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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사건 범인 몽타주 피해자 생존자 그것이알고싶다 영화

by 제로스 202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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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소년 사건 대구 성서초등학생 살인 암매장 사건

1991년 3월 26일 – 2002년 9월 26일

원인: 실종

위치: 대구광역시

사망자: 김종식, 박찬인, 김영규, 조호연, 우철원

최초 보고자: 오우근

날짜: 1991년 3월 26일 – 2002년 9월 26일

결과: 2002년 9월 26일 와룡산 세방골 중턱에서 실종자의 유골 발견

개구리 소년 사건

날짜 1991년 3월 26일

위치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달서구

좌표 북위 35° 51′ 52″ 동경 128° 31′ 15″좌표: 북위 35° 51′ 52″ 동경 128° 31′ 15″

최초 보고자 오우근

참여자 미상

원인 실종

결과 2002년 9월 26일 와룡산 세방골 중턱에서 실종자의 유골 발견

사상자

5명 사망

피해

사망자 김종식, 박찬인, 김영규, 조호연, 우철원

조사

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 만료

개구리소년사건 사건 날짜 개구리 소년 사건은 1991년 3월 26일에 대구직할시 달서구에 살던 다섯 명의 초등학교 학생이 도룡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실종된 사건을 말한다.1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 이형호 유괴 살해 사건과 함께 3대 미제 사건 중 하나이다.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는 말이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고 왜곡된 것이 초기에 널리 퍼지면서 "개구리 소년"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사건 발생일인 1991년 3월 26일은 5·16 군사 혁명 이후 중단된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하여 기초의회 의원을 뽑는 시·군·구의회 의원 선거일로 임시 공휴일이었다.

5명의 초등학교학생이 그것도 같은 날 동시에 실종된 이 사건은 당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고, 사건 발생 2년 후인 1993년에는 KBS 1TV의 사건 25시와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심층적으로 방영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공중전화 카드, 엽서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어린이 만화 비디오테이프 등까지 대대적으로 캠페인이 전개되면서 남녀노소 대부분이 이 사건에 대해 인지할 정도였다.당시 정부는 경찰과 군을 대대적으로 투입하여 현장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전국적으로 수배 전단이 배포되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미제 사건으로 묻히는 듯하다가 사건 발생 11년 6개월만인 2002년 9월 26일에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쪽의 와룡산 중턱에서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어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끝내 아이들의 사망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2006년 3월 25일 24시에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되면서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공소시효 만료 이후에도 범인을 찾기 위하여 7명의 형사들이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담당하는 대구 성서 경찰서에서 전담팀이 구성되어 있다.대구성서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니던 동네 아이 다섯 명은 1991년 기초의원선거로 인한 임시 공휴일이었던 1991년 3월 26일에 대구직할시(현 대구광역시) 달서구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갔다. 아이들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으며, 부모들은 경찰서에 실종 신고했다.

개구리소년사건 피해자 사망자 사망 아이 아동 명단

사망 아동 명단

다섯 아이들은 다음과 같다.(나이는 1991년 실종 당시의 나이이다.)

우철원 (禹喆元, 1979년생, 13세, 6학년, B형) 보호자 : 우종우, 장명자

조호연 (趙浩衍, 1980년생, 12세, 5학년, O형) 보호자 : 조남환, 김순녀

김영규 (金榮奎, 1981년생, 11세, 4학년, B형) 보호자 : 김현도, 최경희

박찬인 (朴燦印, 1982년생, 10세, 3학년, B형) 보호자 : 박건서, 김임자

김종식 (金鐘植, 1983년생, 09세, 3학년, O형) 보호자 : 김철규, 허도선

개구리소년사건 생존자 근황 생존 아동 명단

김태룡 (1982년생, 당시 3학년)

(그는 아침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밥을 먹고 가겠다고 했고, 결국 유일무이한 생존자가 되어 버렸다.) 다만 개구리소년 관련 영상 프로그램에서 그의 근황은 알 수 없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전국민의 관심을 끌었으나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성한 소문을 불러일으켰다. 1992년 11월에는 돌아오라 개구리소년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할 정도였다. 그리고 2003년에 가수 MC 스나이퍼는 〈개구리소년〉이라는 노래를 내기도 했다. 2005년에는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라는 실화소설이 출간되기도 했다.

개구리소년사건 진행 근황

2020년 심령수사 LOST팀이 와룡산에 와서 고스트 박스에서 주파수 탐지기로 남긴 범인의 옷이 은박지색이라 말하였고, 2.3명이라 하며 지저동에 군수 공장에 왔다고, 단서를 얻었다.

개구리소년사건 영화 돌아오라개구리소년 아이들

1991년 3월 26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서 지역에 살던 5명의 국민학생들이 인근 와룡산에 올라갔다 동반 실종된 사건으로, 국내에서 발생한 실종 사건 중 가장 유명한 어린이 실종 사건이다. 소위 국내 3대 영구 미제 사건. 나머지 두 사건은 《살인의 추억》으로 영화화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3과 《그놈 목소리》로 영화화된 이형호 유괴 사건으로, 본 사건은 《돌아오라 개구리 소년》과 《아이들…》로 영화화되었다.

 

개구리소년사건 부검 기록 개구리소년사건 사망 원인 이유 사유 사인

아이들 중 가장 힘이 세고 나이가 많은 맏형인 우철원 군은 두개골에 찍힌 상흔만 무려 25군데나 발견됐는데, 이는 다른 소년들보다 범인에게 더 맹렬히 저항하다 본보기로 크게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럼에도 의혹은 여전히 남아있는데, 두개골에 찍힌 'ㄷ'자 모양의 상흔들이 흐트러짐 없이 반복적이고 규칙적이며, 이는 소년이 아직 살아있을 때 생긴 외상흔이라고 한다.가장 막내인 종식 군의 왼팔이 골절된 것은 범인이 소년들을 뒤에서 붙잡고 오른손으로 흉기를 내려쳤다는 가정하에, 왼팔을 먼저 들어서 막은 것으로 보아 범인은 오른손잡이이며 소년들의 좌측 두개골에 나타난 상흔들만 봐도 우측에서 위아래로 강하게 내려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영규 군의 옷소매와 단추는 찢어져 있었으며, 강한 물리적 압력에 의한 것으로 매듭 역시 도망치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기 위해 묶은 것으로 보인다.다른 소년들과는 달리 찬인 군과 호연 군에게는 특별한 외상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소년들이 차례로 희생되고 가장 마지막에 남아서 교살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개구리소년사건 그것이알고싶다 그알

800회 특집을 맞아, 국내 3대 미제 사건의 2번째 편으로 《개구리 소년 편》을 방송했다.19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미 93년과 2002년에 이 사건을 다룬 바가 있었다.방송은 아이들의 유골에 드러난 타살 흔적을 바탕으로 살해 도구를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 여러 공구들을 토대로 실험해 본 결과, 가장 유력한 살해 도구로 추정되는 것은 용접 후 생기는 찌꺼기를 끊거나 때려서 제거하는 데 쓰이는 용접 망치로, 흔히 깡깡 망치라고 불리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도구지만, 공사 현장이나 공장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공구라고 한다.이 소년들이 살해된 시점에 대해 채종민 법의학자는 "초등학생 때는 이미 영구치가 자란 성인들과는 달리 6개월 단위로 치아 발육이 달라지는데, 이 점을 토대로 미루어볼 때, 개구리 소년은 1991년 3월 26일에 실종된 후 아무리 길게 잡아봤자 6개월 이내에 살해되었을 것"으로 주장했다. 그리고 두개골 하나는 돌에 눌려 납작하게 변형이 되어 있었는데, 당시 부검에 참여했던 채종민 법의학자는 "뼈도 70~80%는 물로 이루어져 있고, 물이 있어야 변형이 일어날 수 있다."라고 지적하였다. 이는 아직 뼈의 물기가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돌에 눌렸음을 뜻하는 것으로, 아이들이 살해된 직후에 매장되었을 것이란 걸 말해준다.

미국의 법의곤충학자 데이비드 포크너 또한, 조호연의 두개골에서 나온 구더기 껍데기를 통해 "소년들이 살해된 직후에 곧바로 매장되었다"라고 주장했다. 조호연의 두개골에는 성체 파리가 이미 날아간 흔적이 있는데, 이는 2가지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시신이 매우 얕게 매장되어 있어서 성체 파리가 날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고, 2번째는 파리 한 세대가 발생한 후에 매장되었을 가능성을 말한다. 전자라면 시신이 살해된 직후에 곧바로 매장되었다는 걸 말하고, 후자라면 시신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매장되었다는 걸 말해준다.그런데 알에서 구더기가 깨어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8~14시간이라고 하며, 파리 한 세대가 발생했다면 번데기가 많이 보여야 하는데, 조호연의 두개골에선 번데기의 수가 적었다. 이는 곧 파리 1마리에서 구더기들이 만들어졌고, 시신이 매우 얕게 매장되어서 성체 파리가 다 날아가버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신에 곤충이 접근하는 것을 막을 것이 없다면, 24시간 내에 곤충이 시신에다 알을 낳는다고 한다. 근데 조호연의 두개골에서 구더기가 부화한 흔적이 있고, 구더기가 부화하는 데는 알을 낳고 8~14시간 이내라고 하니, 이는 곧 구더기가 부화하기 전에 매장되었다는 뜻이다.

채종민 법의학자의 소견과 데이비드 포크너 박사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결국 소년들이 살해당하고 짧게는 8시간 이내에 길게는 14시간 이내에 매장되었다는 걸 말해준다. 그래야 뼈의 물기가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돌에 두개골이 눌려 두개골이 납작하게 변형이 일어날 수 있고, 또 두개골에 깠던 파리의 알이 부화해 구더기가 생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장은 성체 파리가 날아가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얕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두 학자들의 주장으로 미루어 볼 때, 실종된 1991년 3월 26일 바로 그날에 살해당했고 같은 날 바로 매장되었다고 봐야 할 듯하다.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경찰대학 박지선 심리학과 교수는 "이 사건은 계획성과 우발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계획성을 나타내주는 증거는 일반적으로는 잘 쓰지 않는 흉기를 사용했다는 점이고, 우발성을 나타내주는 증거는 타깃을 소년들로 정한 것이란 점이다.

사실 아무리 범인이 성인이고 상대는 어린이들이라도, 1명이서 5명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를 때는 성인 범죄자라도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면을 보인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1명이 한꺼번에 5명을 붙잡아두기에는 어렵다는 점을 볼 때, 범인이 한꺼번에 5명의 어린이를 모아놓고 그 자리에서 죽인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순차적으로 죽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아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약간 떨어져 있었을 때 먼저 1~2명을 죽이는 모습을 보여 공포심을 안겨주었고, 겁에 질려 있는 아이들을 향해 무차별로 구타해21 제압한 다음 죽였을 것이라는 것이다.범인의 수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복수(複數)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1명이라고 분석했다. 왜냐하면 범인이 복수일 경우엔 피해자 중 1~2명은 순종적인 경향을 보이는데, 그런 점이 보이질 않는다는 데서 1명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1명의 범인이 와룡산에 올라온 아이들을 보고 처음엔 5명이나 되는 줄 모르고 먼저 앞에 있던 1~2명의 아이를 죽였는데, 알고 봤더니 일행이 몇 명 더 있었고, 입막음을 위해 나머지 아이들도 뒤쫓아가 모조리 살해했다는 분석이었다.

미국의 유명한 범죄심리학자 에릭 힉키는 "처음엔 두개골에 찍힌 상처가 여러 가지 형태라는 점을 미루어 범인이 복수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다시 한번 두개골의 형태를 살펴본 결과 범인은 역시 1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가 범인을 1명으로 결론 내린 이유는 유골에 난 잔혹성 때문이었다. 극도의 잔혹성을 드러내는 범죄자 2명 이상이 짝을 이루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혹 5명의 소년을 제압하는데 조력자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직접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인물은 2명이 아니라 1명이라고 주장했다. 만일 정신이상자의 소행이라면 증거가 꽤 많이 남았을 것이고, 시체를 매장하는 일도 거의 없다고 한다. 에릭 힉키 박사는 "범인이 생각보다 시체가 늦게 발견되어서 놀랐을 것"이라고 하며,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고,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걸 알고 있어도 신경쓰지 않는 인물" 이라고 설명한다. 또 "아이들의 옷처리나 묶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살해 경험이 이 사건 이전에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미리 계획을 세웠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매장을 얕게 했던 것도, 단지 시간을 벌기 위함에 불과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힉키 교수는 이 사건은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사건이며, 범인의 수는 1명이고, 다시 살인을 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매우 위험한 인물로, 아마 체포되지도 않았을 것이다."고 주장했다.박지선 교수 역시 "범인과 개구리 소년 5명은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돈을 노린 범죄라고 하기엔 진짜 범인은 단 한 번도 돈을 요구한 바 없었고, 원한에 의한 소행이라기엔 한 자리에서 5명이나 되는 소년들을 모조리 죽인 게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년들의 시신이 매장된 곳이 세방골에서도 가장 골이 깊고 수풀이 우거진 곳이라는 점과, 가시덤불이 많고 인근에 군부대 사격장이 있어서 사람들의 출입이 뜸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마을에 사는 소년들이 탄피를 모으러 자주 오르락거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점으로 볼 때, 현지 사정과 지리에 매우 밝은 인물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소년들을 살해한 이유는 단지 살인 그 자체를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 이 방송에서 개구리 소년 사건의 범인과 흉기에 대해 내린 분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범인의 수는 1명으로 와룡산 일대의 지리와 사정에 매우 밝은 사람이었고,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꺼번에 5명의 아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죽인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5명의 아이들을 살해했고, 그때 사용한 흉기는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자주 쓰이는 용접 망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건이 일어났던 1991년 당시에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기 때문에 수사에 대한 초점을 잘못 맞추었고, 거기서 해결을 할 길이 없어져 버린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후반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등의 등장 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초로서는 아무런 이유 없이 단순히 살인을 즐기려고 무고한 어린이 5명을 죽인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못할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아이들을 납치해 가서 앵벌이를 시키는 등의 사건이 많았다. 때문에 개구리 소년 찾기 캠페인이 벌어질 때도 "각종 역, 터미널, 지하철 승강장 등에서 앵벌이하는 아이들을 유심히 봐달라"고 호소하던 수준이었다.

방송 말미에 진행자 김상중은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절대 이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범인을 계속 추적해야 하는 이유는, 이 자가 현재도 우리들의 이웃인 척하고 살면서 또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라고 시청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개구리소년사건 이규만 감독 영화 아이들

'아이들...' 이규만 감독이 개구리 소년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15일 방송된 JTBC 예능프로그램 '방구석1열'에서는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다룬 영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개구리소년사건 범인 몽타주

이날 '아이들...'의 이규만 감독은 "법의학자가 도착했을 때 사체 4구는 이미 파헤쳐졌고 1구만 남아있었다. 마지막 1구의 뼈가 순서대로 발견돼 사체가 옮겨진 게 아님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에 우리나라에는 유골을 분석할 전문가가 없어서 법의학자가 미국에 분석을 의뢰했다. 거기서 의견을 종합한 결과 타살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개구리소년사건 범인 몽타주

이규만 감독은 "나머지 유골은 화장했지만 두개골은 보존하고 있다. 나중에 과학이 더 발전했을 때 무기를 특정할 수 있는 완벽한 증거"라며 "혹시라도 범인을 잡았을 때 진범을 가려낼 중요한 단서라는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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