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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 사건 근황 카사노바 프로필 성추문 판사 판결문

by 제로스 2023.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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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 박인수 사건 프로필

박인수 사건이란, 대한민국 제1공화국 정부 시기였던 1950년대 중반 대한민국 현역 해군 헌병 대위를 사칭한 박인수가 70여명의 여성들과 무분별한 성관계를 가졌던 성추문 사건을 말한다

박인수는 단 한명의 여성만이 처녀였다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으며 1심에서는 무죄, 2심과 3심에서는 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54년 4월부터 1955년 6월까지 해군 헌병 대위를 사칭한 박인수가 여대생을 비롯해 70여명의 여인을 간음한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다.

박인수는 중학을 중퇴하고 해병대에서 헌병 부사관으로 복무하던 중 애인에게 배반을 당하자 타락하기 시작했다. 박인수는 군에서 전역한 1954년 4월부터 주로 해군장교 구락부, 국일관,낙원장 등을 무대로 해군 헌병대위를 사칭하며 소위 '처녀 사냥'에 나섰다. 그리고 불과 1년 남짓한 사이에 70여명의 여성과 관계하였다. 훤칠한 키의 미남자였던 박인수는 헌병으로 복무시절 익힌 사교춤 실력으로 여성들을 유혹했는데 피해여성들의 상당수가 여대생들이였으며 국회의원과 고위관료의 딸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법정에서 검사가 '혼인을 빙자한 간음'이라고 주장했으나, 박인수는 이를 부인하였다. 박인수는 '자신은 결혼을 약속한 적이 없고, 여성들이 스스로 몸을 제공했다.'하면서 그 많은 여대생은 대부분 처녀가 아니었으며 단지 미용사였던 한여성만이 처녀였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런 박인수의 주장은 '순결의 확률이 70분의 1이다'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세상의 큰 관심을 모았었다.

 

 

박인수 사건 판결문

이에 1심 법정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고 하면서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단지 공무원 사칭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하여 2만환의 벌금형에 처하였다. 그러나 2심, 3심에서는 유죄가 선고, 1년의 징역형이 확정되었다.

21일 방송된 SBS스페셜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부제로 이야기꾼 장항준 감독과 장도연, 장성규가 성폭력 판결 속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를 지적하며 낮은 여성 인권에 분노했다.

이날 방송은 1955년 박인수의 '혼인빙자 간음죄'에 대한 1심 판사의 발언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로부터 시작했다.

장항준은 "1, 2심 재판부 모두가 이 사건의 핵심은 여성의 정조라고 본 거다"라며 "이렇게 되니까 사건의 이슈가 묘하게 변질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피해자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장도연은 당시 신문 기사를 "이 정조관을 이 사건에서 누구나 한 사람일지라도 행동으로서 증명하여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라고 전하며 "댓글 아니고 오타 아니고 신문에 기고됐던 글이다"라고 덧붙였다. 장항준은 "'왜 한 명도 극단적 선택하지 않느냐. 이런 수치스러운 사건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라며 분노했다.

이어 1973년 10대 남성의 동급생 여성 성폭행 사건을 조명하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1심에서 남성에게 징역형을 선고했으나, 2심 판사는 "기왕 버린 몸이니 오히려 짝을 지어줘 백년해로시키자"라며 2차 가해까지 범했다.

장항준은 "이 프로는 우리 딸이 안 봤으면 좋겠다"라며 분노했다. 장항준의 친구는 "다 공범이다. 고소를 안 해도 기소가 되는 것 아닌가. 법에도 문제가 있었다"라며 당시 친고죄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야기꾼 세 사람은 실제 재판을 모티브로 한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를 소개했다. 성폭행을 시도하던 남성이 여성의 방어로 혀가 절단됐고, 피해 여성은 '과잉방어'로 구속됐다.

장항준은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선고받는다. 유죄다"라고, 장성규는 "검사고 상대 변호사고 판사고 여자를 공격했다"라고 설명했다.

장항준의 친구는 영화 속 문구 '법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면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혀만을 보호하라'를 두고 "잘린 혀도 밉겠지만 이후 자기가 겪었던 사람들의 혀가 고통스러웠겠다"라며 분노했다. 장항준도 "피해자를 힘들게 한 건 후자였을 거다"라고 말했다.

장성규는 "65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정조를 이야기하는 판사가 있다"라며, 2018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판결을 지적했다. 장항준은 "왜 그런 빌미를 제공했냐는 자책을 들게 만든다. 가해자보다 나쁜 짓을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장항준의 친구는 "이게 지금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가부장적 문화 때문에 겪어냈던 수많은 사건들. 알려지지 않은 건 얼마나 많겠나"라며 일련의 사건들에 분노했다.

장항준은 "변하지 않는 결론은 그거다.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주의는 반드시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아야 되는 잘못된 가치관이다"라고 알렸다.

한편 이야기꾼 세 사람은 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다시 읽기도 했다. 장성규는 "납치혼이다"라고, 장항준은 "시작부터 범죄, 감금이다"라고 설명했다. 장도연은 "선녀의 입장은 없는 거다. 여성을 향한 남성들의 소유욕이 '이건 범죄다'라고 인식을 못 한 거다"라고 지적했다.

2부에서는 박인수 사건이 전파를 탔다'박인수 사건'은 댄스홀을 무대로 약 1년 동안 무려 70여 명의 여성을 상대로 벌인 성추문 사건을 말한다.

당시 박인수가 검거됐지만 법원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지난 1955년 20대 해군 대위가 수많은 여성들을 희롱하고 다닌다는 정보가 당시 검찰에 접수됐다.

당시 박인수는 대위 신분도 아니었다. 대학생 신분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후 대위로 진급한 박인수는 장교로 복무하다 부대를 무단 이탈해 불명예제대를 했다. 그러나 이후 그는 여자를 만날 때 자신을 대위라고 신분을 속였다.

장현성은 "50년대 할리우드 남자 배우 스타일"이라고 박인수의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언급했다.장성규는 "화술과 매너가 기가 막혔다"며 "최고의 매력 포인트가 댄스였다"고 덧붙였다.

당시 피해자 중에는 명문가 자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인수는 법정에서 "나는 결혼을 약속한 적 없고 여자들이 제 발로 따라 왔다"며 "댄스홀에서 함께 춤을 춘 후에 여관으로 가는 것이 상식화 되어 있었으므로 구태여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빙자할 필요가 없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한 바 있다.

그는 1심에서는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공무원 사칭에 대해서는 2만환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이후 그는 2심, 3심에서는 유죄가 선고, 1년의 징역형이 확정되었다.

박인수 근황

2000년대와서 언론이나 방송사에서 동사무소 컴퓨터를 찾고 옛 기록을 찾아봤던 끝에 나온 행적은 이후 어찌 결혼해 대구에서 부인 명의로 카바레를 운영했지만, 화재로 건물이 불타자 인천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것까지 밝혀졌으나, 이후로도 찾아오는 언론에 질려서인지 행방을 숨기고 살아갔으며 이후 행적은 드러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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