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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허성희 나이 박재란 전남편 결혼 이혼 딸 고향 자녀 가족 프로필

by 제로스 2023.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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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가수 박재란 프로필

가수 박재란 나이 학력 고향 본명 가족관계 종교 자녀 딸 박성신 결혼 남편 이혼 결혼

출생: 1938년 (82세), 서울특별시

학력: 천안초등학교병설유치원

자녀: 박성신

앨범: 다시듣고 싶은 그노래 20곡 특선집, 박재란 골든

부모: 유순남, 이수천

가수 박재란 프로필

朴載蘭

본명 이영숙

李英淑

출생 1940년 12월 16일 (79세)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

직업 가수, 작사가, 배우

장르 팝 음악, 폴카, 왈츠, 재즈 팝

악기 기타, 오르간

활동 시기 1953년 ~ 현재

배우자 박운양(이혼)

가족 형제자매는 언니 4명과 오빠 1명 박재국과 누이동생 1명

아버지 이수천(오르가니스트)

어머니 유순남(개신교회 성가대원)

자녀는 2녀

첫째딸 박성은

둘째딸 박성신(가수)

학력 충청남도 천안여자중학교 중퇴

종교 개신교(장로회)

박재란 나이 1938년 (82세).박재란 고향 서울특별시.박재란(朴載蘭, 본명(本名)은 이영숙(李英淑), 1938년 12월 16일 ~ )은 대한민국 여성 가수 겸 작사가이며 영화배우, 뮤지컬배우이다.

가요무대 트로트가수 출연자 나이 총정리

가수 박재란 나이 82세

가수 김희진 나이 45세

가수 조항조 나이 61세

가수 허성희 나이 62세

가수 배금성 나이 50세

가수 소냐(본명 유손희) 나이 40세

가수 박혜신 나이 38세

가수 이태원 나이 72세

가수 오예중 나이 39세

가수 성진우 나이 50세

가수 류계영 나이 56세

가수 방주연 나이 68세

가수 나진기 나이 43세(나훈아(나이 73세) 사촌)

가수 현숙 나이 61세

가수 신미래 나이 30세

가수 이정옥 나이 51세

가수 권성희 나이 66세

가수 최연화 나이44세

최연화 과거 중국 공무원 국적 중국 키165cm 몸무게49kg 소속사 로이엔터테인먼트 2010년 노래 '시집 갈래요'로 데뷔 했다.

 

박재란 고향

​본관은 공주(公州)이며 경성부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경기도 인천 제물포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녀는 아직 일제 강점기 시절이던 1941년(4세 시절) 일가족과 함께 충청남도 천안에 이주하면서 이후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10세 시절이던 1947년에 부친상(父親喪)을 치렀으며 1953년 이영숙(李英淑) 본명으로 주한 미8군 무대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가수 첫 데뷔를 하였다.

 

이후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 박태준(朴泰俊)에게 발탁되어 박태준을 사부(師父)로 모시고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김광수를 사숙(師叔)으로 모시며 박태준의 문하에서 음악 수련을 하며 박태준에게서 박재란(朴載蘭)이라는 예명을 얻었다. 1957년 정식 가수 데뷔하였고 이후 《뜰 아래 귀뚜라미》, 《러키 모닝》, 《코스모스 사랑》,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 등을 비롯한 노래들이 히트하였다.

 

1년 후 1958년에는 파인 김동환의 시에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김동현이 작곡한 《산 너머 남촌에는》을 불러 연이은 히트 기록하였고, 이듬해 1959년 영화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의 단역 출연을 통하여 영화배우 데뷔하였다. 같은 해 1959년에는 당시 미국 가수 겸 기타리스트 및 작사가 겸 영화배우 벌 아이브스(Burl Ives)가 미국 시인 겸 라디오 MC였던 웨블리 에드워즈(Webley Edwards)와 공동으로 영어 가사로 작사하고 작곡 한 《Pearly shells》라는 노래 작품을 작사가 전우가 한국어 가사로써 번안 작사하고 박춘석이 편곡한 《진주 조개잡이》라는 노래를 받아 불렀다. 이 노래 작품은 국내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 여름 애창 노래 가운데 인기 애창 번안곡에 손꼽히는 노래가 되었다.

박재란 자녀 자식 아이 아기 박재란 딸 아들

박재란 자녀는 2녀 를 낳았지만 둘째 딸 가수 박성신 은 사망 했다.

현재 첫째딸 박성은 을 슬하에 두고 있다.

박재란 가족 관계

가족 형제자매는 언니 4명과 오빠 1명 박재국과 누이동생 1명.아버지 이수천(오르가니스트).어머니 유순남(개신교회 성가대원) 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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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박재란이 미국행을 선택했던 이유는 이혼에 대한 상처였다.18일 방송된 KBS2 '여유만만'에는 가수 박재란이 출연해 근황을 알렸다.40여 년간의 공백기를 깨고 '여유만만'을 찾은 박재란은 "결혼 후 연예계 생활과 가정을 함께 돌볼 수 없더라. 남편에게 결혼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밥을 해준 적이 없다. 결국 이혼하게 됐다. 남편에게 잘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두 딸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일하느라 딸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면서 일에 대한 열정 때문에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첫 남편과 13년 만에 이혼한 박재란은 이혼의 아픔을 잊기 위해 미국행을 택했다. 박재란은 "요즘에는 이혼을 참 많이 하지 않느냐. 그러나 제가 인생을 살아온 결과 한 번 결혼했으면 좀 참을 수 있는 선까지는 참고 유지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돈만 벌 줄 알았다. 전남편이 사업했는데 (내가 벌어놓은) 돈이 사라졌다”며 “워낙 빚을 많이 졌고, 사업하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내 돈으로도 빚을 다 갚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갈현동 구석 전셋집으로도 이사 갔었다. 집 두 채 다 팔아먹었다”며 “그래도 두 딸이 있으니까 가정을 지키려고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 당시 명동에 있던 다방 마담과 전남편이 홍콩으로 도망가려고 비자까지 다 받아놨더라”라며 “그때 이혼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안 되겠다. 너를 내가 남편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전남편하고 이혼할 때 내가 피해 다녔다. 전남편이 이혼을 안 해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가수 한명숙 집에 숨어있던 박재란은 “남편이 나를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하늘이 두쪽이 나도 네 마음은 변치 않았을 거야’라고 말했다”라고 회상했다.

이에 박재란은 전남편에게 “‘하늘이 두 쪽 나도 변치 않을 사람이 변했을 때는 끝난 거야. 가’라고 말했다. 이게 마지막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여자가 당시 이혼한다는 건 죽은 생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울증이 왔었고, 미국에 갈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한국에서 살 수 없더라. 남에게 사기도 많이 당했다. 제가 너무 상처가 커서 한국에 머물 수가 없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박재란은 "두 딸을 두고 먼저 미국으로 떠났었다. 이후 내 여건과 아이들 아빠 때문에 15년 이상 만나지 못했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미국에서 신문으로 딸인 박성신이 가수로 데뷔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미국 생활 당시 떳떳하게 딸들을 만나러 오고 싶었지만 상황이 안 좋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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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란의 둘째 딸 고(故) 박성신은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가창상과 장려상을 수상한 후 가수로 데뷔했다. '한번만 더' 등의 히트곡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고 박성신은 2014년 향년 45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박재란은 "미국에서의 제 삶은 하루하루가 눈물이었다. 미국에서 가수 활동을 했다. 1970년대 중반 한인 교포들이 너무 적어 연예인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너무 적었다. 결국 밤업소에서 일할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박재란은 그곳에서 또 사기를 당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동업자로 인해 약 20억 빚을 지게 됐다는 박재란은 우울증에 빠졌다. 이에 대해 박재란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다. 쫄딱 망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내가 미국에서 성공하고 돌아가야지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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