 분량이었으며 이후 15년 이상 미국 영화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홍보 비용으로 1470만 달러가 소요되었으며 1959년 11월 18일 뉴욕 시 로우 주립 극장에서 최초 개봉되었다. 영화 입장수익은 1959년 발표작 중 최고였으며 당시 기준으로 역대 집계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후 두 번째였다. 벤허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와일러), 남우주연상(헤스턴), 남우조연상(그리피스), 촬영상(서티즈) 등 총 11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으며 이 기록은 1997년 《타이타닉》에 와서야 깨지게 되고 타이기록은 2003년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다시 수립하게 된다. 이외에도 극영화 부문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스티븐 보이드) 등 골든 글로브상 세 개를 수상하였다. 벤허는 1998년 미국 영화 연구소(이하 AFI) 선정 최고영화 100선 중 72위, AFI 선정 최고 서사영화 10선 중 2위를 차지했다. 2004년 미국 국립 영화 보존 위원회는 벤허를 미국 의회도서관의 미국 국립 필름 등록부에 등재 하였으며 그 이유를 '문화적, 역사적, 심미적으로 의의가 큰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대한민국의 유선방송 MBC Drama에서도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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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관점을 떠나서라도 이영 화는 걸작이다
뒤주(gneg****) 2013.06.1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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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뛰어넘는 명작. 이걸 50년대에 만들었다는 자체가 믿기 어렵다.
미오미오(miom****) 2013.04.2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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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남긴 가장 탁월한 작품중 하나. 마치 관객으로 하여금 고대에 존재하는 걸로 착각하게 만드는 작품
adrien0307(free****) 2013.07.0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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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로 만들 수 없는 불후의 명작
멋진하루(clip****) 2013.05.3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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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단지 예수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평점을 깎는 무지한 것들은 영화 볼 자격이 없다.
캐안쓰읍(smrm****) 2013.02.26 04:15

로마 제국 시대, 유대 청년 벤허의 시련을 통해 신의 섭리를 깨닫게 하는 영화다. 남북전쟁영웅이었던 루 월리스 장군이 1880년에 쓴 베스트셀러 소설 〈벤허 :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1925년 프레드 니블로 감독이 연출한 무성영화 〈벤허〉를 1959년에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리메이크했다. 제작비 1500만달러를 들여 만든 초호화 액션 스펙터클 대작으로 20세기 최고의 종교영화로 손꼽힌다.
서기 26년 로마 제국 시대. 유다 벤허는 예루살렘의 제일가는 부호이자 귀족이다. 어느 날 신임 총독이 부임하고 벤허의 옛 친구인 멧살라가 주둔 사령관으로 온다. 멧살라는 벤허에게 로마에 반역하는 유대인을 검거해줄 것을 요구하며 함께 일할 것을 권유하지만 유대민족의 자부심을 가진 벤허는 이를 거부하고, 둘은 적이 된다.
다음날 벤허는 여동생 티르자와 집 옥상에서 신임 총독의 부임 행렬을 지켜보는데, 티르자의 실수로 기왓장이 총독의 머리에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멧살라는 벤허가 무고한 줄 알면서도 유대인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그에게 총독 암살 음모를 꾸민 반역죄를 적용한다. 벤허는 노예로 팔려가고 어머니 미리암과 티르자는 감옥에 보내진다.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갤리선 노예로 고된 삶을 이어가던 중 벤허가 타고 있는 선단이 해적선의 습격을 받게 되는데, 그때 로마의 집정관인 아리우스를 구해준 공로로 그는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고 아리우스의 양자가 된다. 자유인이 된 벤허는 고향으로 돌아가 옛사랑 에스더와의 사랑을 확인하고,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한 멧살라를 향한 복수를 계획한다.
아랍 부호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에서 열리는 전차 경주에 참가한 벤허는 멧살라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게 되고, 벤허의 전차를 전복하려던 멧살라는 자신의 꾀에 빠져 죽게 된다. 한편 미리암과 티르자는 투옥살이 중 한센병에 걸렸고, 벤허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한센병 마을 골짜기로 가 숨어 지낸다.
멧살라의 유언으로 가족의 생사를 알게 된 벤허는 극적으로 가족을 만나게 되는데, 당시 나사렛에서 예수의 설교에 감화받은 에스더의 권유로 벤허는 가족을 데리고 예수에게로 간다. 마침 그날이 예수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던 날이었는데, 벤허는 채찍을 맞으면서도 예수에게 물을 가져다주고 그가 자신이 노예일 때 나사렛에서 물을 가져다준 은인임을 깨닫게 된다. 예수가 숨을 거두고,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의 한센병이 낫게 된다. 기적을 목격한 벤허는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
〈벤허〉는 ‘20세기 최고의 종교영화’로 불리는 작품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점철된 미국에서 종교영화는 흥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장르였다. 기독교적인 배경은 대규모 액션 신과 볼거리를 만들 구실을 제공해주었기에 성경이 곧 시나리오의 보고로 통했다. 마침 파라마운트사가 〈십계〉(1956)로 거액의 수익을 올리자 MGM 역시 종교영화로 승부수를 던져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벤허〉를 선택했다.

실제 성경 속 인물을 다루는 대신 남북전쟁영웅이었던 루 월리스 장군이 1880년에 쓴 베스트셀러 소설 〈벤허 : 그리스도의 이야기〉 속 인물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작이 그리스도의 행적에 초점을 둔 것과 달리 영화 〈벤허〉의 스토리 라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유다 벤허의 삶을 따라간다. 같은 종교영화인 〈십계〉가 종교적인 테마를 보다 직접적으로 강조한다면 윌리엄 와일러 감독은 인간을 통한 휴머니즘을 통해 에둘러 종교적인 메시지를 끌어내는 방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처음이 나사렛에서 예수가 태어난 일화이기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벤허가 서로 물 한바가지를 떠다 주는 장면이 등장하며, 마지막 부분에서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과 기적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기독교적인 주제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결국 이 영화는 로마 폭정기에 그리스도의 용서를 보여주기 위한 또 하나의 방식으로 읽힌다. 한편 벤허와 멧살라의 관계는 동성애적 관점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멧살라가 유년 시절부터 벤허에게 애정을 고백했다는 설정으로 〈벤허〉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이다. 〈벤허〉의 대본 집필에 참여한 5명의 시나리오작가 중 고어 비달이 훗날 자서전에서 동성애적인 서브 텍스트를 넣자는 주장을 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1950년대의 분위기상 노골적으로 동성애를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40번의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거치는 동안 동성애적 요소를 넣었다고 밝혔다.
〈벤허〉는 당시 영화의 평균 제작비의 4~5배에 달하는 1500만달러를 투입한 초대형 액션 대작으로, 러닝타임 212분, 제작기간 10년, 촬영 1년, 세트제작기간 2년, 출연진 10만명이라는 스케일의 스펙터클 액션 대작이다.
막대한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느냐는 우려의 시선이 컸던 만큼 촬영에 앞서 사장 마이크 코널리가 “MGM의 장래는 〈벤허〉의 성패에 달렸다”라고 부탁했다는 일화가 있다.
1950년대 본격적인 TV 보급으로 영화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대규모 스튜디오들은 극장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기술력으로 국면 전환을 모색했는데, 70mm 와이드 스크린, 입체음향의 기술력을 총동원한 〈벤허〉 역시 그런 의도에서 출발한 영화다.
MGM은 흑백영화로 재미를 본 오리지널 〈벤허〉를 컬러판 와이드 스크린으로 만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벤허〉의 프로듀서 샘 짐발리스트는 ‘서사극 영화 전문가’로 통했는데, 〈쿼바디스〉(1951)의 영화음악, 촬영, 세트디자이너 등의 인력을 다시 〈벤허〉에 고용했고, 세트와 의상도 적극 활용했다. 화제성에 힘입어 〈벤허〉는 7500만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리며 제작사인 MGM을 파산 위기에서 구했다.

샘 짐발리스트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에게 당시 연출비로는 최고 개런티인 100만달러를 제안했다. 서사극에 경험이 없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벤허〉를 연출하는 것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는데, 그 해결책으로 샘 짐발리스트가 후반부의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프로덕션이 끝나기 두달 전 그가 격무로 인한 과로사로 사망하자 MGM은 윌리엄 와일러 감독을 설득했고, 그가 연출을 도맡게 됐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은 무성영화 〈벤허〉 때 조감독으로 참여했다. 연출 방식은 까다로울 정도로 섬세하고 디테일한 걸로 유명했다.
일례로 찰턴 헤스턴은 벤허가 노예 신분에서 풀려나고 방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찍을 때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간단한 장면을 8번이나 찍었다고 한다. 도대체 뭐가 잘못됐느냐고 묻자, 감독은 걸어 들어올 때 방 안의 도자기를 살짝 건드려서 미세한 소리가 났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촬영, 편집의 기술력이 총동원된 해상 전투 장면과 전차 경주 장면은 스펙터클한 장면의 대명사로 통한다. 특히 15분여에 달하는 전차 경주 장면은 배경음악 없이 관중의 함성과 말발굽 소리만으로 경기의 긴장과 박진감을 표현한 영화사의 명장면이다.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를 사용하지 않은 100% 수작업 장면으로 대부분 배우들이 직접 연기를 했다. 찰턴 헤스턴은 한달간, 뒤늦게 캐스팅된 스티븐 보이드는 2주간 전차 모는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2만2천평 규모에 달하는 대형 전차 경기장은 직접 지은 세트다. 이 장면에만 제작비 100만달러가 투입되었으며, 카메라 6대, 엑스트라 5만명이 참여했으며 촬영기간만 5주가 걸렸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오, 신이시여, 과연 이게 제가 만든 작품입니까?”라는 말이 화제가 됐는데, 해상 전투 장면과 전차 경주 장면은 제2 제작진 연출자였던 앤드루 마튼과 야키마 가누트가 연출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졌다. 말년에는 윌리엄 와일러도 자신의 공로를 부인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20세기 최고의 걸작 <벤허>가 7월 7일 관객들을 찾아온다. <벤허>는 서기 26년 로마 제국 시대, 예루살렘의 유태 귀족 유다 벤허(찰톤 헤스톤)가 옛 친구이자 예루살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신임 총독 사령관 메살라(스티븐 보이드)의 계략으로 모든 것을 잃고 노예 신세로 전락한 뒤, 다시 무너진 지위와 가족을 되찾기 위해 메살라와 목숨을 건 대결을 감행하는 과정을 장대하게 그려낸 스펙터클 고전 드라마다.

영화 <벤허>는 로마 시대, 유대인 벤허의 삶과 거룩한 복수를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담은 대서사 액션 블록버스터로 1880년 남북전쟁의 영웅인 루 월리스 장군이 쓴 소설 벤허: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당시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20세기 최고의 명작 중의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벤허>는 1925년 프레드 니블로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무성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기도 하다. 원작이 그리스도의 행적에 초점을 둔 것과 달리 영화 〈벤허〉의 스토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유다 벤허의 삶을 따라간다. 종교적인 테마를 직접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기독교적인 주제의식을 명확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각색해 많은 이들에게 쉽게 다가서는 결과를 낳았다.
영화 <벤허>는 필름 길이가 총 34만 미터에 달하는 장대한 고전 명작이다. 영화 최초 컷 길이는 4시간 30분에 달했으며, 최초 개봉 당시 압도적인 찬사와 함께 2,040만 9,000달러라는 수익과 함께 1959년 개봉 영화 중 최고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 또한, 1969년 재개봉 당시 1,010만 달러의 추가 수익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국내에서는 1962년 대한극장에서의 70mm 상영으로 개봉한 후 약 5개월간 장기 상영, 폭발적 인기를 구가하며 당시로는 엄청난 수치였던 70만명이 <벤허>를 감상했다.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수치들과 복수와 구원, 용서에 대한 장대한 대서사시로 대작의 압도적 감동을 짐작케 하는 <벤허>의 재개봉 소식에 영화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아카데미 역사상 최다 수상의 전설이 된 기록, 그리고 신화! 스펙터클 클래식 <벤허>는 1960년 제3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12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촬영상, 음악상, 미술상, 의상상, 음향상, 편집상, 특수효과상 등 총 11개 부문에서 상을 휩쓸며 역대 최다 수상을 기록했다. 아카데미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신화적 기록은 40년 뒤 11개 부문을 수상하며 타이 기록을 세운 1997년 〈타이타닉〉, 2003년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이전까지 유일하였으며, 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특히, 리메이크작으로는 유일한 최다 수상을 기록, 제작 시기가 1950년대로 다양한 한계가 존재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누구도 넘어서지 못하는 역대 최고의 전설적인 수치임이 틀림없다.

이외에도 영국아카데미 작품상, 뉴욕영화비평가협회 작품상, 미국감독조합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벤허>는 미국 영화 연구소(AFI, 미국 국립 예술기금이 1967년 창립한 독립 비영리 기관)가 선정한 여러 '최고'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AFI 미국 영화 100년 시리즈는 1500명이 넘는 예술가·학자·비평가·역사가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당대 인기·역사적 의의·문화적 영향력 등을 고려하여 선정한 영화 목록들이다. 이 중 <벤허>는 《미국 영화 베스트 100》에서 72위, 《스릴 있는 영화 베스트 100》에서 49위, 《영화음악 베스트 100》에서 21위, 《감동적인 영화 베스트 100》에서 56위, 《서사 영화 베스트 10》에서 2위에 올랐다. 유다 벤허와 메살라는 《히어로와 악역 베스트 100》에 선정되었다. 2004년 미국 국립 영화 보존 위원회는 <벤허>를 미국 국립영화 등록부 등재 대상으로 선정했는데 그 이유를 '문화적·역사적·심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기술했다.
1950년대 본격적인 TV 보급으로 영화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대규모 스튜디오들은 극장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기술력으로 국면 전환을 모색했는데, 70mm 와이드 스크린, 입체 음향 등의 기술력을 총동원한 <벤허> 역시 그런 의도에서 출발한 영화다. <벤허>는 당시로는 천문학적인 제작비였던 1,500만 달러라는 제작비, 제작 기간 10년, 세트 제작 기간 2년, 출연진 10만 명이라는 압도적인 수치들로 그 경이로운 스케일을 자랑한다. 스펙터클 클래식 <벤허>는 장대한 역사 대작으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두 도시, 로마와 예루살렘을 충실히 고증한 로케이션과 웅장한 세트를 마련했다. 바로 이 거대한 로케이션 장소에 수만명의 배우와 엑스트라를 동원, 일반적인 35mm카메라의 두 배로 폭넓게 보이는 70mm 카메라로 촬영하여 보다 큰 그림과 압도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벤허>는 카메라의 이동을 최소화하고 장쾌한 장면을 그대로 재현, 극의 사실성을 더해 관객을 그 시대 로마와 예루살렘으로 그대로 몰아넣는 효과를 준다. 이처럼 최근 70mm 필름 + 울트라 파나비전 렌즈 촬영으로 이슈가 되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8>, 광활한 사막의 풍광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걸작 <아라비아의 로렌스>, 사막과 설원을 스크린으로 그대로 옮겨와 시각미의 극치를 선보이는 <닥터 지바고> 등의 장대한 서사 영화들이 70mm 카메라로 촬영된 바 있으며 <벤허> 역시 뛰어난 해상도와 함께 광활한 비주얼로 영상 스케일 미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특히, 오는 7월 7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벤허>는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슈퍼플렉스 G관에서 상영되어 그 의미를 더하는데, 이는 70mm카메라로 웅장하게 촬영된 <벤허>의 압도적 비주얼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될 예정이다. 슈퍼플렉스 G관은 화면 크기 가로 34m, 세로 13.8m로 세계에서 가장 큰 화면 크기로 기네스 월드 레코드에 등재된 바 있으며, 20세기 최고의 걸작 <벤허>를 세계 최대 규모의 초대형 스크린에서 관람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로 영화 팬들의 기대감이 최고조로 증폭되고 있다.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후반부의 스펙터클한 15분간의 전차 경주 장면의 배경에는 총 기획에만 1년, 촬영 기간 3개월, 100만 달러의 제작비, 1만 5천 명이 4개월간 연습했다는 신화적인 수치들이 자리하고 있다. 배경음악 없이 관중의 함성과 말발굽 소리만으로 경기의 긴장과 박진감을 생생히 표현한 이 신은 압도적인 스케일과 박진감 넘치는 생생한 액션을 위해 촬영, 편집의 기술력이 총동원되었다. 실존했던 예루살렘의 고대 전차경주장을 철저히 고증한 세트를 3개월 동안 마련했고, 촬영장의 면적은 2만2천평으로 당시 역대 어느 영화보다도 넓었다. 또한 78마리의 말을 수입해 훈련시켰다. 촬영은 3개월 동안 이어졌고, 100만 불의 비용이 들었으며, 촬영 종료까지 말들이 달린 거리는 총 320 킬로미터였다. 1957년 11월 유고슬라비아와 시칠리아에서 78마리의 말을 수입해 와서 할리우드 동물 관리자 글렌 랜들은 이 말들을 영화 속 '쿼드리가'(네 마리 말이 끄는 이륜 전차) 연기를 제대로 수행하도록 훈련시켰으며 수의사 한 명, 마구사 한 명, 마부 20명을 고용하여 말을 관리하고 경주 장면에 적합한 상태로 훈련시키는 임무를 맡겼다.
영화 촬영은 1958년 5월 18일 시작되어 1959년 1월 7일까지 진행되었고 주 6일, 하루 평균 12시간을 작업하였다. 1만 명의 엑스트라, 낙타 200마리, 말 2500마리가 촬영에 동원되었다. 극대화된 리얼리티를 위해 주연배우들은 스턴트 장면을 대부분 직접 연기했다. 또한, 당시 영화 <벤허>를 촬영한 필름의 총 길이는 34만 미터였고, 영화 최초 컷 길이는 4시간 30분에 달했다. 윌리엄 와일러는 당시 자신의 목표는 이 길이를 3시간 30분으로 줄이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영화 편집 결과 상영시간은 222분으로 줄어들었으며, 원래 필름 길이 34만 미터 중 5800 미터만 남았다. 그럼에도 이 분량은 당시 역대 개봉작 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십계>에 이어 세 번째로 길었다. 촬영 분량 대비 실제 영화에 삽입된 부분의 비율은 263대 1이었고, 이는 당시 기준으로 역대 영화 중에서 최고 수준에 달한다. 이처럼 기록적인 수치들과 경탄할 만한 제작진들의 노력으로 세계 영화사의 전설로 남을 전차경주신이 탄생한 것. 이제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생생한 현장감의 전차 경주신을 초대형 스크린에서 관람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에 영화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벤허>의 윌리엄 와일러 감독은 1930년대와 40년대에 ‘장르 영화의 장인’이라는 평가와 함께 <폭풍의 언덕><작은 여우들><미니버 부인> 등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입지를 다졌고, 1950년대에 들어서는 오드리 헵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우정 어린 설득><벤허> 등을 연출해 관객과 평단의 열띤 찬사를 받으며 제 2의 전성기를 누린 바 있다. 또한 <미니버 부인><우리 생애 최고의 해><벤허>로는 격조 높고 정통성 있는 연출력을 인정받아 아카데미 감독상을 세 번이나 거머쥐는 등 20세기 최고의 명감독임을 입증했다. 한편, 윌리엄 와일러의 연출작 중 가장 품격있는 명작이라 평가받는 <벤허>는 제3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11개 부문 수상을 휩쓸며 “신이시여, 이 영화를 정녕 제가 만들었단 말입니까”라는 수상소감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처럼 전설적 명감독 윌리엄 와일러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고전의 바래지 않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수많은 명작들을 탄생시킨 바 있다. 그의 연출작 중 최고로 평가받는 격조 높은 연출과 대작의 압도적 감동까지 선사할 <벤허>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다.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 찰톤 헤스톤은 국내에서도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만 30여 편이나 개봉하는 등 친숙한 이미지로 50여 년의 연기 생활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온 할리우드의 대표적 명배우다. 1950년 <다크 시티>로 데뷔한 이래 <십계>의 모세, <아거니 앤 액스터시>의 미켈란젤로, 예수의 생애를 다룬 <최고의 이야기>의 세례 요한, <엘 시드>의 중세 시대 스페인 영웅 로드리고 디아즈 등 1950년대와 60년대 굵직한 서사영화에서 영웅적 인물들을 맡아왔다. <혹성탈출>로 시대극뿐만 아니라 SF에도 출연하며 흥행배우로 입지를 다졌고, 강렬한 남성적 매력과 함께 선 굵은 연기로 최고의 인기와 함께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찰톤 헤스톤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벤허>에서 주인공 ‘유다 벤허’ 역할로 제3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찰톤 헤스톤은 영화 <벤허>에서 전차경주신 등 격렬한 액션 신을 직접 소화해내는 것은 물론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연기로 극을 이끌어 압도적 찬사와 함께 할리우드의 탑스타로서 탄탄히 입지를 굳혔다.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 찰톤 헤스톤의 명품 연기와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우아하고 정통성 있는 연출을 확인할 수 있는 <벤허>는 7월 7일 스크린을 통해 공개된다.
굉장히 그리스도교적인 내용이라 종교홍보 영화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가치표현이 오히려 이 영화를 명작으로 끌어올렸다는 주장도 있다. 즉 그리스도교적인 내용을 전달하겠다고 영화의 작품성을 무리하게 훼손하기는커녕,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통해 원숙하게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4시간에 달하는 작품 내에서 예수,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주제가 등장하는 시간은 채 20분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러한 내용도 억지스럽게 등장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작품 내에 녹아들듯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효율적으로 완성하는 도구로 작용한 까닭에, 그리스도교적 표현이 작품성을 훼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의 메인 주인공은 벤허지만 페이크 주인공이고 진 주인공은 예수라는 의견도 있다. 대사 한마디 없고 언제나 뒷모습이나 실루엣 정도만 나오는 예수지만, 씬 하나 하나의 포스는 압도적. 특히 표정만으로 로마 제국 십부장을 제압하는 장면은 백미.그리스도교적 가치관을 떠나도 이 영화의 주제는 '폭력에 당한 자가 다시 폭력으로 복수하면 그 폭력의 악순환은 끝이 없을 것이며, 그것을 사랑으로 용서하고 폭력의 끝없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런 주제를 떠나도 매우 직선적으로 호쾌하게 이끌어가는 선 굵은 스토리, 군더더기가 거의 없고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할 억지복선도 없는 깔끔한 내용전개, 그리고 지금 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크고 아름다운 스케일과 화려한 액션만으로도 이 영화는 명작으로 부족함이 없다.
특히 전차경주 장면25의 스케일26이나 액션은 굉장해서 지금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스타워즈 1편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나오는 포드레이서 경주 등 다른 영화에서도 오마주/패러디되었다. 아무튼 옛날 영화라 CG 없이 전부 스턴트와 진짜 전차를 쓰는 경주 장면의 박력은 후세의 어떤 경주 영화도 감히 비교할 수가 없다. 아직도 안 본 사람이 있다면 꼭 보자.
벤허의 몇몇 BGM들은 로마 토탈 워의 SPQR모드에도 사용된다. 대단히 적절한 선택인 듯. 로저 미클로시가 음악을 담당했는데 이 사람은 이보다 앞서 쿠오 바디스 BGM도 맡은 바 있다. 그래서 두 작품 BGM의 느낌이 비슷하다. 참고로 전작에서 황제로 추대된 갈바가 로마로 향하는 장면의 음악이 벤허의 마차경기장 선수입장 음악 도입부로 재활용되기도... 전자 1:06:50부터 및 후자 15:45부터를 비교해 보라. 사실 이 사람은 1950=60년대 할리우드 대작 사극들 상당수의 음악을 담당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그린 영화 왕중왕의 영화음악도 이 사람 작품이다.
참고로 소설과 영화의 그리스도교적 성향 및 영향력 때문에 거짓 루머에 인용되기도 한다. 주된 내용은 월리스가 무신론자였다가 '회개'해서 독실한 개신교 신자가 되어서 벤허를 집필했다는 것.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월리스는 처음부터 평범한 개신교 신자였다. 다만 유명한 불가지론자 로버트 잉거솔(Robert Ingersoll)과 대화를 나눈 뒤, '이번 기회에 신앙심을 다잡고 신학 지식을 제대로 배워서 글을 써보자.' 하는 생각으로 벤허를 집필하였다.

줄거리 결말 스포
로마 제국에 점령된 뒤 무단 정치를 당하던 유대인들이, 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하고자 봉기와 폭동을 일으키며 항거하여 어지럽던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 시기 이스라엘이 배경이다. 예루살렘의 대부호 유다 벤허가 주인공이다. 전 유대 총독의 아들이며 예루살렘 태생의 로마인 메살라는 14살 때까지 벤허와 그 가족의 절친한 친구였다. 이후 메살라는 로마군 호민관이 되어 돌아와 벤허와 재회하여 우정을 확인하지만, 그 우정은 메살라가 벤허에게 유대 통치를 위해 협력하라고 요청하여 흔들린다.
벤허가 사람들에게 로마에 대항하여 무력봉기를 일으키지 말자고 설득할 수는 있으나 그 이상은 어렵다고 답하자, 메살라는 벤허에게 설득을 거부한 자들의 명단을 넘기라고 요구한다. 벤허가 동포를 배신할 수 없다고 거부하자, 메살라는 로마에게 점령당한 유대민족의 미래는 없다면서 유대민족과 유대교의 유일신을 싸잡아 모욕하고, 적이 될 것인지 친구가 될 것인지 결정하라고 강요한다. 벤허는 만약 선택을 강요한다면 기꺼이 적이 되어주겠다고 선포하여 두 사람의 우정은 끝이 난다.
얼마 후 로마 제국의 새 총독이 부임하여 군대와 함께 행진하며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벤허는 여동생과 함께 저택의 옥상에서 이 행진을 구경하는데, 총독이 벤허의 저택 앞을 지날 때 여동생이 실수로 담장의 기와를 떨어뜨려 말이 놀라는 바람에 총독이 낙마하여 부상을 입는다. 로마 군인들이 벤허 저택에 들이닥치고 벤허 일가는 반역죄로 몰려 로마군에게 체포된다.

이때 로마군의 장교로 있는 메살라는 어렸을 때부터 벤허와 오랜 친구였고, 또 벤허와 그의 어머니, 여동생이 반역의 뜻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불온한 유대인들에게 준엄한 처벌의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또 자신의 출세를 위해 벤허를 갤리선의 노젓는 노예로 만들고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지하감옥에 가둔다. 벤허는 비열한 메살라를 저주하며 반드시 살아서 다시 돌아와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벤허는 노예가 되어 다른 노예들과 함께 로마군에게 끌려가다가 나사렛 마을의 우물가에 다다른다. 로마 군인들은 다른 노예들에게는 물을 마시도록 허락했지만, 반역죄 및 총독 살해미수죄로 끌려온 벤허에겐 물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노예들에게 물을 떠먹일 때 마을 남자아이가 바가지에 물을 담아 벤허에게 건네준다. 하지만 바가지에 입을 대려는 순간 로마 군인이 바가지를 빼았고, 이 자에게는 물을 주지 말라고 언성을 높이며 자기가 그 물을 마신다. 로마 군인이 물을 마실 때 바가지에서 흐르는 물 몇 방울이라도 마시려고 애쓰는 장면은 그저 안습(...). 결국 벤허는 갈증과 절망에 지쳐 탈진하여 땅에 쓰러진다.
그 때 웬 동네 목수 한 사람8이 벤허를 보고 다가와 물을 주었다. 이에 로마군과 노예들을 인솔하던 장교가 "거기 너! 저 자에게는 물을 주지 말라고 했잖나!" 하면서 달려왔지만 예수의 용안을 보고 위엄에 질려 뒷걸음질치며 물러난다. 벤허는 예수의 도움으로 물을 마신 뒤 힘을 차리지만, 그 이름도 듣지 못하고 다시 노예선으로 끌려간다.벤허는 훗날 자신이 노예가 된 뒤로 아리우스를 만날 때까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은, 물을 준 랍비밖에 없었다." 하고 회상한다.벤허는 로마 해군 갤리선의 노를 저으며 고된 노예 생활을 한다. 보통 갤리선의 노 젓는 노예는 1년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는데, 벤허는 복수심으로 견디며 3년이 넘게 살아남는다. 오히려 배를 젓는 고된 노동 속에서 강철 같은 육체와 고통을 참는 인내력, 감정을 조절하는 절제력을 익힌다.

로마군 함대가 마케도니아의 해적과 싸우러 떠날 때, 벤허는 기함에 탄 함대 사령관 퀸투스 아리우스 제독의 눈에 우연히 들게 된다. 아리우스 제독은 벤허가 비범한 인물임을 눈치채고 그에게 자기 검투사가 되지 않겠냐고 제안하지만, 벤허는 "당신의 노예로 죽으란 말이오?"라고 답하며 거부한다. 이에 제독은 "뱃전에서 노질을 하다 죽는 것보단 낫지 않겠냐"며 반문하지만, 벤허는 "하느님이 나를 노예선에서 죽도록 3년씩이나 살려뒀을 리가 없다." 하고 답한다. 이에 아리우스가 "존재 자체가 목적이 있다고 믿는 것은 이상하고 고집스러운 믿음이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오래 전에 그런 희망을 버렸을 것이다."라고 하자 벤허는 "당신은 그랬던 것 같군요. 무슨 일로 희망을 잃게 됐습니까?(what drove it out of you?)"라고 되묻는다. 아리우스 제독은 대답하지 않고 벤허를 다시 노예들 자리로 내려보낸다. 이후 해적들과의 전투가 시작되자 아리우스 제독은 벤허만은 노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발목에 채우는 쇠사슬을 채우지 않도록 명령한다.
나중에 해전이 벌어졌을 때 해적들이 기함에 배에 불을 지른 탓에 배가 가라앉을 위험에 처하지만, 벤허는 묶이지 않았기 때문에 노수 감독들을 쓰러뜨리고 다른 노예들을 모두 풀어준 뒤, 배가 가라앉을 때 헤엄쳐서 바다에 떨어진 아리우스 제독을 구출한다. 아리우스 제독이 함대가 대패한 줄 알고 자결하려는 것도 막는다.
다른 로마 제국 배에 구출된 후 아리우스 제독은 자기 함대가 실제로는 대승을 거두었음을 알게 된다. 아리우스는 개선장군이 되어 로마 제국으로 귀환하고, 벤허가 자신을 살려준 보답으로 황제 티베리우스에게 청원하여 벤허를 갤리선 노예에서 자기 직속 노예로 삼는다. 이후 벤허는 로마의 전차경주에서 5번이나 승리하여 유명인사가 되었고 2년 후 아리우스 제독은 벤허를 해방시킨 다음에 자신의 양자로 삼아 자신의 가문과 재산을 모두 물려주겠다고 선언한다.

갤리선의 노예에서 신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하여 막대한 재산과 존경받는 로마 제국 귀족(그것도 유력자의 아들)의 신분을 얻었지만, 벤허는 그 자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찾으러, 그리고 메살라에게 복수하러 유대로 돌아온다. 유대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벤허는 자기 나이 정도 되는 나자렛 사람을 찾는다는 노인을 만나는데, 그 노인에게 소개받아 아름다운 말을 소유한 아랍 족장과 만난다.20 족장은 벤허가 말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남을 눈치채고 자기와 함께 전차경기에 나가지 않겠냐며 제안하지만, 벤허는 할 일이 있다고 거절하고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이때 족장은 "전차경기는 규칙이 없어 많은 기수들이 죽어나간다." 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돌아온 벤허는 폐허가 된 자기의 옛 저택에서 사는 에스더와 집사를 만나 해후하고, 다음날 메살라를 찾아가 로마 귀족이 된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며 어머니와 여동생을 찾아내라고 한다. 찾아내서 자신에게 돌려보낸다면 과거의 원한을 잊겠다며 메살라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다. 메살라가 지하감방의 문을 열어 모녀의 생사를 확인해보니, 살아는 있으되 문둥병에 걸렸으므로 감옥에서 추방한다. 모녀는 감옥에서 풀러나자 한밤중의 길거리를 더듬어 옛 저택을 찾아가 하녀 에스더를 만나 벤허에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한 뒤 스스로 문둥병자 소굴로 들어간다. 에스더는 그들의 뜻을 존중하여 벤허에게 어머니 미리암과 여동생 티르자가 이미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벤허는 모녀가 죽었다고 믿고 메살라에게 복수하기 위해 일전에 만났던 아랍 족장을 찾아가 그가 참가하는 전차경주에 같이 출전한다. 족장은 로마 장교들을 찾아가서 막대한 금은보화를 보여주면서 벤허와 메살라의 경주를 놓고 도박을 제안한다. 다른 로마 장교들은 4년 연속 승전을 거둔 메살라의 승률을 믿고 처음에는 앞을 다투어 내기를 응하였으나, 족장이 자기 말을 몰 기수는 벤허라고 자랑하자 움찔한다. 하지만 메살라는 유대인과 로마인의 차이를 보여주겠다며 4대 1로 배당률을 걸고 내기에 참여한다.
이에 옆에 있는 장교들이 아랍인과의 차이도 운운하며 족장도 함께 모욕하지만, 거래에 능한 족장은 그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태연하게 1천 달란트나 되는 막대한 돈을 건다. 이에 메살라도 지지 않고 1천 달란트를 걸고 서류에 서명한 뒤 경기에 나선다. 규칙도 없어 살벌한 살육이 벌어지는 이 전차 경주에서, 메살라는 자업자득으로 큰 부상을 입는다. 경주가 끝난 뒤 벤허가 메살라를 만나러 오자, 메살라는 벤허에게 모녀가 문둥병자가 되었다고 털어놓고 "아직 경주는 끝나지 않았다." 하고 조롱하며 죽는다.

벤허는 메살라의 말을 듣고 분노와 슬픔에 절망한다. 메살라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 로마 제국 전체에 대한 분노로 바뀌어, 反로마 독립운동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에스더는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며, 사랑을 설파하며 병자를 낫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젊은 랍비(예수)가 있으니, 그에게 가서 모녀의 병을 낫게 하자고 조언한다.
벤허는 문둥병자 소굴에서 모녀를 찾아내어 같이 예수에게 가지만, 예수는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중이었다. 벤허는 예수가 노예 시절에 자기한테 물을 준 그 사람이란 것을 깨닫고 자기도 급히 예수에게 물을 건네주지만 로마 병사는 제대로 마실 시간도 주지 않고 끌고간다. 예수는 결국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벤허는 발타자르와 함께 이 광경을 보며 무엇 때문에 예수가 죽는지 묻는데 발타자르는 "이것을 위해 세상에 왔다." 하고 답한다. 다시 벤허가 "이렇게 죽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냐." 하고 묻자, 발타자르는 "이것이 시작이오." 하고 답한다. 예수가 끝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거센 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치며 폭우가 쏟아지고, 벤허 모녀는 에스더와 함께 근처 동굴에 들어가 비바람을 피하다가 갑작스럽게 문둥병이 치유되어 피부가 깨끗해진다. 예수의 죽음을 계기로 벤허는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자신을 괴롭히던 번뇌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안식을 찾으며 영화는 막바지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