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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나이 근황 와이프 전부인 이혼 재혼 세번째 결혼 자녀 가족

by 제로스 2023.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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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가수 나훈아 프로필

나훈아 나이 키 학력 고향 몸무게 혈액형 가족관계 데뷔 본명 소속사

본명

최홍기 (崔弘基)

출생

1950년2 2월 11일 (70세)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본관

해주 최씨

가족

자녀 슬하 1남 1녀, 사촌동생 나진기3

신체

175cm4, 71kg B형

학력

서라벌예술고등학교 (졸업)

출생: 1950년 2월 11일 (70세), 부산광역시

소속사: 나예소리

활동 시기: 1966년 ~ 현재

가족: 슬하 1남 1녀; 2남 2녀 중 차남

배우자: 정수경 (1985년–2016년), 김지미 (1976년–1982년), 이숙희 (1973년–1975년)

나훈아 (최홍기) 가수

출생

1947년 2월 11일

학력

서라벌예술고등학교

데뷔

1966년 노래 '천리길'

수상

2007년 제5회 대한민국 환경문화대상 가수부문

2001년 MBC 명예의 전당 가수부문

1996년 제3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상

본명 최홍기(崔弘基)

출생 1950년 2월 11일 (70세)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직업 가수

장르 트로트

활동 시기 1966년 ~ 현재

배우자 정수경

가족 슬하 1남 1녀

2남 2녀 중 차남

소속사 나예소리

나훈아(羅勳兒1, 본명: 최홍기, 한국 한자: 崔弘基, 1950년 2월 11일 ~ )는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이다.

나훈아 전부인 아내 이름 재혼 결혼 이혼

나훈아 와이프 배우자 전부인들

1번째 前 배우자는 고은아의 사촌인 이숙희이다.

2번째 前 배우자는 김지미이다.

3번째 前 배우자는 1976년 〈여군 일등병〉 으로 데뷔한 정수경이다.

나훈아 노래모음 앨범 음반 방송 출연작 작품활동 필모그래피

나훈아 (대동강 편지/가라지) · 1984년

나훈아 - 40주년 기념 특별 기획음반 (최신 골든 히트곡 모음집) · 2006년

무시로

아담과 이브처럼... · 2002년

머나먼 고향

나훈아 STEREO 앨범 8집 · 1971년

홍시

New Freestyle (40주년 기념앨범) · 2005년

정든배

나훈아 STEREO 앨범 8집 · 1971년

어매

나훈아 빅히트 40곡 (나훈아 전곡 모음집) · 2001년

사내

New Freestyle (40주년 기념앨범) · 2005년

향수(鄕愁) · 2002년

붉은 입술

슈퍼스타 나훈아 2CD · 2003년

연정

아담과 이브처럼... · 2002년

고장난 벽시계

나훈아 - 벗 (40주년 기념앨범) · 2005년

청춘을 돌려다오

나훈아 22년 기념 Best Hit곡(曲) · 1989년

18세 순이

불후의 슈퍼스타 나훈아 리팩키지(연정(戀情) Tender Passion) · 2016년

자네!

벗2 · 2019년

애정이 꽃피던 시절

나훈아 오리지날 힛송 총결산 2집 · 1977년

딱 한번 인생

아홉 이야기 · 2020년

무심세월

벗2 · 2019년

테스형!

아홉 이야기 · 2020년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

아홉 이야기 · 2020년

갈무리

나훈아(羅勳兒) 전곡집(全曲集) 3 · 1992년

꽃당신

벗2 · 2019년

어느 60대 노부부이야기

아홉 이야기 · 2020년

너와 나의 고향

나훈아 BEST 20 · 1976년

세월

불후의 슈퍼스타 나훈아 · 2016년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나훈아 빅히트 40곡 (나훈아 전곡 모음집) · 2001년

공항의 두 얼굴

나훈아 오리지날 힛송 총결산 2집 · 1977년

동강

벗2 · 2019년

울긴 왜 울어

불후의 슈퍼스타 나훈아 리팩키지(연정(戀情) Tender Passion) · 2016년

男子의 人生

간다 이거지?

벗2 · 2019년

그사연

임재우,문정선(사나이 부탁/봉선화) · 1972년

 

앨범

연도 제목

1966년 《천리길》

1969년 《사랑은 눈물의 씨앗》

1969년 《님 그리워》

1970년 《정훈희/ 나훈아 (omnibus)》

1972년 《나훈아 제 7집》

1972년 《감나무골》

1977년 《님 찾아 가는 길/ 두 손을 잡아요》

1981년 《`81 나훈아 제 1집》

1984년 《청춘고백》

1989년 《22주년 기념신곡》

1990년 《나훈아 25주년 기념 신곡》

1992년 《92 Newalbum》

1993년 《2000곡 취입 기념 신곡 앨범》

1995년 《30th ANNIVERSARY '1995' NEW ALBUM》

1999년 《人生》

2001년 《아담과 이브처럼》(With 배종옥)

2003년 《Feeling Album : 空》

2005년 《벗; 40th Anniversary Special Album》

《New Free Stlye》

2006년 《덤; 40th Anniversary New Album》

2017년 《남자의 인생; Dream Again》

2019년 《벗2》

출연작

연도 제목

1971년 《풋사랑》

《인생 유학생》

1972년 《고향을 묻지마라》

《미움이 변하여》

《친구》

1973년 《나 혼자 못간다》

《어머님 생전에》

《우정》

《어머니의 영광》

《동반자》

1983년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3일낮 3일밤》

나훈아 사건 사고 논란

나훈아 피습 사건

1972년 7월 4일에 나훈아는 서울시민회관에서 리사이틀 공연을 하고 있는 중에 남진의 사주를 받았다는 한 남자가 무대에 뛰어올라 깨진 사이다 병 파편으로 나훈아를 피습하였다. 갑작스런 습격으로 나훈아는 왼쪽 얼굴에 5 cm 가량의 큰 부상을 입었고 72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언론 매체들은 용의자가 당시 라이벌이었던 남진의 사주를 받았을 것이라고 몰고 가는 바람에 남진의 팬과 나훈아의 팬들이 크게 대립해 긴장감이 조성되었었다. 이후 나훈아 측과 남진 측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여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나훈아 루머와 이혼 소송

2008년 1월에 모 스포츠 기자가 블로그에 '중견 가수가 젊은 여배우와 스캔들이 나서 야쿠자에게 중요 부위를 훼손당하는 보복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고 이것이 부풀려져 나훈아 쪽으로 몰아갔다. 결국 나훈아가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으며 이 사건 이후로 현재까지 잠적한 상태이다. 당시 기자회견 때 "제가 5분간 보여드리면 믿겠습니까?"라는 말과 함께 벨트를 풀고 바지를 벗으려는 행동을 보여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이 기자회견 이후 잠정 은퇴하였고 그 와중에도 팬들을 위해 공연을 준비하려고 했으나, 기자들을 피해 다니다가 결국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칩거하는 중이다. 칩거 와중에도 나훈아는 가수로 복직하려고 여러 시도하였으나 이것 때문에 부부 사이가 나빠져 결국 2011년 8월에 아내 정수경이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가수로의 복귀는 아직도 불분명해졌다.

나훈아 전부인 아내 정수경 이혼 소송

2011년 8월 아내 정수경이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3년 9월에 대법원에서 기각되었으며,3 그 이후로 가평의 자택에서 칩거를 하다가 결국 2016년 10월 31일에 법원에서는 이혼하라고 판결했고 이어 12억을 위자료 배상하라고 하여 5년 동안 진행한 이혼소송에서 패소했다.

나훈아 뇌경색 증상

2013년 5월 23일에 이데일리에서 나훈아는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요양병원에 머물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나훈아는 한동안 말을 어눌하게 하는 등 뇌경색 증상을 보였지만 양·한방 치료를 받으며 의사표시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쾌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민국의 가수. 1950년 2월 11일에 부산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서라벌예고 2학년 무렵인 1966년에 '천리길'을 발표하며 데뷔하였다. 자타공인 1970년대 한국 가요계의 아이콘으로서 라이벌인 남진과 함께 한 시대를 양분했던 슈퍼스타이다. 트로트 보컬로 주로 유명세를 탔지만, 수많은 히트곡을 직접 작곡해서 히트시킨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한데, 히트곡만 무려 120곡이 넘는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노래방 반주기에 수록된 곡이 가장 많은 가수다.나훈아는 히트곡의 숫자에서도 국내 최다는 물론이고, 앨범 발표수만 해도 무려 200장 이상, 800곡 이상의 자작곡을 포함해서 2600곡 정도의 취입곡을 자랑한다. 이처럼 나훈아는 '트로트의 황제'라는 별명이 정말 잘 어울리는 가수다.2017년, 11년만에 컴백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말로 11년만의 공백기를 깨고 2017년 7월 16일 앨범 "Dream Again"으로 컴백했다. 이후 2018년 앵콜공연과 전국순회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나훈아 근황

2020년 9월, KBS 추석특집 '나훈아 스페셜'에 출연이 확정되었다

나훈아 대표곡 히트곡 노래모음

사랑: "이 세상에 하나 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아내들이 남편에게 듣고 싶어하는 노래 1위. 각종 대중가요 관련 조사에서 빠지지 않고 상위권에 선정되는 국민 애창가요이다.

영영: 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난 너를 잊지 못하네 ... 데뷔 25주년 기념 앨범의 타이틀곡.

울긴 왜 울어: 울지마 울긴 왜 울어 고까짓것 사랑 때문에

1982년 나.훈.아 1982' 3집 앨범의 공동 타이틀인 '울긴 왜 울어'와 '잡초'는 동반히트를 기록했는데, 이 두 곡은 모두 뽕짝, 트로트 등의 단어로 불리며 쉽게 폄하되기 일쑤던 한국 성인가요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노래들이었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무시로: 이미 와 버린 이별인데 슬퍼도 울지 말아요. 일본어라고 오해받지만, 무시로의 뜻은 정한 때가 없이 수시로라는 단어이다. 2011년 백지영이 나는 가수다에서 열창해 재조명을 받았으나 그 후 모종의 문제로 2017년까지 음원서비스를 하지 않았던 비운의 곡. 최근 저작권 협의가 되어 들을 수 있게 됐다. 박우철 그리고 훗날 조항조가 불러 유명해지게 된 '남자라는 이유로'의 모티브가 되어 다시 화제가 되었다.

고향역: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나훈아의 무명시절을 날려 준 곡.

공: 살다보면 알게돼 일러주지 않아도

물레방아 도는데: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번 보고

대동강 편지: 대동강아 내가 왔다. 을밀대야 내가 왔다. 1981년 발표곡으로 오랜만의 컴백 앨범이었다. 당시 보기 드물었던 8페이지 풀컬러 화보집이 LP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태양음향 전속으로 발매.

갈무리: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몰라. 1989년 발표곡으로 나훈아가 재기할 수 있게 해 준 결정적인 곡 중 하나.

홍시: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 1992년 후배 가수 김지애의 앨범에 '석류가 웃는 이유'로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김지애의 앨범에 레퍼토리로 자주 나왔음에도 뜨지 못 했고, 나훈아 본인이 리메이크하여 대박이 나자 김지애가 아예 수록곡으로만 치부했던 곡으로 새 앨범을 내서 활동 중이며, 나훈아 모친을 회상하여 추모하는 곡으로 많은 이들이 이 노래를 듣고 떠나가신 어머니와 부모님을 생각해 눈물을 흘렸다는 댓글이 많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가사가 너무 애절하고 어머니를 추모하는 가사이기 때문이다.5

애정이 꽃피던 시절: 첫 사랑 만나던 그날 얼굴을 붉히면서

천리길: 돌뿌리 가시밭길 산을넘어 천리길

나훈아의 첫 데뷔곡6으로 한동안 큰 인기를 누렸지만 배호의 노래 ‘황금의 눈’을 표절했다 하여 문제가 되었고, 이후 새로운 홍보곡으로 내세운 노래가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었다.

너와 나의 고향: 미워도 한세상 좋아도 한세상

머나먼 고향: 머나먼 남쪽 하늘아래 그리운 고향

강촌에 살고 싶네: 날이 새면 물새들도 시름없이 나는

해변의 여인: 물위에 떠있는 황혼의 종이배

어매: 어매 어매 우리 어매 뭣할라고 날 낳았던가

감나무 골: 산제비 넘는 고갯길 산딸기 피는 고갯길 재 넘어 감나무골

인생길 나그네길: 사나이 한번나서 고향에만 살수있나 젊어서 한때라면 고생을 사자

사랑은 눈물의 씨앗: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첫 히트곡은 '천리길'7이었으나, 이 곡은 표절시비가 있었으며, 나훈아를 가수로 부상시킨 곡은 '사랑은 눈물이 씨앗'8이었다.

잡초: 아무도 찾지 않은 바람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가라지: 간다면 누가 너를 못 보낼 줄 알고 가라지 누가 너를 잡을 줄 알고

사내: 큰 소리로 울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 가진 것은 없어도 비굴하지 않았다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사랑했어요. 당신을 사랑이 이렇게 아픈줄도 모르고 당신을 사랑했어요

18세 순이: 살구꽃이 필때면 돌아온다던 내사랑 순이는

건배: 냉정한 세상 허무한 세상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세상은

모정의 세월: 나훈아의 '모정의 세월'은 1972년 TBC 드라마 《어머니》의 주제가로 쓰였으나, 노래는 흥행하지 못했다. 무명가수였던 한세일(본명: 박현진)이 1973년 이 곡을 리메이크하면서 히트를 거두고 MBC 10대 가수 신인상까지 차지했다.

고장난 벽시계: 이 곡은 2005년에 나훈아 데뷔 40주년 기념음반에 수록된 곡으로, 당시 트로트 작곡가들의 헌정음반 비슷한 개념으로 몇 곡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한 곡이다. 즉 나훈아 본인이 작사작곡을 하지 않은 곡.(윤중민 작사 / 박성훈 작곡) 발매 당시에는 이런 곡이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으나, 2008 ~ 9년을 전후해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다. 이 외에도 당시 앨범에 같이 수록된 곡으로는 "남자라 울지 못했다", "행운", "너도 역시 여자였구나", "발코니에 앉아서" 등이 있다. 나훈아 본인이 작사 작곡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곡들은 이후 현철을 비롯한 다른 가수들이 많이 리메이크해서 불렀다. 워낙 리메이크가 많이 되어서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20.30대 젊은 층도 한번쯤은 들어본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노래이다.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이름을 손고장난벽시로 개명한 아저씨가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전파를 탄 적이 있다.

땡벌: 흔히 트로트 곡 제목 '땡벌'이라고 한다면 강진이 부른 노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나훈아가 부른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나훈아판 땡벌과 리메이크 땡벌은 가사 내용이 다소 차이가 있다. 또한 트로트 가수들끼리도 다른 가수가 히트친 곡을 자기만의 색깔로 뽕짝화해서 리메이크해서 출시하는데, 나훈아 버젼이 아닌 강진이 리메이크한 가사와 구성을 바탕으로 뽕짝화 리메이크를 하는 일이 잦다.

녹슬은 기찻길: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 잃은 서러움을 녹슬은 기찻길아~.” 1972년에 발표한 이 노래는 끊어진 경의선 철길을 ‘녹슬은 기찻길’로 표현해 실향민의 아픔을 드러냈다. (한국경제신문)

평양 아줌마: 이 곡은 1985년 대한적십자사와 북한 적십자사의 주최로 분단 40년 만에 처음 남북 이산가족 교환 상봉 및 남북 예술단 교류로 나훈아, 하춘화, 김희갑 등 많은 연예인과 MC, 국악인 등 예술인들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 예술인들이 처음 서울에서 공연을 개최한 역사적인 일이 있었는데 이 때 나훈아가 평양 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이 곡을 작사, 작곡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곡이 발표되고 방송과 공연에서 불리우자 많은 실향민과 탈북자들이 고향 생각을 하며 울었다고 한다.

청춘을 돌려다오: 발표 당시 가수 신행일의 노래로 녹음됐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80년대 들어 나훈아와 현철이 다시 불어 비로소 히트됨.

고향으로 가는 배: 2017년 11월 3일 나훈아 Dream 서울 콘서트에서 지난 2월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피살된 북한의 김정남 얼굴을 스크린에 띄우고는 "난 정치를 모르지만 이 사람이 생전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10번 불렀다고 한다"며 '고향으로 가는 배'를 부르기도 했다.

팔자: 인생의 팔자를 표현한 곡으로 하루를 살아도 열심히 살자고하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불길

가지마오: 라디오에서 나오기 시작하며 엄청난 히트를 쳤던 나훈아의 '가지마오'는 원곡이 있는데 박철이라는 가수가 불렀다. 자세한 사연은 '나훈아 - 가지마오 (1970) (1970 박철 원곡 포함 Karaoke)' 설명에서 확인하자.

님그리워: 1969년 노래로 사촌지간인 가수 나진기씨가 가요무대에서 불렀고 다른 가수들도 많이 부른다.

남자의 인생: 2017년 11년만에 컴백하면서 발표한 타이틀 곡. 현대적인 느낌의 가사와 중장년 층 남자의 삶에 대 하여 나훈아 특유의 구성진 목소리와 새로운 느낌 의 신곡.

몰라

아이라예(아닙니다)

찻집의 고독: 70년대 발표한 곡. 서정적인 가사로 남녀의 애틋한 마음을 그 시대의 분위기에 잘 맞게 세련된 느낌으로 부른 곡. 나훈아씨가 젊을 적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 괴한에게 흉기로 칼을 맞아 얼굴을 다쳤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왠만한 공연에서 이 노래만 부르면 그때가 생각난다해서 잘 안부른다.

아리수: 2005년 한강 아리수 기념으로 만든 곡. 무대위에 말을 타고 갑옷을 입고 부르면 그 모습이 천하제일대장군이다.

아담과 이브처럼: 난 그냥 니가 왠지 좋아 이유도 없이 그냥 그냥 좋아 먼저 솔로곡으로 발표했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후에 탤런트 배종옥과 듀엣곡으로 부르면서 히트하게 되었다. 2001년 취입, 동명의 KBS 일일드라마 삽입곡이기도 했다. 나훈아씨의 감성적이고 로맨틱한 면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곡. 래퍼가 피처링한 버전도 있다. 2001년 명예의전당 무대에서 가수 장나라씨와 이지훈씨가 이 노래를 헌정곡으로 불러 나훈아씨의 미소를 자아냈다.

낙엽이 가는 길: 나훈아씨가 가진 가을 노래 중 몇안되는 가을 곡.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간간히 너를 그리워 하지만 어쩌면 너를 잊기도 하지 ... 나훈아 씨 특유의 창법과 애절하고 예쁜 가사로 만들어진 곡. 1998년 IMF 외환위기 시절 발매되어 나훈아가 90년대에도 건재함을 알렸다. 발라드 풍의 곡으로 수많은 남녀 커플이 이 노래를 좋아한다.

오로라: 인도풍 느낌이 나지만 나훈아 특유의 간드러지고 감성적인 목소리가 느껴지는 애절한 느낌의 노래.

꿈속의 고향 : 가고파도 갈 수없는 고향이기에...

한백년 : 이왕에 만났으니 한백년은 살고갑시다...

행복을 비는 마음 : 차라리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후회 : 내가 먼저 사랑하던 그 사람 버려놓고...

공항의 두 얼굴 : 떠날 시간 남겨놓고...

나훈아 스토커 테러

1972년 6월 4일, 어느 스토커 같은 이에게 테러당해서 한동안 입원한 적도 있다. 사이다 병 파편으로 왼쪽 얼굴을 찔렸는데 무려 70여 바늘이나 꿰맸고 지금도 그 흉터가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남진이 사주했다는 소문이 돌아서 한동안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남진은 "재론할 가치조차 없다"고 잘라말했으며, 남진이 관련됐다는 증거도 없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라이벌인 남진도 테러당한 적이 있다. 1990년대 TV에 나와 과거를 회상할 당시 가수 위기를 겪었다고.영화배우 김지미가 나훈아의 재능을 크게 사서 예절과 서예 등 다방면에 걸쳐 가르쳤다. 그 덕분에 현재도 나훈아는 서예에 능하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연인 사이를 유지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오랜 기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나훈아는 훗날 "김지미는 나를 남자로 만들어 준 사람"이라 평했다. 김지미도 "진정 남편으로 믿고 의지할 남자였다"라고 평했다. 나훈아는 김지미에게 수천만 원의 돈을 건넸는데 "여자 혼자 살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엔 이혼한 여자 혼자 살기 힘든 세상이긴 했지만 나훈아의 대인배다운 면모가 보이는 일화. 한편으로 김지미와 나훈아의 혼인이 화목했던 기간은 별로 길지 않았으며, 김지미는 주위에 간혹 나훈아와의 혼인이 조금 후회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내용을 말한 적도 있다. 원래 둘은 평범하게 식당을 경영하면서 살고 싶어했지만 나훈아가 가수로 복귀하면서 둘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고.

2008년에 일본 야쿠자와 여배우 K17를 놓고 시비가 붙어 고자되기를 당했다는 헛소문이 돌았다. 헛소문이 너무 돌자 이런저런 의혹에 답변하고자 1시간짜리 기자회견을 열었고 기자회견을 어느 정도 진행하다가 "제가 여러분이 원하시는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하더니 바지를 내려서 증명하려 하는 과감한 퍼포먼스를 보였다. 나훈아가 웃통을 걷어부치고 단상 위에 올라가자 당연히 기자회견장이 술렁거리며 셔터들이 미친 듯이 터지기 시작했고 나훈아는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증명해 주세요. 제가 지금 여기서 딱 5분간 보여드리면 믿으시겠습니까?"라는 유명한 발언을 남겼다. 이때 나훈아의 팬들이 나훈아를 굳게 믿는다고 외쳐서 내리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와 별개로 기자정신 같은 변명만 꺼내는 기자들은 욕먹기에 바빴다.

거침없긴 했지만 이렇게 적극으로 해명한 덕에 스캔들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들으면 퍽이나 웃긴 모습 같지만, 실제로 나훈아의 용감한 행동에 압도되어 이런 류의 소문은 쏙 들어갔다. 그 외에 인터뷰로 "여러분(기자)들이 펜으로 사람(연예인들)을 죽이는 겁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당시 루머에 휩싸였던 후배 배우들을 강하게 언급했다.

대중문화 기자 백은하는 "땅으로 내려왔던 셀러브리티가 그렇게 다시 하늘에서 빛나는 별로 올라갔다."라고 그 '퍼포먼스'를 평했고 음악을 평론하는 차우진은 "이런 카리스마는 어떤 지도자에게서도,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상파 방송에서도 생중계 되고 있었는데 보는 사람 모두 입을 쩍 벌리고 놀라며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정말 저 순간의 카리스마는 역사에 남을 정도다.

이와는 별도로 개그맨 황기순의 첫 번째 부인 불륜 상대가 나훈아였다는 소문이 한때 돌았지만 그냥 루머인 채 끝났다.2012년 12월에는 인도와 티베트를 돌아다니며 심신을 달래고 있었다고 한다. 지인이 말한 바로는, 거의 도사의 모습이 됐다고.

2013년 1월, SNL 코리아 최민수 편에서 최민수가 패러디하기도 했다. 다만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뭘 패러디 한 건지도 알 수 없게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녹였다.

나훈아 세번째 결혼 재혼 전부인 정수경 2013년 4월 세 번째 부인 정수경과의 이혼 소송 중. 제일심에서 승소하였으나 정 씨 측에서 상고를 결정한 듯. 또한 지병이 있다는 게 알려지고 칩거하는 중. 양평에 있던 자택도 내놓았다고 한다.

나훈아의 아내 정수경이 2014년 10월 8일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나훈아도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한다. 결국 조정 절차 거쳐 이혼에 합의 하였고 재산분할로 12억을 지급하였다.

나훈아 전부인 아내 직업 이혼 사유 이유 재혼 결혼 세번째

나훈아 결혼은 총 세번. 나훈아 첫번째 부인은 1973년 배우 고은아의 사촌관계인 이숙희와 결혼을 했다가 2년만인 1975년 이혼을 하게 된다. 당시 나훈아는 한국 공군에 자원 입대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결혼생활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나훈아 첫번째 이혼 이후 1976년 두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나훈아 재혼 상태는 미모와 몸매로 인정을 받던 글래머 배우 김지미. 나훈아 김지미 나이차이는 7살 차이로 연상연하 커플로 큰 화제가 됐었다.

나훈아는 김지미에 대해서 <김지미는 나를 남자로 만들어준 사람이다>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훈아 김지미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훈아가 가수로 복귀를 하게 되면서 갈등이 벌어졌고 결혼 6년만인 1982년 이혼을 하게 된다.나훈아 두번째 결혼 재혼 이혼 당시 나훈아는 김지미에게 수천만원의 위자료를 준다. 당시로 따진다면 엄청난 위자료. <남자는 돈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여자는 혼자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훈아 전부인 아내 와이프 전처 정수경 이혼 사유 이유 세번째 재혼 결혼

나훈아 세번째 결혼은 1985년 4년간 동거해오던 14살 연하의 후배 가수 정수경. 나훈아가 이혼 후 재혼을 한 시간이 짧기 때문에 나훈아 바람, 나훈아 외도 나훈아 불륜 등과 같은 루머가 나왔다.

나훈아는 이전까지 자녀가 없었지만 부인 정수경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낳게 된다. (나훈아 자녀 자식 아기 아이 딸 아들)현재 부인과 아들, 딸은 미국에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나훈아 이혼 아내 정수경이 나훈아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내게 된다.

나훈아 정수경은 거의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수경이 이혼소송을 제기한 이유 <나훈아의 오랜 잠적 생활> 때문이였다고. 정수경은 이혼 소송을 제기한 지 9개월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남편이 좀 쉬어야겠다. 내가 연락할 때까지 전화하지 말라고 말한 뒤 그 길로 행방을 감췄다고 한다.나훈아 세번째 전부인 아내 이혼 사유 이유 정수경 가정 생활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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