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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나이 프로필 사망 이혼 졸혼 결혼 전부인 아내 와이프 자녀 가족

by 제로스 2024.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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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외수 프로필

이외수 나이 키 학력 고향 몸무게 혈액형 가족관계 데뷔

출생

1946년 9월 10일1 (74세)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2

신체

169cm | 50.4kg | A형 *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거주지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3

본관

전주 이씨

학력

춘천교육대학교 (중퇴)

직업

소설가

데뷔

1972년 소설 '견습 어린이들'

가족

배우자

전영자 (1976년 11월 29일 ~ 2019년 4월 22일, 2020년 3월 22일~)4

자녀

이한얼, 이진얼

이외수 소설가

75세 (만 73세)

출생

음력 1946년 8월 15일, 경상남도 함양

가족

배우자 전영자, 아들 이한얼 , 아들 이진얼

데뷔

1972년 소설 '견습 어린이들'

사이트

공식홈페이지, 트위터, 미니홈피

출생: 1946년 9월 10일 (73세), 함양군

배우자: 전영자 (1976년–)

부모: 이승윤

학력: 춘천교육대학교 (–1999년), 인제중학교

자녀: 이한얼, 이진얼

이외수(李外秀, 1946년 8월 15일 (1946년 양력 8월 15일) - )는 대한민국의 작가이다.

생애

이외수는 경상남도 함양군 외가에서 태어나서, 강원도 인제군 본가에서 성장하였다. 인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춘천교육대학에 입학하였다.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견습어린이들》로 데뷔하고, 1975년 《세대》(世代)의 문예현상공모에서 중편 소설 《훈장》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젊은 시절 인제군에서 임시교사로 일한 적이 있다. 춘천에서 30여 년간 거주하다가 2006년 이후 현재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감성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육군 제15사단 명예 홍보대사이다.본관은 한산이다.

이외수 가족 관계

아버지는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상사 출신이며 현역 복무 시절에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으며, 사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이외수 부인 아내 와이프 배우자 직업 전영자

이외수의 아내 직업은 미스코리아 강원 출신 간호사였다고 한다.그와의 사이에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장남 이한얼은 영화 감독이고, 차남 이진얼은 사진 작가이다.(이외수 자녀 자식 아이 아기 아들 직업 이름)

경력

1975년 강원일보 근무

1977년 (춘천) 세종학원 강사

1978년 (원주) 원일학사 농심마니 회원

학력

내백초등학교→대구삼덕초등학교→신풍초등학교→양구초등학교→기린초등학교

인제중학교

인제고등학교

춘천교육대학교 수석

정치 성향

이외수는 인터넷을 통해 진보주의 적인 정치성향을 드러내 왔다. 서울특별시장 선거기간 중에는 박원순 후보 선거대책위위원회의 멘토로 활동하였다. 진보 성향의 네티즌들은 이외수를 지지하기도 하였고, 언론도 그의 발언을 비중 있게 보도하였다. 당시 MBC에서는 무릎팍도사 등을 통해 이외수를 방송에 자주 노출시키면서 시대의 지식인으로 부각시켰다.

이외수는 트위터 팔로워 수가 150여만명에 육박하는 '파워 트위터리안'이다.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후보와 만난 자리에서 "정치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주문하며, "일단 싸울 때는 반드시 이기길 바라겠다"고 말했다. 또한 보수 성향의 네티즌들에게 "비열한 언사를 쓰면서 나를 공격하는 것은 무방하나 당신들이 추종하는 후보가 어느 날 내 트윗 한방으로 수십만 표를 잃게 된다는 걸 명심해라"라고 경고하였다.

2012년 서울특별시 교육감 재보궐선거 직전에는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전교조 출신의 이수호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였다.

이오수 발언 사건 사고 논란

2010년 9월 이외수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치킨 브랜드 BBQ에 대한 언급을 한달에 4번만 하면 1,000만원씩 입금해준다는 계약을 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이외수는 "그 돈을 가난한 농촌 청소년들에게 전액 기증합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 진성호가 잘못알고 BBQ를 비윤리적으로 광고했다며 비판하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4

이외수는 타진요가 타블로에 대해 학력위조 논란을 야기시켰을 때 타블로를 옹호하였다. 이로 인하여 타진요 소속의 네티즌들과 대립하였고, 이외수는 "똥이 더러워 피한다면 이 세상은 결국 똥밭이 되고 만다."고 말하며 타진요와의 정면대결을 피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5 형사재판에서 타블로 측이 승리하자 이외수는 "타진요 운영자는 저를 똥물에 튀겨 버리고 싶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군요. 실소를 금치 못할 지경. 똥물에 튀겨 직접 먹을 거라면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라며 "하지만 똥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과 저질 선동에 속아 부화뇌동하고 있는 맹목적인 추종자들이나 먼저 구출한 다음에 너무 수준이 떨어져 측은지심까지 불러일으키는 그놈의 허세를 한 번 떨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따위 저질 선동에도 부화뇌동하는 수준이라니, 도대체 뇌가 있는 겁니까?"라고 강하게 타진요 측을 비판하였다.

2010년 10월, 중국이 조선족이 사용하는 조선어가 자국의 언어라고 주장하며 '조선어 국가표준 워킹그룹'을 구성해 스마트폰과 태블릿PC, PC 키보드용 조선어 입력 표준, 소스코드, 지역식별자 등에 대한 표준안 마련을 위해 일명 한글공정을 추진하자 이외수는 "우리가 한글이라는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귀중함을 모르고 소홀히 하니 중국이라는 도둑이 이를 훔치려는 마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라며 비판했다. 또 "중국이 한글을 중국의 문화유산이라고 우기는 것은 한국이 만리장성을 한국의 문화유산이라고 우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라며 일침을 가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추진 당시 이외수는 트윗으로 "돌에게도 생명과 감정이 있습니다.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지 마세요"라고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외수는 2013년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자신의 트위터에 “독도는 한국 땅, 그리고 오늘은 독도의 날”이라는 글을 반복해서 올렸고,“독도는 천지개벽을 하는 날이 와도 한국 땅입니다. 일본은 세슘에 초밥 말아먹는 소리 그만해야 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외수는 2011년 11월 15일 자신의 트위터에 "일본 아베 총리가 한국을 '어리석은 나라'로 폄훼했다"면서 "총리님 이성을 완전히 잃으신 것 같은데 뇌검사 한번 해 보시지요"라고 글을 남겼다.

이외수는 2014년 세월호사건과 관련하여 '가난한 아이들이 경주나 갈 것이지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갔다'라고 발언한 한기총 조광작 목사를 향해 '십자가에 못박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며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이외수는 2014년 6월 10일 "한국 축구 4대 0으로 가나에 침몰. 축구계의 세월호를 지켜보는 듯한 경기였다"라는 트윗을 남겼다.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문제제기하는 네티즌들을 '난독증' '곤계란' 등의 표현으로 비난하다 결국 여론이 악화되자 트위터를 통해 공식 사과하고 문제의 글을 삭제하였다.

2012년 8월 12일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799번지 감성마을에 이외수 문학관이 개관되었다. 화천군이 75억원의 예산을 들여 연면적 1243m2에 전시관 964m2, 영상실 48m2, 수장고 115m2, 퍼포먼스공간 55m2, 중앙정원 339m2를 조성하였다.

일부 문학가들에 의해 문단의 평가에 비해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소설가라는 비난과 함께 문학관 건립이 혈세 낭비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화천군민이 불과 2만5000명인데 이외수 작가를 위한 감성마을에 100여억 투자’라는 윤정훈 목사의 비판을 네티즌이 마광수 연세대학교 교수의 홈페이지에 올리자, 마광수 교수는 답변을 통해 "군민 혈세로 호화 주택이나 지어주고 있으니 우리나라 행정가 나으리들의 무지몽매함이 드러난다"고 답하였다.

이기식 고려대학교 독어독문과 교수는 2013년 1월 23일 한국경제연구원의 칼럼에서 "감성마을은 좌우파의 문제도 아니라 돈을 매개로 예술과 정치가 서로 결탁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예술을 위한 감성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이익 감성' 뿐"이라고 비난했다.

1946년 9월 10일(음력 8월 15일)에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에서 출생했다. 외가에서 태어났다고 바깥 외(外)자와 항렬자인 빼어날 수(秀)를 합해서 이름이 이외수가 되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그가 3살 때 병으로 타계했다. 그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고 6.25전쟁에 참전하여 화랑무공훈장까지 받은 분이었다.

아버지는 여러 곳에서 군복무를 하였고 이외수는 아버지를 따라 자주 학교를 전학다녔는데 고향인 경남 함양군 상내백초등학교, 대구광역시 삼덕초등학교, 강원도 화천군 신풍초등학교, 강원도 양구군 양구초등학교, 강원도 인제군 기린초등학교 등을 거쳤다. 6학년 때는 아버지가 제대를 하고 교사가 되었는데 이외수의 담임을 맡기도 했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초등학교와 인제중학교를 거쳐 인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춘천교육대학교에 입학했다. 1968년 육군에 입대한 뒤 1971년 제대하고 1972년 춘천교육대학교를 중퇴했다.

어릴 적 꿈은 화가로 춘천교대 시절 미전에 입상한 경력도 있었지만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절망해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해에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견습 어린이들>이 당선되었으며 1973년엔 인제남초등학교 곗골(인제읍 남북리 일대)분교 소사로 잠시 근무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1970년대는 가난으로 찌든 절망의 세월이었다. 춘천에 살면서 구걸한 경험도 있고 하숙집 방세가 밀려서 쫓겨난 적도 있으며 크림빵으로 하루를 때운다거나 생라면 한 봉지로 며칠을 때운 경험도 있다. 심지어는 빈 쓰레기통이나 개집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새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젊은 시절을 보낸 것에 본인도 한이 서리고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가끔씩 들어오는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으신가?"라는 질문에 "내가 미쳤냐?"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교육대학교 재학시절에서는 당시 학장이 이외수의 생활사정을 참작해서 조금이나마 이외수의 생활을 도와줄 정도이기도 하였다.

1975년 <세대>지에 중편 <훈장>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정식 등단해서 생활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하였고 강원일보에 기자직으로서 잠시 근무하였다. 1976년 11월 전영자와 결혼하고 춘천 세종학원과 원주 원일학원에서 강사로 근무하였다. 장편 <꿈꾸는 식물>을 발표. 몇편의 단편을 발표하고 창작에만 전념키 위해 79년 모든 직장을 포기하고 이후 전업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초창기 창작 활동에서는 가난한 시절 가끔씩 사창가에 빌붙기도 하였는데10 이때의 경험이 <꿈꾸는 식물>을 집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후 이후 창작집 <겨울나기>, 장편 <들개>, <칼>, <산목>, <벽오금학도> 등을 비롯해 에세이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등을 간행하였다. 특히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꿈꾸는 식물>과 <장수하늘소> 등은 섬세한 감수성과 환상적 수법이 돋보이는 유미주의적 소설로 신비체험과 초현실세계를 즐겨 다루는 이후의 작품세계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작품으로 평가된다.

화가지망생이기도 했던 작가는 90년 나우 갤러리에서 '4인의 에로틱 아트전' 과 94년 신세계 미술관에서 선화(仙畵)개인전을 열었다.

2014년 10월, 위출열로 인해 진단을 받았더니 위암 2기 판정을 받아 일시적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1달 가까이 투병생활을 하였다. 위 절제 수술까지 수반해야 할 정도의 병세였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쳐서 고비는 넘겼지만 항암치료는 지속적으로 받았고, 2015년 6월에 항암치료를 마쳤다.

2018년 7월 뜬금없이 음악 단과대학인 남예종(남서울예술종합학교) 학장으로 취임했다.

2020년 3월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서 입원 치료받고 있다고 한다.

김동리, 백낙청12이 심사위원으로 있는 공모전에서 입상했고 김현13에게서는 '이외수는 김승옥, 이청준, 조세희, 윤흥길, 황석영14 같은 작가들이 그렇듯이 언어를 통해 세상과 투쟁하려고 하는 치열한 감수성의 흔적이 보인다' 는 평을 얻기도 했다. 베스트셀러에도 여러 차례 올라간 적이 있다.

하지만 일부 팬들의 과도한 고평가는 기성문인뿐만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폭넓은 독서를 하지 않고 작가의 트위터나 작품만을 접하고는 마치 그것만이 통념, 상식인 것처럼 인용하거나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이문열 등의 유명 문인과 비교하는 것이 그 예이다.

작가가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행보를 하면서 이에 대한 호불호도 명확히 갈리기 때문에 평가에 관해서는 이견이 분분한 상태. 다만 부족한 필력에 관해서 많은 논란이 있다.

장외인간을 펴낸 이후로 6년간 에세이나 아포리즘집만 펴내다가 2011년 이금희의 특별한 만남 방송을 통해 신작을 집필중, 그리고 마지막으로 써낼 5권의 장편소설 역시 기획중이라고 시사했다.

덧붙이자면 일종의 문학만능주의적 사상을 가진 듯하다. 이외수의 소설을 보면 항상 현대의 삭막함을 비판할 때 문학을 치유책으로 내세우며 주인공이나 주요 조연들 중 긍정적인 위치에 있는 캐릭터들은 항상 명문대 문학과를 가는 것으로 나온다. 근작인 완전변태에 수록된 마지막 단편인 <대지주>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있다.

이외수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컴퓨터로 작품을 써왔는데 독수리 타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원래 바닥에 엎드린 채 베개 하나 껴안고서 펜으로 글을 쓰다가 보니까 자세가 허리에 안 좋아서 대안으로 컴퓨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타자에 적응하지 못해서 작품이 뜻대로 써지지를 않으니까 굉장히 우울했다고. 이 때문에 타자에 적응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바로 채팅.

이외수가 컴퓨터를 시작한 건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인 90년대 초였기 때문에 PC통신 하이텔의 대화방 등을 통해 채팅을 했었다. PC통신은 고사하고 PC조차도 보급이 많이 되지 않았던 당시 기성 작가가 이러한 첨단 매체를 이용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마이컴과 같은 PC 전문 잡지에서 이외수를 인터뷰하는 일도 종종 있었고 여기서 이외수는 자기가 직접 창안한 각종 이모티콘을 자랑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날 그가 문단 소설가 중 인터넷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외수는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갓 보급되는 여명기부터 개인 홈페이지 OISOO를 개설하고 방문객과 활발하게 소통했다. 싸이월드가 뜨니까 미니홈피 또한 개설했으며 트위터가 뜨니까 과연 트위터 역시도 재깍 만들어서 단박에 수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인기 트위터리언이 되었다.23 환갑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게 인터넷의 각종 변화와 새로이 보급되는 문물에 대한 적응이 대단히 빠르다.

디시인사이드와는 이래저래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 행보나 이미지가 아햏햏과 상당히 잘 맞을 것 같은데 아햏햏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인지도가 부족했는지 해당 문화적 코드와 엮여서 주목받는 일은 없었다.

양자 사이의 최초의 본격적인 접촉은 아마도 과거 디씨를 주름잡던 초특급 악플러인 런던귀공자가 이외수에게 악플을 달기 시작한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런던귀공자의 악플에 시달리던 이외수는 그를 고소하고 실제로 재판소까지 갔다. 훗날 이외수가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재판에서 검사에게 처벌이 아니라 치료가 됐으면 좋겠으며 이 일로 인생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외수와 디씨의 관계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한 것은 바로 2007년 7월 디씨뉴스와의 인터뷰. 바로 위에서 밝힌 런던귀공자와의 일화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거의 모든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를 눈팅한다고 밝히는 등 디씨에 대한 긍정적 관심을 보이면서 폐인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가 디씨에서 활동하면서 재조명된 대표적인 서브컬처 코드로 어둠에다크에서 죽음의데스를 느끼며, 유리코 오메가 등이 있다.

한편으로 2008년작 에세이인 하악하악 역시도 그가 디씨에서 활동하면서 얻은 영감의 산물.

2015년 이후로는 트위터보다는 페이스북 위주로 SNS 활동을 하는 듯하다.

영세커뮤니티 엠봉유저로 알려져있다. 최근 몇 년 새 트위터에 간간이 엠봉 를 올려 엠봉 유저들 사이에서만 꽤 알려진 사실. 2016년 새해에 첫 인증글을 게시했다.

이외수는 오래전부터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서 심심치 않게 각종 시사적, 정치적 발언을 남겼는데 대중적 인지도가 오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일종의 논객이 되었다. 전체적인 성향은 민족주의에 가깝고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사회적 논란과 물의를 빚어왔기 때문에 그런 그의 모습을 탐탁찮게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한다.

2008년 12월 자신의 홈페이지에다가 올린 수정된 교과서-애국애족 대신 매국매족을?이라는 글에서 뉴라이트의 수정된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을 찍은 두 장의 사진을 올리며 "김구 선생을 테러분자라고 가르치는 세상이 왔으니 머지않아 이순신 장군을 살인마라고 가르치는 세상도 오겠네" 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로 김구=테러리스트 논란은 물론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 여부를 놓고 네티즌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후에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해명을 올렸다.

2009년 12월 29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의 비빔밥에 관련된 망언에 "음식문화를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오히려 회나 스시가 원시상태음식" 이라고 발언했다.

2011년 셧다운제도를 신랄하게 깠다. 트위터에서 몇 번 의견을 피력하였고 온게임넷 켠김에 왕까지의 출연 에피소드에서는 초기 취재진과의 대담에서도 역시 셧다운제를 신랄하게 깠다.

최시중 등 이명박 정권의 실세들의 비리가 연이어 터지자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이라며 자화자찬한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비꼬아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임을 증명하시는 분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라며 이명박 정권에 독설을 날렸다.

2016년 11월 김진태(정치인)의 민중총궐기 촛불 관련 발언에 대한 대답격 트윗. 이 영향으로 진짜 시위대들 사이에서 꽤 LED촛불을 들었다.

2012년 초 제주 해군 기지 건설 관련 구럼비 바위 발파 소식에 트위터에서 '돌에도 생명이 있습니다'라며 해군을 비난했다. 찬성자들에게는 "이렇게 주장하면서 그럼 감성마을 앞에다 커다란 돌 위에 시를 음각한 건 뭐냐"면서 까였다.

2012년 12월 3일, 한 트위터리안이 쓴 '문제를 제기하기엔 작가 이외수는 너무 늙어 현대를 쫓아오지 못한다' 라는 트윗을 발견한 이외수는 인용RT하여 '트친들께 이분의 판단이 옳은지 묻고 싶습니다^^' 라고 팔로워들에게 물었고 그로 인해 150만이 넘는 광신적인 이외수빠들에게 집중 공격을 받았다. 물론 다른 것도 아니고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작가를 비난한 해당 트위터리안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가 작가를 비평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며25 수동RT로 벌어질 사태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냐면서 본인이 사과를 요구했지만 이외수는 기회를 주었는데도 사과하지 않았다는 듯한 트윗26으로 답변했다. 이는 실질적으로 자신을 따르는 빠와 군중심리를 이용해 적대적인 트위터리안을 매장시킨 행위다.

상기된 사건에서 해당 트위터리안을 공격하던 한 이외수 극성빠가 그를 ㅂㅅ라고 초성체로 욕(?)을 하고 '병신 같은 욕을 하면 되냐'고 화를 내니 '병신이 아니라 보수' 라고 둘러댔다. 그래서 ㅂㅅ에 대한 초성체가 어떻게 읽힐 수 있는지에 대해 해석이 난립했으며 까들은 이런 초성체 장난질을 불러일으킨 빠들을 까댔다. 그 전에 이외수 까면 보수라니... 여기에 '덕후새끼들 사람과 소통 좀 해라'27는 원색적인 오타쿠 비난까지 했다는 루머가 퍼져 오타쿠들의 어그로까지 끌어모았다. 이건 이외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한 발언이다. 원문 어찌보면 빠가 까의 어그로를 불러일으키는 사례라 하겠다.

2013년 1월, 일명 십알단이라고 구설수에 오른 윤모 목사28가 이외수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하였다. 그는 아예 트위터 이름도 '이외수감성마을퇴거' 로 바꾸었다. 보수 네티즌들의 지지를 얻고 보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외수를 주제로 한 극딜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주된 의혹제기는 이외수 감성마을 만드는 데 돈을 얼마나 썼는지, 혹은 그 돈이 투명하게 쓰여졌는지에 대해서였다. 그외에도 지역에 복무한 군필자를 대상으로 여론을 환기하기 위해서 '일개 민간인 경호를 경찰이 아닌 5분대기조가 하느냐'는 문제제기도 있다. 이에 대해 이외수는 범죄예방을 위해 군경합동이 설정한 일종의 비상 연락망 개념에 가까운 것을 안티들이 이외수 개인 전용 경호한 것인 양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이것을 또 대한민국 육군 공식 트위터 쪽에서도 반박하였다. 제27보병사단 기타 항목 참조. 마침 화천 산천어 축제를 코앞에 둔 타이밍이라 그런지 더욱 혼란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이미 몇몇 일간지에도 이 분쟁이 보도된 이상 이건 이미 평범한 인터넷상의 갈등을 넘어섰다. 이러다 이외수 온라인으로 비화될 기세 또한 이 일로 인해 화천군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난장판이 되었고 페이지가 제대로 넘어가지 않고 있다. 이에 화천군수는 산천어 축제 인터뷰 중 이외수와 감성마을을 옹호하며 특혜를 부인하고 오히려 이외수가 화천군에 옴으로써 화천군이 유무형으로 큰 이익을 얻었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였다. # 그리고 마침 산천어축제 개막식을 하기 위해 대만에서 급히 귀국한 김장훈도 이외수에 대한 지지 선언을 발표했다. 반대로 마광수처럼 이외수를 비판하는 공인도 있다. 이외수는 이번 일로 인해 정초부터 소설집필에 전념할 계획이었는데 차질이 생겼다고 트위터에서 밝혔다.

2013년 3월 말, 이외수와의 혼외관계로 인해 아들을 낳은 뒤, 그 아이를 키운 경북 거주의 오모 씨(56세,여)가 이외수에게 양육비 미지급으로 소송을 걸었다. 4월 16일 이 스캔들에 대한 첫 공판이 춘천지법에서 열렸다. 그리고 29일 양측 합의로 일단락되었다. 다만 양측이 본인이 아니라 양측 변호사로 대리공방을 치렀다는 거나 대략적인 소식 외에 공판 및 상세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이 소송 건과 관련한 그의 행보와 사건과 관련하여 드러난 과거의 언행(오모 씨와 혼외아들을 '저쪽'이라고 표현한다든가, 오모 씨를 구타하고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는 서약서 작성을 강요한다든가)이 평소에 그가 남긴 글들과는 이중인격 수준으로 너무 달라서 논란이 되었다. 이 충격적인 폭로로 인해 지지자들에게 탈속한 신선으로 여겨지던 이외수의 이미지는 회복할 수 없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으며 그 여파는 지금까지 미치고 있다.

2015년 8월, '여자들 초유의 관심사는 오로지 사랑뿐입니다. 그것을 등한시 했을 때, 남자들은 절대로 맛있는 식사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라는 트윗을 올려 전근대적이며 마초이즘적인 사고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 이후 피드백은커녕 독서량이 부족해서 독해력이 부족하고 그래서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파악 못하고 꼬투리를 잡아 '독서량이 부족해서 독해력이 부족하고 그래서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 못하고 꼬투리잡게 된다'라는 비꼬는 트윗을 올려 더욱 논란이 되었다.

2015년 8월, '핸드 드립 커피에 반발심을 갖고 있어서 직원이 주문을 받으려 하면 어깃장을 부리는 마음으로 다방 미스김이 배달하는 믹스커피라고 퉁명스레 답한다. 요즘 커피 가격이 책 한권과 맞먹지만30 책보다 커피가 사랑받는다. 물론 커피향만도 못한 책이 많으니 커피 매니아들의 잘못이 아니고 분발해야겠다.'라는 트윗으로 또다시 논란이 되었다.

주로 '누가 억지로 보내는 것도 아닌데 카페 드립 커피가 싫으면 다방을 찾든가 자판기 커피라도 마셔라', '주문 받는 직원한테 민폐31인 걸 왜 당당히 말하냐', '당시 다방커피도 비싼 편이었다'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김남훈은 과거 미스김을 스쿠터로 태워다 주는 알바를 했는데 그 미스김의 '추가 업무'를 생각하면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고 간접 디스 하기도.

그리고 이외수에게 비판적인 멘션을 보내면 이외수에겐 차단 당한다는 한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심하면 추종자들에게 극딜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몇 시간째 이외수의 이름이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올라간 채로 논란이 되자 해당 트윗 7시간 후 새로운 트윗을 올렸는데 그 전문은 이렇다. '자신이 한글을 읽을 줄 안다고 독해력까지 있는 줄 아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군요. 믹스커피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명할게요.' 같은 달 초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근본적인 사상의 불쾌함은 생각 않고 상대방의 독해력만 탓하고 유감이라며 비꼬는 한글은 읽을 줄 알지만 독해력은 없는 사례를 스스로 보여주는 꼰대 마인드의 전형을 보인다.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방송에 출연해 개인 인터뷰에서 "과거의 나는 짐승이었다"고 운을 뗀 뒤 술을 먹고 다음 날 파출소에서 일어난 것이 여러 번이다. 술 먹고 경범죄로 재판 받은 것만 54회다라며 철없던 과거를 털어놨다. 당시 암울한 삶 때문에 알코올 중독자 수준으로 술을 먹었던 젊은 날이었다고 회고한 걸 참작하면 놀랍지도 않지만. 근데 술 먹고 깽판 부리는 건 여전한 듯하다

강원 화천군에 따르면 이외수가 2017년 8월6일 감성마을에서 열린 문화축전 시상식서 술에 취해 최문순(자유한국당)33 군수에게 육두문자를 써가며 10분 이상 소동을 피우고 '감성마을을 폭파시키고 떠나겠다'며 막말을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외수는 언론을 통해 “당시 밤새 심사를 마치고 새벽에 심사위원들과 약주를 해 몸이 힘든 상태에서 실수를 했다”며 “군수에게 전화로 사과하고 다시 만나서 화해하고 풀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까지 최 군수는 이외수로부터 사과전화를 받은 적은 없던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2개월여가 지난 20일 경찰의 날 행사에서 군수와 마주하면서 사과를 한 것으로 알려져 사과에 대한 진정성 여부마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시상식 막말 다음 날인 8월7일 그는 트위터에 자신이 벌인 소동에 대해 암시하는 듯 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이외수의 트위터에는 "요즘 자주 술을 마신다. 그리고 취하면 끔찍한 주사를 벌이곤 한다. 알코올중독이 재발했다. 알코올중독자들은 대부분 극심한 외로움에 찌들어 있다. 가끔은 죽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한다"는 글이 게재됐다.

폭언을 퍼부은 뒤 최 군수에게 직접 사과하는 대신 트위터로 자신의 힘든 심경만 내비친 것이다. 한편, 화천군의회는 27일 열린 제236회 임시회에서 이외수 작가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며 제대로 사과하지 않을 경우 행정사무조사권을 발동해 감성마을 감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외수는 감성마을 감사소식에 반발해 자신의 트위터에 "아가리 함부로 놀리지 마라. 감성마을 어디에 아방궁이 있단 말이냐. 방산비리 같은 망국적 악행에는 찍소리도 못하던 새퀴들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그런데 4년 전에 이외수는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감성마을은 내겐 아방궁이다"라고 발언한 바가 있으며, 화천군은 감성마을에 133억 원의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매년 2억원이 소요되고 있다. 그리고 한낱 지방의회에 방산비리 문제를 묻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외수에게 "당신은 문학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양판소 문제에 왜 비판하지 않는가?"라고 물으면 본인은 과연 납득을 할지?

더구나 바로 윗 항목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주사 문제는 이외수 본인의 행실이 나빠서 벌어진 일이다. 그럼에도 알코올중독자는 극심한 외로움에 찌들어 있다느니 운운하면서 변명을 하는데, 그런 식이면 주폭 문제로 소란이나 범죄를 저지르고 검거되는 사람들도 다 용서를 해줘야 하는가? 술을 핑계로 선처를 요청하는 사람들을 이해해 줘야 하는가? 무엇보다 사고 터진 다음에 사과를 제대로 했으면 이렇게 논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화천군 번영회·문화원·주민자치위원회 등 16개 지역 사회단체는 ‘지역 현안문제 사회단체 토론회’를 열어 군수에게 행한 모욕적인 언행에 대해 군민 앞에 공개사과하고 감성마을을 비워줄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영수 화천군 새마을지회장은 “정기적으로 문화생들과의 만남이 있지만 주변 상가를 이용하지 않고 도시락을 맞춰 먹는다”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화영 화천문화원장은 “문화원 회원 대부분이 감성마을 ‘갑질’이 심해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가지 않는다”며 “이젠 이외수 작가가 떠날 수 있는 방향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열 화천농업경영인 협회장은 “수도권에서 농촌체험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사전 약속된 이외수 감성마을에 들렸는데 ‘잔다’는 이유로 못 만나고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사회단체들은 내년 예산이 집행되지 못하도록 집행기관과 군의회에도 책임을 묻기로 했다.

2018년 12월 6일 SNS에 올린 글에서 무통분만을 '불로소득, 도둑놈 처지'에 비유해 비난을 받았다. # 극심한 출산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것이 왜 도둑놈 심보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다수이다.34 사실 요즘도 나이 지긋한 사람들 중에는 '성스러운 고통', '하늘이 주신 선물' 운운하면서 산통을 미화하고 무통주사, 제왕절개 등을 안 좋게 보는 꼰대들이 종종 있는데, 이외수도 그런 부류인 듯 하다.

2005년 황우석 사건 당시 이외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황우석 박사에 관련 글을 올리면서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MBC라는 언론에 의해 장님이 되어가고 있는게 아닐까..." 라며 MBC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PD수첩의 계속된 추가보도로 인해 황우석 논문에 대한 논란은 결국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근데 이걸 아주 까기도 애매한게 황우석 사건 초기만 해도 황우석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이외수가 논문 논란을 알 리가 없었기에...물론 알려지고 나서도 후속 절차가 없었단 건 비판할 만하다.

2013년 11월 16일,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촬영으로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해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그런데 이 강연소식에 울컥한 당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천안함 장병 모독하는 이외수에게 강연을 허가하다니 국방부 제정신인가. 이외수 강연 허가해준건 독립기념관에서 아베 신조가 강연하는 꼴"이라면서 불만을 제기했고, 여당 지지자들과 이외수 팬보이들간의 싸움이 며칠간 이어졌다. 그리고 11월 22일 MBC측에서 이외수의 강연 분량을 통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이외수는 트위터로 "대한민국은 정부의 발표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하면 TV 출연을 금지하는 민주(헐) 공화국입니다. 사살당하는 기분입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네티즌들은 천안함 피격사건을 소설로 치부하고 트위터나 사생활로 여러 구설수를 일으킨 사람이 군 장병에게 강연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일이라며 하의원의 손을 들어주는 편과 이외수가 해당 부대에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은 사실이나 하의원의 말은 정치적인 공세가 아니냐는 쪽이 대립하고 있다. 한편 MBC측은 "이외수의 초청 강연 촬영분을 하기로 최종결정했다"며 "논란의 소지가 있는 만큼 논의를 거쳐 방송에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고 공식 성명을 전했다.

위 폭언건과 관련돼서인지, 자유한국당 소속인 화천시 군의원인 이흥일 의원이 "감성마을 세운 건 차지하더라도, 집필실 쓰는 건 불법사용 아니냐"는 제기를 하면서 이외수 공격에 나섰다. 이에 자극을 받은 보수 지역정치인들이나 보수 시민단체들은 안 그래도 꼴보기 싫은 이외수 퇴출시키자는 서명운동까지 하고 있다.

그러자 이외수는 자신이 화천산천어축제를 홍보했다거나, 로컬 농산물 판매를 도와달라는 어필레이트 트윗을 쓰는 등 자신도 화천군 사회에 기여한 건 많은데 군의원께서는 나를 못 쫓아서 안달인지 하며 한탄해 했다.지자체가 아닌 제도정치권으로도 확산되려는지, 더불어민주당 소속/성남시장 이재명은 이외수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화천군의회, 이외수 '퇴거 조치' 의결 화천군의회는 제237회 정례회 3차 본회의에서 '이외수 퇴거 조치' 내용을 담은 행정사무조사 결과보고서가 화천군의회를 통과했다. 결과보고서가 의결됨에 따라 집행부(화천군)는 공유재산을 점유해 무상사용하고 있는 이외수에게 5년간 대부료를 소급해 추징해야 한다. 또 군의회는 감성테마 문학공원 예산 1억 4000만 원 가운데 인건비를 제외한 감성콘서트 사업비, 보수관리비 등 약 4000만 원을 삭감했다. 이 밖에도 결과보고서에는 5명의 운영인력 감소, 관광해설사 철수, 이 작가에 대한 공개사과 촉구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작가의 고향인 함양군에서 러브콜을 보냈는데, 율림리 전례놀이체험공방을 급히 리모델링해서 일단 이외수의 임시 거처로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마련했다. 이외수도 함양에서 이루어진 긴급 특강에서 함양에 자리잡을 계획이 있다고 언질, 만일 함양군의 러브콜과 이외수의 의향이 부합한다면, 수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터를 잡게 되는 셈.

일부 이외수 팬들은 지자체 때문에 2018년 산천어축제를 보이콧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오히려 이외수는 아쉬운 감정이 들었는지 기왕이면 축제도 찾아오고 문학관도 찾아오라는 포스트를 페이스북에 남겼다.그 특유의 장발 꽁지머리는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었다. 그가 장발 생활을 하게 된 계기는 특별한 거 없고, 20대 시절 워낙 가난하게 살아서 머리 관리할 여력도 없어서 봉두난발로 방치하다 보니 어쩌다 그리 된 듯하다. 이에 대해서는 자신의 수필에서 여러 번 피력한 적이 있다. 군 복무 이후 그가 머리를 깎은 때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일례로 2014년 투병할 때 그 장발을 잘랐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예삿일이 아니었다는 것.청년 시절 춘천의 다방 DJ 생활을 하며 밥을 벌었던 그는 글도 쓰고 잠도 잤던 자신의 구석진 테이블에 처음 본 여성이 앉자 '내 자리'라고 말하다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고, 이를 계기로 그 여성과 연애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스 강원 출신의 이 여성은 지금의 부인 전영자 씨다.

몽환적이고 도가적인 독특한 작품 세계와 맞물려 작가 스스로도 여러가지 기행을 하였다. 흔히들 말하는 출판계 은어인 통조림을 본인 스스로 하기도 하며 문학계의 기인으로 불렸다.인사동에 있는 카페인 '귀천'은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운영해 자연스럽게 문인들의 아지트가 되었으며 특히 중광 스님, 천상병, 이외수는 이곳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여러 일화를 남겼다.1990년대 그가 일약 입소문을 슬슬 타면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 부산 등에서는 그의 사칭이 이미 등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칭이 활개칠 때 당시 그는 상술한 통조림 모드에 들어가면서 집필 중이었는데 이외수 사칭이 여자들과 끼고 술 먹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아내가 그에게 뭔 일이냐고 물어보기도 하였다. 2번째 사칭은 1번째 사칭보다 더 그럴싸했는데, 서명까지 쓰면서 이외수를 사칭했지만 서명의 이름이 Lee WeSoo37라서 사칭이라는 게 뻔히 드러나고 말았다.38 고은 문서에도 비슷한 게 적혀 있는 것 같은데...춘천시에서 30여년을 살며 춘천 3수라 불리기도 했지만, 참고 2006년에 이주, 현재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감성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2012년 8월 12일에는 문학관이 개장했는데, 지자체 단위에서 생존 작가에 대한 문학관을 건립한 것은 이외수 문학관이 국내 최초라고 했다.

이외수 근황 건강 뇌출혈 암투병 위암

지난 3월 22일 뇌출혈로 쓰러진 뒤 투병 중인 소설가 이외수(74) 씨의 아들이 추석이자 이씨의 생일을 맞아 아버지의 회복 상황을 전했다.이씨의 장남 한얼씨는 1일 아버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우리 가족에게 음력 8월 15일은 아버지의 생일로 한가위 이상의 의미가 있는 날"이라며 "재활 치료 중인 아버지는 예상과 달리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적었다.이씨는 뇌출혈로 수술 뒤 수주 만에 의식을 되찾고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 빠른 회복세를 보였었다.

이후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이어가고 있으나 음식물 삼킴에 어려움을 겪는 등 회복이 더딘 것으로 알려졌다.최근에는 폐렴까지 앓았으나 위기는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아들 이씨는 "좋은 소식을 여러분에게 바로 전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호전이 없어 그러지 못했다"며 "아버지의 소식을 기다리며 건강을 기도해주는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했다.앞서 이 작가는 2014년 위암 2기 판정으로 수술을 받았다.

이외수 사망 이유 사유 원인 사인 별세

2022년 4월 25일, 폐렴 투병 중 사망했다. 향년 75세.# 3월 중순부터 코로나 후유증으로 인한 폐렴에 걸려 응급실에서 회복 중이었다. 이한얼이 회고하기를, 사망 순간은 가족이 지켜보면서 편히 영원한 잠에 빠지는듯한 호상이었다고 전한다.이외수의 빈소가 마련된 춘천 호반병원장례식장에는 26일 최문순, 마임이스트이자 춘천마임축제를 기획한 유진규, 조덕배, 이홍렬, 최양락, 심지어 정치적 견해로는 상극인 김진태등 지역 정치인과 예술가,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최문순은 “(고인은) 강원도의 감성을 대변하시던 분”이라며 “그런 분이 돌아가셔서 그 중심을 잃었다고 할까, 앞으로 저런 분을 다시 찾기는 상당히 힘들 것 같아 애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빈소에서는 이외수가 생전에 알고 지내거나 돈독한 관계였던 지역 예술인들이 추모 공연을 하였다. 상술한 유진규, 前 철가방 프로젝트 리더 '녹우' 김성호, 시인 정현우, 화가 임근우, 대금연주자 한충은 등이 모였다. 발인 및 장례는 29일 춘천안식원에서 치뤄졌다. 화장 후 유족들은 이외수의 유골함을 든 채로 감성마을을 둘러본 다음 장지에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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