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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나이 와이프 전부인 이혼 결혼 재혼 프로필 근황 고향 자녀 가족

by 제로스 2023.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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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조용필 프로필

조용필 나이 키 학력 고향 혈액형 가족관계 본명 종교 소속사 데뷔

출생: 1950년 3월 21일 (70세), 화성시

키: 166cm

본명: Cho Yong-pil

배우자: 안진현 (1994년–2003년), 박지숙 (1983년–1988년)

​이름

조용필(趙容弼)

국적

대한민국

출생

1950년 3월 21일 (70세), 경기도 화성시

본관

임천 조씨

신체

166cm, O형

소속

YPC프로덕션

학력

송산초등학교

경동중학교

경동고등학교

가족

배우자: 안진현

취미

음악 감상, 골프, 기타 연주

특기

작곡, 작사

별명

가왕, 작은거인, 풀빵, 조방범

종교

불교

조용필 올라프는 추신수

조용필 오르가즘 추신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에 댓글은 안 달리고 추천만 열심히 박히는 현상을 의미하는 조용히 올라가는 추천수에 디시인사이드 특유의 어법으로 말장난을 친 것이다. 오르가즘이라는 어휘를 그대로 쓰기 민망한, 다소 점잖은 커뮤니티에서는 조용필 올라가는 추신수, 조용필 올라프 추신수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댓글은 달지 않고 추천만 세게 박히는 이유는, 감동과 여운이 짙은 게시글이나 순수한 공감을 크게 불러일으킬 경우, 이렇다 할 말은 생각나지 않는데 추천은 주고 싶기 때문이다.혹은 개념글에 올려야 한다는 공감이 모일 경우 생겨나며, 디시인사이드처럼 일정 댓글 이상 작성되어야 개념글에 올라가는 경우에는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무의미한 댓글 작성을 반복하여 조작의 향기가 짙게 풍기기도 한다.

 

조용필 노래 앨범 음반

비련

조용필 베스트 1집 · 2013년

꼬집힌 풋사랑

Best 2집 · 1992년

돌아와요 부산항에

돌아와요 부산항에 / 정 · 1984년

Bounce

Hello · 2013년

창밖의 여자

조용필 1집 · 1980년

단발머리

조용필 1집 · 1980년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여행을 떠나요

30주년 기념 음반 Part 3 · 2000년

기다리는 아픔

조용필 40주년 기념 콘서트 · 2016년

바람의 노래

조용필 16집 · 1997년

킬리만자로의 표범

허공 · 1985년

Omoide Maigo

Cho Yongpil Original Hitshu Pusankohekaere Omoidemaigo · 2011년

고추 잠자리

조용필 · 1981년

못찾겠다 꾀꼬리

The Musician Series (조용필, 송골매) · 2006년

13집 (13th) The Dreams · 1991년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12집 (12th) 90-Vol.1 Sailng Sound · 1990년

허공

허공 · 1985년

어제, 오늘, 그리고

여행을 떠나요 · 1985년

잊혀진 사랑

조용필 1집 · 1980년

걷고 싶다

Hello · 2013년

바람이 전하는 말

허공 · 1985년

Let's Go Travel

여행을 떠나요 · 1985년

대전블루스

조용필 1집 · 1980년

한오백년

조용필 베스트 1집 · 2013년

일편단심 민들레야

조용필 · 1981년

모나리자

`88 조용필 10집 · 1988년

친구여

Best 1집 · 1991년

강원도아리랑

조용필 · 1981년

서울 서울 서울

Best 1집 · 1991년

보고싶은 여인아

조용필 4집 · 1980년

Pusankou We Kaere

조용필 1집 · 1980년

Opening Hello

45Th Anniversary Concert Hello · 2015년

대한민국의 남자 가수. 가왕(歌王)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가요 역사상 최고의 가수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가수중 한명으로 역대 가요대상 최다 수상자이자 한국 20세기 최고가수로 선정된 대한민국 가요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엄청난 기록과 커리어를 써낸 전설적인 가수이다.

조용필 데뷔

1950년 3월 21일 경기도 화성시 태생. 경동고등학교 1969년 25회 졸업생. 1968년 고등학생 시절 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 "창밖의 여자"로 정식 데뷔했다. 데뷔 50년동안 꾸준하게 현역가수로 활동하고 있고 아직도 거의 매년 전국투어 콘서트를 진행중이다.

국내 탑클래스 가수만이 도전이라도 해볼 수 있는 잠실 주경기장 콘서트를 무려 7번이나 매진시켰다. 국내 콘서트 최다 관객 동원 타이틀도 당연히 조용필이 가지고 있다. 그의 커리어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70년대, 80년대, 90년대, 10년대에 걸쳐 차트 1위곡 보유. LP, 테이프, CD, 음원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히트곡과 한국 내 최대 콘서트 인원 동원 기록, 예술의 전당 7년 연속 공연 기록을 가진 가수다. 말이 필요 없는 한국 대중음악의 살아있는 전설. 이 문서 최상단 항목에도 공중파 연말 가요대상을 전관왕 4회 및 4연패 두번을 포함해 총 11회를 수상한 진기록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도 1987년 더 나은 음악을 하고자 TV프로 대상 수상 거부를 선언한 결과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가수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중 한명이자 동시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가요계의 제왕. 아무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슈스케에서 김태우가 이승철을 가왕이라고 호칭하자 이승철 曰 "그건 용필이 형이지."라면서 스스로 부정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조용필의 음악적 재능, 음악성, 그리고 엄청난 업적도 있지만 그의 겸손함과 끊임없이 배우려는 마인드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이다. 조용필은 저런 멘트를 그저 웃자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 80년대초부터 정규 19집을 낼 동안 끝없이 자신을 넘고 넘어왔다. 판소리와 락/팝의 접목, 오페라와 락의 접목 등, 장르를 초월한 가수가 그저 되는 게 아니다. 2013년 바운스가 히트할 때도 끝없이 배우고 도전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가왕이란 말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긴 한데, 다름아닌 조용필 자신이다. 2011년 4월의 인터뷰에 따르면 '가왕', '국민가수'와 같은 별칭이 본인에겐 민망하다며 크게 마음에 담아두진 않는다고 한다. 그냥 '조용필'이라는 이름 석 자 그대로 불리기를 바란다고 한다.

오빠부대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가수이기도 하다. 당시 9시 뉴스에서 조용필을 따라다니는 오빠 부대 열성팬에 대한 보도를 이례적으로 내보낼 정도였다. 이 단어의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는지 '오빠부대'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다.

여러분, 기도하는~의 다음 가사를 아십니까? 바로 꺄악~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미8군 출신의 마지막 히트가수이다. 미8군은 당시 한국 대중음악의 시발점이자 중심지였고 프로들의 무대였다. 장르 분화가 강해지고 언더그라운드/인디 개념이 나타나기 전에 바닥부터 올라온 마지막 가수. 전국구 방송이 아닌 지역 기반으로 전국구 스타가 된 마지막 가수다.

조용필 전부인 아내 와이프 전처 조용필 결혼 이혼 재혼 사별 사망

조용필은 1984년 3선 국회의원 박찬의 딸 박지숙과 결혼하지만 결혼기간의 갈등 끝에 4년만에 합의 이혼했다. 이혼 당시 대부분 재산을 양도하고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등 가왕다운(?) 모습을 보였으며 원만하게 이혼을 하여 별 추문 같은 게 없이 조용히 끝났다.

이후 그는 94년 미국 로비스트 출신 안진현과 재혼했다. 안진현은 조용필의 음악적 삶을 존중하며 내조하고, 그는 이러한 아내에 대해 애정을 숨기지 않는 잉꼬부부의 모습을 보여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결혼 5년만에 심장병에 걸린 안진현은 2003년 1월 투병 도중 사망하게 된다.조용필 자녀 자식 아이 아기 는 없는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안진현의 사망소식은 주요언론매체에 의해 자세히 보도되었는데, 조용필은 장례를 치르는 내내 핼쑥한 모습으로 상주를 서다가 간간히 오열하는 모습 등을 보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아내의 사망 이후 조용필은 상속액 전액을 심장병 환자들을 위해 기부하였으며, 현재까지 수익의 일부를 정기적으로 심장병 환자들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2003년 18집에 수록된 노래 '진' 은 바로 아내를 그리며 작곡한 노래로 알려져 있다. 같은 해 조용필이 잠실운동장에서 처음 공연을 한 35주년 기념 콘서트날 공교롭게 비가 엄청나게 내렸는데 조용필은 이 노래를 부르던 말미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정치인 허경영이 2004년 10월엔 “가수 조용필의 부인인 안진현에게 동양화 매매대금을 받지 못했다”면서 조용필을 상대로 50만달러의 매매대금 청구 소송을 냈다. 증인이 없으니 우기면 삥 좀 크게 뜯어낼 거라고 고인을 이용해서 정신나간 소송을 했지만, 어차피 근거도 없고 증거도 없어 패소했다.

대표곡은 "고독한 Runner", "고추잠자리", "그 겨울의 찻집",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그대여", "기다리는 아픔", "꿈", "나는 너 좋아", "눈물의 파티", "내 이름은 구름이여", "단발머리", "돌아와요 부산항에", "돌아오지 않는 강", "마도요", "모나리자", "못 찾겠다 꾀꼬리", "미워미워미워", "미지의 세계", "바람이 전하는 말", "바람의 노래", "바운스", "비련",

"서울 서울 서울", "슬픈 미소", "슬픈 베아트리체", "어제, 오늘, 그리고", "여행을 떠나요",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정의 마음", "창밖의 여자", "촛불", "추억 속의 재회", "친구여", "킬리만자로의 표범", "태양의 눈", "한강", "한오백년", "허공", "헬로", "Q" 등 매우 많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공연이 히트곡으로만 구성되었는데도 양일 겹치는 노래 없이 이틀이나 진행되었다.

실제로 본인도 콘서트 멘트 중 발표한 곡이 너무 많아서 다 하려면 며칠을 해야 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조용필의 콘서트를 마치고 콘서트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oo가 듣고 싶었는데" 하는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데 멘트도 거의 없이 노래로 모든 공연을 꾸며서 타 가수들에 비해 콘서트에서 부르는 곡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이 정도니 히트곡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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