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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코네리 나이 배우 프로필 사망 이유 전부인 이혼 재혼 결혼 자녀 가족

by 제로스 2024.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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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영화 배우 숀코레니 숀코넬리 숀코너리 숀코래리 프로필

숀코네리 나이 학력 키 고향 국적 가족관계 종교 데뷔 본명

본명

토마스 숀 코너리 (Thomas Sean Connery)

국적

영국

출생

1930년 8월 25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파운트브리지

사망

2020년 10월 31일 (향년 90세)

바하마 나소

작위

기사 (Knight Bachelor)

신체

188cm

종교

가톨릭 (세례명: 요한)

직업

배우, 프로듀서

활동

1954년 – 2003년

배우자

다이앤 클라이언토 (1962년 결혼-1973년 이혼)

미슐라인 로크브루네 (1975년 결혼)

자녀

제이슨 코너리 (1963년생)

출생: 1930년 8월 25일, 영국 에든버러 파운틴브릿지

사망 정보: 2020년 10월 31일, 바하마 나사우

키: 188cm

배우자: 미슐랭 로크브륀느 (1975년–2020년), 다이앤 클라이언토 (1962년–1973년)

자녀: 제이슨 코너리

숀 코네리 (Sean Connery) 영화배우

출생-사망

1930년 8월 25일, 영국 - 2020년 10월 31일

신체

188cm

가족

아들 제이슨 코네리

학력

세인트앤드류스대학교 문학 명예박사

데뷔

1955년 영화 'Lilacs in the Spring'

수상

2005년 제18회 유럽영화상 유럽영화아카데미 평생공로상

사이트

공식홈페이지

본명 토머스 숀 코너리

Thomas Sean Connery

출생 1930년 8월 25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사망 2020년 10월 31 일 (90세)

바하마 나소

직업 영화 배우, 영화 프로듀서

활동 기간 1954년 ~ 2012년

학력 세인트앤드류스 대학교 문학명예박사

형제자매 동생 닐 코너리

배우자 다이앤 클라이언토 (1962 ~ 1973)

미슐랭 로크브륀느 (1975 ~ )

자녀 아들 제이슨 코너리

수상 1987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1996년 골든 글로브 평생공로상 등

숀코레니 프로필 숀코너리 숀코넬리 숀코네리

숀코레니 직업 숀 코너리 경(Sir Sean Connery, 1930년 8월 25일 ~ 2020년 10월 31일)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영화 배우 겸 영화 프로듀서였다. 영화 《007》 시리즈에서 7차례 제임스 본드 출연으로 잘 알려진 배우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BAFTA) 남우주연상, 골든 글로브상 남우조연상 등을 받았다. 2020년 10월 31일 바하마 나소의 자택에서 수면 중에 사망했다.

숀코네리 고향 에든버러 파운틴브리지에서 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 아버지는 로마 카톨릭교도였으며, 어머니는 개신교도였다. 숀코네리 집안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이며 트럭운전수 였고, 어머니는 청소부였다. (숀코네리 부모)(숀코레니 아버지 어머니 직업)조부는 아일랜드에서 19세기 중엽에 스코틀랜드로 이주하였다. 그의 가문은 스코틀랜드 후손이다. 어머니계 조상들은 스코틀랜드 게일어를 사용하였다. 나이에 비해 키가 커서 188cm로 자랐다. 그는 청소년시절에 성인여성과의 관계로 순결을 잃었다고 한다. 그의 첫 직업은 우유배달이었다. 13세때 학교를 중퇴하고, 1946년부터 1949년까지 해군에 복무하였다.(숀코레니 군대 병역) 그 뒤 여러 일을 하다가 보디빌딩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여 1953년 미스터 유니버스에서 스코틀랜드 대표로 출전한 경력도 있다.

 

숀코네리 영화 출연작 작품활동 필모그래피

《지상 최대의 작전》(The Longest Day, 1962년)

《살인번호》(Dr. No, 1962년) - 007 1탄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 1963년) - 007 2탄

《골드핑거》(Goldfinger, 1964년) - 007 3탄

《마니》(Marnie, 1964년)

《썬더볼 작전》(Thunderball, 1965년) - 007 4탄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 1967년) - 007 5탄

《샬라코》(SHALAKO, 1968년)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 1971년) - 007 7탄

《자도즈》(Zardoz, 1973년)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Murder on the Orient Express, 1974년)

《바람과 라이온》(The Wind and the Lion, 1975년)

《로빈과 마리안》(Robin and Marian, 1976년)

《머나먼 다리》(A Bridge Too Far, 1977년)

《성난 눈동자》(Wrong Is Right, 1982년)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Never Say Never Again, 1983년) -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하였으며, 정식 007 시리즈는 아님

《하이랜더》(Highlander, 1986년)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 1986년)

《언터처블》(The Untouchables, 1987년) -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 1989년)

《붉은 10월》(The Hunt for Red October, 1990년)

《하이랜터 2》(Highlander II: The Quickening, 1991년)

《로빈 훗》(Robin Hood: Prince of Thieves, 1991년)

《라이징 선》(Rising Sun, 1993년)

《더 록》(The Rock, 1996년)

《드래곤 하트》(Dragon Heart, 1996년) - 드래곤의 목소리 연기를 했다.

《젠틀맨 리그》(The League of Extraordinary Gentlemen, 2003년)

《숀 코너리의 함정》

《카멜롯의 전설》

《엔트랩먼트》

《파인딩 포레스터》

《아웃랜드》

《욤욤 공주와 도둑》 - 압정

007 살인번호 - 제임스 본드 역

007 위기일발 - 제임스 본드 역

007 골드핑거 - 제임스 본드 역

007 썬더볼 - 제임스 본드 역

007 두번 산다 - 제임스 본드 역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 제임스 본드 역

007 네버세이 네버어게인 - 제임스 본드 역

머나먼 다리 - 로이 어쿼하트 역

어벤저 - 어거스트 경 역

붉은 10월 - 마르코 라미우스 함장 역

하이랜더 - 후안 산체즈 빌라 로보스 라미레즈 역

더 록 - 존 페트릭 메이슨 역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 헨리 존스 역

카멜롯의 전설 - 아더왕 역

미스터 빌리: 하일랜드의 수호자(애니메이션) - 미스터 빌리 역

장미의 이름 - 윌리엄 수사 역

언터처블 - 짐 말론 역

파인딩 포레스터 - 윌리엄 포레스터 역

엔트랩먼트 - 로버트 맥두걸 역

떠오르는 태양 - 존 코너 경감 역

패밀리 비지니스 - 제시 맥멀론 역

젠틀맨 리그 - 앨런 쿼터메인 역

드래곤 하트 - 드라코 역

007 제임스 본드역에 캐스팅된 것을 계기로 절치부심한 끝에 명배우로 각성,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의 어색한 당시 연기는 007 캐스팅 직전에 찍은 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1962)에서 볼 수 있는데 007 원작자 이언 플레밍은 이를 보고 고릴라같다고 혹평했고 다수 평론가도 동의한 바 있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 역으로 연기력이 발전한 후인 64년의 히치콕 영화 《마니》에서는 같은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다.

제임스 본드 역과 함께 주로 액션이 필요한 배역을 많이 맡았지만, 자신의 이미지가 007역에 묻혀간다고 판단, 고심한 끝에 배역을 거절하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국적불명의 이탈리아 영화나 C급 괴작 영화에 출연하는 등 어려움도 있었으나 《오리엔트 특급살인》으로 메이저 작품 복귀에 성공, 재기하게 된다.

007 배역 거부 후 찍은 영화 중 가장 유명한 희대의 C급 컬트 SF 영화 《자도즈》(1973)의 예고편. 감독 존 부어만도 엑스칼리버로 칸 영화제 예술공헌상까지 받은 감독이다.연기 도중 얼굴에 입은 부상으로 배우 생명이 위험에 처해 상처를 수염으로 가렸지만, 오히려 이후 그 수염이 그의 상징이 되었다. 넓어져만 가는 이마로 가발을 쓰거나 머리를 심는 등 헛된 노력을 계속했던 적도 있지만 결국 대머리 이미지를 밀어붙여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이런 이미지 변신 후 찍은 유명한 작품으로는 《더 록》, 《붉은 10월》,《장미의 이름》이 있다. 1987년 《언터처블》에서 케빈 코스트너를 돕는 노장 경찰 말론 역을 멋지게 소화해서 그 해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일부에선 《언터처블》에서 숀 코너리의 연기는 발연기라 불릴 만하며 오스카 수상 중 최악의 수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영화사 '''최고의 캐릭터 제임스 본드의 영화판 이미지를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종의 공로상으로 받았다는 악평이 그것. 일단 그 당시 많은 평론가들이 공로상으로 간주했던 건 사실이지만 말론 경감은 흔히 말하는 '산전수전 다 겪은 현자' 캐릭터로 코너리의 연기는 '명품 조연'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들어맞을 정도로 일품이었다. 이는 '언터처블'에 대한 평론가들의 몇몇 평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연기는 '숀 코너리가 연기하면 숀 코너리가 그 배역이 되는 게 아니라 그 배역이 숀 코너리가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 연기가 일품인 것은 틀림없지만, 배역이 배우에게 먹혀버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은퇴할 때까지 말투에서 스코틀랜드 억양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는 약점도 있었다. 영화 《붉은 10월》에서 그가 맡은 마르코 라미우스 함장과의 싱크로율을 생각하면 그 말이 농담은 아닌 듯하다.몇몇 평자들은 언터처블 대신 그가 출연한 시드니 루멧 영화들을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 한창 준비 작업에 있던 1999년 간달프역을 제의받은 적이 있다. 당시 뉴 라인 시네마는 영화수입의 10~15%를 출연료로 지불하겠다는, 지금 보면 엄청난 제의를 했다. 만약 숀 코너리가 출연에 응했다면 그는 4050억원을 받았을 것이다. 숀 코너리라 하면 제임스 본드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그 당시 뉴스의 댓글도 재미있다. 숀 코너리가 간달프를 하면 본드걸처럼 마법사 걸이 나온다든지. 하지만 숀 코너리는 원작 소설도 읽었고 대본도 읽었지만 반지의 제왕 스크립트를 난해하다면서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뉴질랜드에서 18개월이나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시하며 거부했다. 그 직후인 2000년에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다.

2003년 《젠틀맨 리그》에 출연했으나 이 과정에서 감독인 노링턴과 극심한 마찰을 빚었고 더 이상 연기를 하는 것에 환멸을 느껴 2006년에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로부터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헨리 존스 박사 역으로 다시 나와달라는 제의를 받았고 은퇴 번복을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스필버그와의 예술관의 차이와 은퇴생활의 즐거움, 그리고 헨리 존스 박사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조연이라는 이유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이후 2005년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대해서 멍청한 제작자들이 능력있는 배우와 감독들을 질식시키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이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자 2006년, 조지 클루니, 스티븐 소더버그, 숀 펜 등을 근면하고 창의력있는 인물들이라고 언급하면서 돈 벌 생각밖에 없는 멍청하고 게을러빠진 할리우드 영화 시스템의 희생자들의 예시로 제시했다. 젠틀맨 리그 제작 과정에서 한이 굉장히 많이 쌓인 듯.다만 2006년의 은퇴 선언 이후에는 그렇다고 해서 감독들이 자신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마피아들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수준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 복귀 가능성은 완전히 끝난 것으로 보이며 2010년 8월 25일 80세 생일에 공식적으로 배우 은퇴를 재확인했다. 실사 영화 마지막 연기는 위에서 언급한 젠틀맨 리그다. 2011년, 코너리의 친구인 마이클 케인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코너리에게 새로운 영화를 제작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가 절대로 안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더불어 마이클 케인은 코너리의 은퇴가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코너리에게 노인 조연 외에는 더 이상 시키려 하지 않아서 코너리가 실망한 것이 코너리의 중대한 은퇴 사유 중 하나라고 전했다. 코너리는 로맨스 연기를 좀 더 하고 싶었었다고.

다만 실사 연기 이후에도 성우 연기는 가끔 하고 있는데 2005년 그의 1963년 출연작이었던 007 위기일발이 게임화되자 제임스 본드 성우로 잠시 복귀했었다. 코너리 자신이 007 영화 중에서 위기일발을 자신이 제일 좋아하며, 손자들이 비디오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하기로 했다고. 2012년에는 애니메이션 미스터 빌리: 하일랜드의 수호자(원제: Sir Billi the Vet)의 주인공인 빌리의 성우를 맡기도 했다. 성우도 주인공 역만 맡은걸 봐서 노인 조연 역할에 지쳤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긴 한듯하다.

숀코레니 결혼 이혼 재혼

숀코레니 첫번째 결혼 부인 아내 배우자 와이프

1962년 12월 6일 다이앤 클라이언토 결혼하였지만 1973년 이혼 하였다.

숀코레니 전부인 아내 와이프 배우자 다이앤 실렌토 숀코레니 이혼 사유 이유

영화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던 영화배우 숀 코너리가 아내를 학대하는 폭력남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1962년부터 73년까지 코너리와 살았던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다이앤 실렌토는 현재 집필 중인 자서전에 코너리의 그런 일면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고 오스트레일리아 일간 <오스트레일리안>이 26일 보도했다.

한때 배우로 활동했던 실렌토는 자신의 성공에 코너리가 오히려 시샘을 했으며, 그가 007로 명성을 얻은 뒤에는 자신을 집에만 있게 했다고 말했다. 실렌토는 “물리적인 접촉이 있었으며, 그가 나보다 몸무게가 거의 두 배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실렌토는 24살이던 1957년 이미 배우로 명성을 얻고 있을 때 코너리를 만났다. 두 사람은 62년 첫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닥터 노’가 만들어진 뒤 결혼했다. 코너리가 부인을 학대한다는 소문은 그때부터 나돌기 시작했다. 코너리는 65년 <플레이보이>와 한 인터뷰에서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게 특별히 잘못된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실렌토의 이런 주장에 대해 코너리의 대변인은 논평을 거부했다.

숀코레니 재혼 두번째 결혼 부인 아내 배우자 와이프 미슐라인 로크브루네 숀코레니 현부인

이후 1975년 미슐라인 로크브루네와 재혼했다. 숀코레니 자녀 자식 아이 아기 숀코레니 아들 직업 배우이자 영화감독 제이슨 코네리 두었다.(숀코네리 가족 관계)

숀코레니 사망 숀코레니 별세

숀코레니 근황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 유명 배우 숀 코네리가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BBC 방송이 31일 보도했다.BBC는 건강이 좋지 않았던 코네리가 9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고 이날 밝혔다.코네리는 영화 '007' 시리즈에서 최초로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았다. 총 25편의 007 시리즈 중 6편에 출연했다.이후로도 '오리엔트 특급살인사건', '장미의 이름', '언터처블', '인디아나 존스' 등 다수 작품에 출연했고 2006년 공식 은퇴했다.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미국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골든글러브 남우조연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 2000년에는 영국 기사 작위를 받았다.

숀코레니 사망 이유 숀코레니 사인 숀코레니 사망 사유 숀코레니 사망 원인

숀코네리의 사망 원인은 고령에 따른 지병으로 알려진다.

숀코네리 젊은시절 숀코네리 리즈 과사 과거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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