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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마라도나 나이 사망 와이프 전부인 혼외자 가족 자녀 국적 고향

by 제로스 2023.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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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마라도나 전부인 아내 배우자 와이프

클라우디아 비야파녜

디에고 마라도나의 전부인

본명: Claudia Roxana Villafañe Elías

배우자: 디에고 마라도나 (1984년–2003년)

자녀: 달마 마라도나, 지안니나 마라도나

손주: 베냐민 아궤로, Roma Caldarelli

부모: 로케 니콜라스 비야파녜, 아나 마리아 엘리아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 프로필

디에고 마라도나 나이 본명 국적 고향 키 몸무게 소속팀 국가대표 등번호 종교 가족관계

이름

디에고 마라도나

Diego Maradona

본명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프랑코

Diego Armando Maradona Franco

출생

1960년 10월 3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 라누스

사망

2020년 11월 25일 (향년 60세)

부에노스 아이레스 (Buenos Aires)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

키 165cm | 체중 70kg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2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에스텔라 로하 (1968~1969 / 유스)

로스 세볼리타스 (1970~1974 / 유스)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1975~1976 / 유스)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1976~1981)

CA 보카 주니어스 (1981~1982)

FC 바르셀로나 (1982~1984)

SSC 나폴리 (1984~1991)

세비야 FC (1992~1993)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93~1994)

CA 보카 주니어스 (1995~1997)

감독

만디유 데 코리엔테스 (1994)

라싱 클루브 (1995)

아르헨티나 대표팀 (2008~2010)

알 와슬 FC (2011~2012)

알 푸자이라 FC (2017~2018)

디나모 브레스트 (2018 / 회장)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 (2018~2019)

힘나시아 데 라플라타 (2019~2020)

국가대표

Argentina AFA 20...91경기 34골 (아르헨티나/1977~1994)

별명

El Pibe de Oro(황금빛 소년), D10S3

주발

왼발

등번호

10번

후원사

푸마(킹 시리즈)

종교

가톨릭

출생: 1960년 10월 30일, 라누스

사망 정보: 2020년 11월 25일, 아르헨티나 티그레

키: 165cm

배우자: 클라우디아 비야파녜 (1984년–2003년)

등번호: 10 (SSC 나폴리 / 미드필더), 10 (FC 바르셀로나 / 미드필더)

자녀: 디에고 시나그라, 지안니나 마라도나, 달마 마라도나, 디에고 페르난도 마라도나 오제다, 자나 마라도나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 (Diego Maradona) 전 축구감독, 전 축구선수

출생-사망

1960년 10월 30일, 아르헨티나 - 2020년 11월 25일

신체

167cm

소속팀

힘나시아 라 플라타

데뷔

1976년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입단

수상

2005년 Domingo Faustino Sarmiento상 (아르헨티나 국회)

관련정보

네이버지식백과 - 인간의 얼굴을 한 축구 영웅

사이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전체 이름 Diego Armando Maradona Franco

출생일 1960년 10월 30일

출생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 라누스

사망일 2020년 11월 25일 (60세)

사망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 티그레

키 165cm

포지션 은퇴 (과거 공격형 미드필더)

청소년 클럽 기록

1969-1976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클럽 기록*

연도 클럽 출전 (골)

1976-1981

1981-1982

1982-1984

1984-1991

1992-1993

1993-1994

1995-1997

통산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보카 주니어스

바르셀로나

나폴리

세비야

뉴얼스 올드 보이스

보카 주니어스 167 (116)

40 (28)

36 (22)

188 (81)

26 (5)

5 (0)

30 (7)

491 (259)

국가대표팀 기록

1977-1979

1977-1994 아르헨티나 U-20

아르헨티나 24 (13)

91 (34)

지도자 기록

1994

1995

2008-2010

2011-2012

2017-2018

2018-2019

2019-2020 만디유 데 코리엔테스

라싱 클루브

아르헨티나

알와슬

알푸자이라

도라도

힘나시아 라플라타

메달 기록숨기기

아르헨티나의 기 아르헨티나의 선수

축구

월드컵

우승 1986 멕시코 단체전

준우승 1990 이탈리아 단체전

아메리카 선수권 대회

동 1989 브라질 단체전

주니어 월드컵

우승 1979 일본 단체전

아메리카 주니어 선수권 대회

은 1979 우루과이 단체전

 

축구선수 디에고마라도나 영화 출연작 작품활동 필모그래피

디에고

주연 - 본인 역

개봉

2019.12.12.

평점

8.24

관객

9,807명

바로보기

축구의 신: 마라도나 이미지

축구의 신: 마라도나

주연 - 본인 역

개봉

2010.06.03.

평점

6.26

관객

83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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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바셋 이미지

마이크 바셋

조연

개봉

2001

디에고 마라도나 직업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축구경영인.이탈리아 SSC 나폴리의 스쿠데토 2회와 UEFA컵 우승을 이끌며 구단의 전설이 되어 영구결번을 부여받았고, 조국인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1986년 월드컵 우승과 1990년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었다. 아르헨티나에는 그를 숭배하는 '마라도나교'라는 종교가 실제로 존재한다.

디에고 마라도나 신의손

축구 경기에서 골키퍼를 제외한 선수가 골을 넣는 등의 결정적 순간에서 핸드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에 반칙으로 인정되지 않았거나, 반칙으로 인정됐지만 오히려 그 핸드볼 플레이가 팀을 승리하게 만드는 행동이 된 경우를 일컫는 말.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아주 잘 막는 골키퍼의 별명으로도 쓰인다. 다만, 골키퍼의 경우 거미손, 야신 등 신의 손의 뜻을 가진 대체 별명이 많다 보니, 신의 손이란 단어는 위 사례를 수식할 때 더 많이 쓰인다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손으로 골을 넣은 유명한 오심 사건. 사실상 신의 손이라는 단어의 창시자이다.

디에고 마라도나 데뷔

1976년 10월 20일,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노스에서 처음으로 프로에 데뷔했고, 아직 어린 아르헨티나 축구선수로서 개인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1981년, 이제 21세가 된 마라도나는 보카 주니어스에 입단해 축구선수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디에고 마라도나 나이 1960년 10월 30일 60세.디에고 마라도나 고향 출생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 라누스.디에고 마라도나 국적 아르헨티나.

디에고 마라도나 집안 어린시절 가정사 가족사

마라도나는 1960년 10월 30일,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 라노스에서 3남4녀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4 그는 코리엔테스 주에서 이주해 온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부 외곽의 판자촌인 빌라 피오리토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부친 돈 디에고는 가족을 위해 새벽 4시에 막노동을 하러 나간 뒤 밤늦게 돌아와 곯아 떨어지기 일수였다.이런 상황에서 아버지, 어머니, 누나들을 제외하면 집안의 장남인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무엇이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하는 전쟁놀이엔 도통 관심이 없었던 그는 다행히 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견한다. 바로 축구였다.

축구공을 튕기며 재주를 부리는 트래핑을 좋아했던 마라도나는 8살 때 지역 클럽 에스트렐라 로자에서 뛰던 중 온종일 공만 갖고 논다는 빈민가 소년의 소문은 금세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스카우트에게 목격되었고 전부터 그를 주시하던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는 11살에 불과했던 마라도나에게 과감한 투자를 하기로 결심하며 계약하게 된다.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의 유소년팀인 로스 세볼리타스에서 뛰게 된 마라도나는 그곳에서 에이스가 되며 팀의 주축이 되었고 1부 리그 경기에서 볼보이로 나와 하프타임 중간 휴식시간에 공으로 마법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중들을 즐겁게 했다.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는 이런 마라도나에게 아파트를 선물한다. 판잣집에서 연명하던 소년과 소년의 가족들은 꿈처럼 믿기지 않는 현실에 눈물을 흘렸고 그 광경을 본 마라도나는 축구로 꼭 성공해 가족들과 평생 부유하게 살겠노라고 다짐하게 된다. 그리고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는 마라도나라는 이름을 아르헨티나 전역에 알리는 발판이 된다.

디에고 마라도나 바르셀로나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하는 것을 시작으로 유럽 리그에 진출했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FC 바르셀로나에서의 축구선수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첫 시즌부터 간염에 걸려 심하게 고생했고 1983년 9월 23일 어슬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혼 안도니 고이코에체아에게 백태클을 당해 왼쪽 발목 골절상을 입었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부상을 극복하고 일어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그는 좋지 않은 대중적 평판에 시달려야 했다. 마라도나는 이 무렵부터 코카인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으며 인생이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했다.결국 FC 바르셀로나 의 선수로서 마라도나는 모든 대회 도합 38골의 기록을 남긴 것이 전부였으며 두 시즌만에 종결되었다. 그런데 두 시즌에 38골은 골을 굉장히 많이 넣은 것으로 평가된다. 1984년 5월 빌바오와의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 결승에서 마라도나는 집단 난투극의 주동자가 되어 폭력사태에 휩싸였으며 이것이 원인이 되어 마라도나는 FC 바르셀로나 에서 강제로 퇴출당했다.

디에고 마라도나 국가대표 경력

그는 1977년 2월 27일, 헝가리와의 경기에서 16살의 어린 나이에 국제 경기에 데뷔하였다. 그리고 2년 뒤인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최우수 선수 상을 받았다. 같은 해 6월 2일에는 햄던 파크에서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국제 경기 첫 골을 넣으면서 팀이 3-1로 이기는데 공헌하였다. 그리고 그는 FIFA U-20 월드컵과 FIFA 월드컵 두 대회 모두 최우수 선수 상을 받은 유일한 선수이다.

디에고 마라도나 약물 중독 및 건강 문제

코카인 중독으로 사경을 헤맸던 마라도나는 2005년 3월 5일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의 메디헬프 병원에서 위 절제 수술을 받았다. 수술 당시 마라도나는 몸무게가 121kg까지 나갔으나 1년 만에 50kg을 감량했다.

디에고 마라도나 세금 탈세

마라도나는 이탈리아에서 현역 선수시절에 3000만 유로에 해당되는 세금을 탈세했기 때문에 그가 이탈리아를 방문할 때마다 귀걸이, 손목시계, 목걸이 등 예물을 몰수당했다. 이 중 2009년 9월에 몰수당한 귀걸이는 2010년 1월 14일 경매에 나왔고 이를 한 여성이 25,000유로에 구매해 갔다.

디에고 마라도나 리즈 과거사진 과사 디에고 마라도나 젊은시절 축구선수 시절

디에고 마라도나 라이벌

호사가들이나 대다수 해축팬들이 꼽는 마라도나의 라이벌은 펠레지만 현역시절 마라도나의 라이벌로 꼽힌 선수는 잉글랜드의 케빈 키건, 서독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 브라질의 지쿠&파우캉, 네덜란드의 루드 굴리트&마르코 판바스턴, 그리고 월드컵과 세리에 A에서 심심하면 만나서 경쟁했던 로타어 마테우스가 있다. 이 중 본인이 최대 라이벌로 꼽았던 선수는 로타어 마테우스였다.사실 엄밀히 보면 루메니게, 플라티니, 지쿠는 마라도나보다 약간 전세대로서 전성기가 겹치지 않아서 완전히 라이벌이라고 보긴 좀 어려운 면이 있다. 루메니게, 플라티니, 지쿠가 이미 세계 최고로 꼽히던 1980년대 초반에 마라도나는 아직 20대 초반이었다. 판바스턴, 굴리트, 마테우스는 동시대이지만 전형적인 센터포워드인 판바스턴은 포지션이 달라서 직접적인 라이벌로는 비교되는 빈도가 낮았다.

이래저래 동시대에서는 굴리트와 마테우스가 라이벌로 많이 논해졌으나, 굴리트는 라이벌 포지션은 전성기 2년 정도에 그쳤고, 마테우스는 마라도나보다 몇년 늦은 1980년대 후반에 전성기가 찾아왔지만 엇비슷한 나이인 마라도나와 전성기가 어느 정도 겹치고 2번의 월드컵 결승과 세리에의 우승길목에서 계속 마주쳤기에 라이벌 포지션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강한 인상을 줬다. 물론 마라도나의 전성기인 1979년부터 1988년까지는 마테우스는 마라도나의 퍼포먼스에는 감히 비교되지는 못했지만. 그 뒤로 마테우스는 마라도나와 붙으면서 종종 맞대결에서 승리하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판정승하기도 하면서 발롱도르를 수상하면서 30살에 최고 선수에 등극한다. 반면 마라도나는 그때부터 마약 스캔들로 급속한 몰락이 시작된다.현재는 자국 후배인 리오넬 메시가 세대를 넘어서는 라이벌이 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디에고 마라도나 전부인 아내 배우자 와이프 전처 디에고 마라도나 결혼 디에고 마라도나 재혼 디에고 마라도나 이혼

디에고 마라도나 첫번재 결혼 디에고 마라도나 결혼 1984년 11월 7일 클라우디아 비야파녜 와 결혼식을 올렸다.하지만 2003년 이혼 한것으로 전해진다.

디에고 마라도나 전부인 이혼 사유 이유

디에고 마라도나 가 이혼한 전 아내 클라우디아 비야파네가 자신의 돈 750만파운드(약 137억원)를 훔쳤다며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마라도나와 비야파네의 변호사들이 둘의 공동 재산을 분할하는 협상을 했으나 결렬되자 마라도나측이 사기 혐의로 고소하기로 했다고 스페인어 신문 엘 파이스 등이 27일 보도했다.마라도나측은 비야파네가 자신의 돈을 이용해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미국 마이애미에 아파트를 사들이고 부동산을 마음대로 처분하는가 하면 스포츠용품 등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마라도나측은 또 비야파네의 미국 비자를 회수하고 자산을 동결해달라고 요청했다.

마라도나는 유명세를 타기 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촌에서 비야파네를 만나 1989년 결혼해 두 딸을 뒀으나 2003년 이혼한 뒤 재산을 분배하지는 않았다. 마라도나는 지난달 말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비야파네가 돈을 훔쳤기 때문에 감옥에 가야한다”는 말을 불쑥 꺼내기도 했다.둘이 갈라진 뒤 비야파네가 배우이자 영화 제작자인 호르헤 타이아나와 사귀자 마라도나는 2012년 자신의 돈이 타이아나를 지원하는 데 흘러 들어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타이아나는 “인생은 살아가고 즐기는 것이지, 마약을 하면서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며 되받아쳤다.마라도나는 로시오 올리바 라는 여성과 약혼을 했으나 작년 10월 올리바가 귀중품을 훔쳐갔다고 고소한 바 있다. 마라도나는 내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스포츠 바를 차릴 예정이라고 엘 파이스는 전했다.

마라도나는 이혼 과정 중에 디에고 시나그라(1986년 9월 20일 나폴리 출생)라는 아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1993년에 이탈리아 법원은 마라도나가 친자 여부를 확인하는 DNA 검사를 거부한 후에, 그가 시나그라의 친부라는 것을 이미 인정한바 있었다. 시나그라는 2003년 5월에 마라도나가 참가 중이던 이탈리아의 골프 대회에 몰래 찾아가, 처음으로 마라도나를 만났다. 시나그라는 이탈리아에서 축구 생활을 하고 있다.

디에고 마라도나의 둘째 딸인 지아니나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인 세르히오 아궤로와 결혼하여 2009년 2월 19일 아들 벤자민을 낳았다. 벤자민은 세르히오 아궤로의 아들이자 마라도나의 외손자이다. 그러나 이 부부는 2012년에 이혼했으며 벤자민은 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결정되었다. 한편, 마라도나는 이혼을 한 세르히오 아궤로에 대해 계속 저주를 퍼부었으며, 특히 일반인들이 모여있던 길거리에서 아구에로를 비난하는 욕설을 내뱉고 빈 병을 던지는 등의 행패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디에고 마라도나 두번째 결혼 약혼 재혼

2018년 여름 29세 연하로 지안니나와 동갑인 아르헨티나의 여자 축구선수 로시오 올리바와 약혼했다. 마라도나가 로시오에게 결혼 반지를 내밀자 로시오의 어머니는 특이하게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에 결별 소식이 떴다. 동거하던 집에서 쫓겨나는 모양새로 헤어지게 됐는데, 심지어 그 집은 마라도나가 올리바에게 선물로 사준 집이었다.

디에고 마라도나 혼외자

디에고 시나그라라는 아들이 있다. 혼외자였고 이에 마라도나는 30년간이나 친자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2016년 8월자로 친자임을 인정했다. 허나 축구 실력은 형편이 없다고. 거기다가 1996년생 사생아 딸이 하나 더 있다. 이름은 하나(Jana). 그녀의 생모는 하나를 마라도나의 친딸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오래 법정 싸움을 했다고 한다.

디에고 마라도나 자녀 자식 아이 아기 딸 아들 디에고 마라도나 가족 관계

슬하 자녀는 2남 3녀가 있고, 이들 중 차녀는 아르헨티나의 신성 세르히오 아궤로와 결혼한 사이다. 조석은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장인, 장인의 재림, 사위라는 훈훈한 가족으로 묘사한 바 있다.그리고 2013년 2월 13일 득남하여 늦둥이 아들이 하나 더 늘었다. 한마디로 아궤로의 아들이자 마라도나 외손주인 벵하민은 자기보다 4살이나 어린 외삼촌을 갖게 된 셈. 36살의 애인 베로니카 오헤다가 어머니라고...이름은 디에고 페르난도 마라도나라고 한다. 늦둥이 아들이 외손주 벵하민과 메시의 아들 티아고와 함께 대표팀에서 뛰기를 바랬다.그러나 아궤로는 2014년 현재 마라도나의 딸 지아니나와 별거 상태에 들어갔고 이혼을 준비중이다. 마라도나는 아궤로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에까지 딸과 함께 가서 재결합을 위해 아궤로를 설득하는 부정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아궤로와 지아니나는 이혼했다.

디에고 마라도나 사망 이유 사유 원인 디에고 마라도나 사인 별세 디에고 마라도나 심장마비

2020년 10월 말 마라도나의 경호원이 코로나19 증세를 보여 마라도나 또한 자가격리 중이었는데, 11월 3일(현지시간) 두부 외상 후에 출혈이 생겨 뇌 경막 아래 피가 고이는 경막하혈종으로 수술을 받고 1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올리보스의 병원에서 퇴원하였지만 2020년 11월 25일 심장마비로 인해 자택에서 사망한 것이 확인되었다. 향년 60세.6 아르헨티나 정부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했으며, 시신을 대통령궁에 안치하고 국민들의 조문을 받겠다고 했다. 마라도나의 유해를 실은 영구차가 움직이자 국민들이 쏟아져나와 배웅했고, 일부는 대성통곡하며 영구차를 가로막기도 할 정도였다. SSC 나폴리는 팀의 전설적인 레전드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홈 구장인 스타디오 산 파올로의 구장 명칭을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산 파올로'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도 나왔다. 또한 당일에 진행된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4차전 경기 전에는 마라도나를 기리기 위한 1분간의 추모 시간이 있었다.

마라도나의 죽음이 보도된 이후,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마라도나를 추모하고 있다. 펠레,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파올로 말디니, 프란체스코 토티, 가레스 베일, 네이마르, 루이스 수아레스, 디에고 포를란, 조세 무리뉴,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 프란시스코 교황, 킬리안 음바페. 한국 선수중에선 그를 우상으로 삼았던 이강인이 그를 추모했다. 마라도나의 소속팀이었던 FC 바르셀로나, 그리고 마라도나를 품었던 SSC 나폴리 역시 그를 추모하였다. 86년 월드컵에서 신의 손을 당한 피터 쉴튼도 해당 사건에 대해 마라도나가 사과가 없었다면서 섭섭함을 표하면서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개인적 감정이지, 객관적으로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였음이 분명하고 그런 사람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며 애도를 표했다.

많은 네티즌들이 추모 열기 속에 전설적인 축구선수를 기리는 가운데 일각에선 약쟁이, 인종차별주의자 의혹7이 있는 자를 뭣하러 애도하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또 이와는 별개로 젊은 시절부터 상대 선수들로부터 경기에 뛸 때마다 지나친 수준의 파울을 항상 당하다시피 했었고, 일찍이 마약에 중독되어 젊은 나이에 심장발작을 일으킨데다가 은퇴 이후에도 거의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수준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기에 결국 올 게 왔다는 반응도 있었다.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 인스타그램 주소

https://www.instagram.com/marad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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