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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스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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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예인 방송인 가수 이수영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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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9년 4월 12일 (41세), 서울특별시 봉천동

배우자: 조재희 (2010년–)

소속사: 뉴에라 프로젝트

가족: 슬하 1남

​이름

이수영(李秀英)

본명

이지연(李知姸)

본관

전주 이씨

출생

1979년 4월 12일 (41세)

서울특별시 송파구 문정동

신체

162.4cm, 43kg, B형

학력

서울문정초등학교

문정중학교

분당중앙고등학교

가천대학교 유아교육과 중퇴

가족

1남 2녀 중 장녀

배우자 조재희, 슬하 1남

종교

개신교(침례회)

데뷔

1999년 1집 앨범 'I believe'

소속

뉴에라 프로젝트

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로 2000년대 초반을 평정했던 오리엔탈 발라드의 여왕.1999년 11월 1집 <I Believe>로 데뷔했다. 2003년에 초고공비행 중이던 이효리를 꺾으며 MBC 10대 가수 가요제의 대상격인 최고 인기 가수상을 수상하고 이듬해에는 MBC 10대 가수 가요제 2연속 수상과 더불어 2004년(휠릴리) 골든디스크 대상까지 거머쥐었다. 2016년 7월 현재까지 9장의 정규 앨범, 2장의 싱글을 발표했으며, 대표곡으로 <I Believe>, <그리고 사랑해>, <라라라>, <Grace>, <덩그러니>, <휠릴리>, <단발머리> 등이 있다.

데뷔 이후 소속사가 3번 바뀌었다. 맨 처음 소속사는 팬텀, 그 다음은 리쿠드이다. 두 번 다 소속사와의 마찰로 생긴 일인데 아무래도 돈 문제인 듯. 한때 이수영의 고모가 직접 회사를 차리기도 했으나(have Ent) 다시 티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가, 2013년 9월 이후 블루프린트 뮤직 소속이다.

 

가수로서의 꿈은 '20주년 디너 쇼'라고 하며 팬들 역시 디너쇼를 상당히 고대했으며 데뷔 20주년인 2019년 내로 음반을 발매하겠다고 언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2019년 내내 몇몇 행사를 제외하고 가수 활동은 전무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며, 자수성가한 케이스 가운데 하나. 이수영의 아버지는 그녀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며, 어머님은 스무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후 2명의 동생과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했다. 남동생은 데뷔 초기 남해의 외가에 내려가 있기도 했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으나,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이수영 부모는 경상도 남해 출신이라고 한다. 가족 공개를 극히 꺼리는 편으로, 여동생 한 명과 남동생 한 명이 있는데 남동생은 이수영 관련 방송에서 아주 잠깐 모습이 나왔으나 여동생과 남동생의 이름과 신상은 전혀 대중에 알려져 있지 않다. 남동생은 분당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학생을 때리고 다녀 학교폭력으로 문제가 됐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했다고 한다. 학교를 그만두고 클럽에서 여자를 꼬시며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거의 다 커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압도적으로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자주 언급했다. 한창 어머니 일이 언급될 당시 일각에서는 '엄마 팔아먹는다'는 식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애초에 이수영 본인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없는데 PC통신을 중심으로 지인들이 이 사실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후 소속사가 언플로 이 사실을 활용해 '소녀가장 가수'라고 알려졌던 것. 상술한 남동생 방송공개도 이 때의 사건이다. 그러나 이수영은 데뷔 때 이미 21세 성인이었으며, 나중에는 "부모님을 두 번 죽이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확실히 소녀가장 이미지로 동정심이 상술로 이어진 느낌이 강했단 기억을 가진 의견들도 있다 소속사나 가수나 말은 그렇지만 상술로 쓸 수 있으니.

 

 

라디오 방송을 꾸준히 하던 중 2010년 8월 결혼 발표를 하여 화제가 되었다. 배우자는 9집 활동을 시작할 즈음에 지인에게 소개를 받은 10살 연상의 평범한 회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지나치게 답답한 그레이스 켈리 스타일의 웨딩드레스를 선택해 팬들을 울고 싶게 만들었다.

팬들은 10년 연상의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멘탈붕괴를 겪었으나 별다른 잡음 없이 잘 살고 있다. 2011년 7월 27일 아들을 순산했다. 태명은 탕탕이. 엄마 배를 발로 탕탕 차대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트위터에서 아이를 '조탕탕'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어 베일에 싸인 남편이 '조 씨'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토크쇼에 나와서 밝힌 바에 따르면 남편은 단순히 사랑을 하거나 받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준 점이 결혼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특히 빨간 딱지가 붙을 정도로 자산관리가 허술한 본인에게 직접 은행을 데리고 다니기도 하는 등 관련 부분을 차근차근 가르쳐주며 도움을 많이 주었다고 한다.

이수영 결혼식

청담동 모처에서 결혼식이 진행되었고 규모가 꽤 커서 시가(媤家)가 재력이 꽤 되는 것 아니냐는 등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실제로 시가에서는 둘의 결혼생활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것 같다. 출산 준비나 산후조리 등에서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외롭고 우울했는데, 김희선이 낸 출산 관련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수영 종교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고등학교 때 이미 학교에서 친구들을 모아놓고 통성기도를 했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였다. 앨범에 개신교 관련 내용을 담은 노래가 가끔씩 나오기도. 6집 silent eyes, 7집 우리, 8집 다 이루었노라가 개신교 관련 곡. 6집엔 시편 24편의 암송이 들어있는 인터루드도 있으며, 7집 outro 끝부분에는 그녀의 육성 기도가 들어 있다.

2000년대 한국 발라드 여보컬의 대표주자였다. 애초에 한국에서 솔로 여가수가 정규 9집까지 발매하며 활동한 사례가 많지 않다. 당시 경쟁했던 양파나 이소은에 비해서는 확실히 더 많은 인기와 성공을 누렸다.

가창력에서 좋은 평가를 받긴 하지만, 대중이나 전문가들이 가창력 뛰어난 가수를 꼽을 때 바로 이름이 나올 정도는 아니다. 이수영만의 독특한 비음이 있는데 KBS <해피투게더> 출연 당시 밝한 바에 따르면 다른 사람보다 코 안쪽에 살이 좀 더 있다고.

앨범에 따라 창법이 꽤나 많이 변화했다. 데뷔 전에는 흑인음악을 즐겨 들었고 음역대가 높고 성량이 큰 진성 창법을 사용했으나, 이 창법은 1집 이후로 쓰이지 않는다. 1집의 <swan song>, <소심> 등을 들어보면 그 이유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미숙한 일반인이 지르는 느낌이 든다.

2집부터 가성 창법을 연마하기 시작했는데 음역 폭은 다소 좁아지더라도 안정적이고 듣기 편한 목소리로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가성 위주 창법의 특성상 '라이브'가 안정적이지는 않다. 한때 과도한 스케줄을 사고 한 번 없이 소화하기도 했으나 건강 체질도 아니고 라이브도 컨디션에 따른 기복이 심하다.

타이틀 곡 기준으로, 1집 'I Believe' 부터 상당한 인지도를 갖기 시작했지만 가수로서 특유의 색깔을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3집 정규앨범 made in winter 의 타이틀 곡 '그리고 사랑해' 로 평가받는다. 즉, 그녀의 커리어 중 음악의 색깔이 '그리고 사랑해'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1,2집 시절의 청아함과 커리어 후기의 성숙미가 조합된 중간 단계인 3집의 '그리고 사랑해'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꼽는 팬들도 상당히 많다.

1집 'I believe'와 2집 'Never again'이 전통적인 발라드의 곡이라면 3집 '그리고 사랑해'는 상당히 빠른 템포를 구사하는데, 이는 이후 5집 '덩그러니', 6집 '휠릴리', 7집 'Grace', 8집 '단발머리'까지 이어진다. 템포는 빠른데 키가 낮지도 않고 가성을 구사해야 한다. 때문에 활동 당시 주력으로 불러야 하는 곡임에도 라이브 무대에서 1절부터 상당히 애먹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9집 발매 후 방송으로 돌아왔을 때는 예전보다도 훨씬 뽕삘이 짙어지고 음정도 불안해졌다. 2014년 1집 I believe를 다시 부르는 것을 봐도 상당히 음색이 바뀐걸 알 수 있다. 각종 OST 곡에 참여했을 때 느린 템포의 곡들을 자주 불렀는데, 오히려 성숙미가 느껴지는 현재의 음색이 과거의 음색보다 더 애절함이 더해진 느낌을 갖는다.

이렇듯 본래 느린 템포의 전통 발라드곡으로 데뷔했던 만큼, 발라드라는 바운더리 안에선 템포를 가리지 않는 올라운드라는 것을 증명하며 발라드 여왕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JTBC <히든싱어> 이수영편에 등장했던 도전자들이 모두 상당히 비슷하게 성대모사를 했다. SBS <스타킹> 출연 당시 화제가 되었던 남고생 팬인 김재선 씨는 어느덧 예비역이 되어 참가자로 등장해 3위에 올랐으며, 10년지기 친구 이기찬은 물론이고 이수영 본인조차 멘붕할 만큼 비슷한 보이스컬러를 보인 참가자도 있었다.

 

 

이수영이 발라드 여왕의 귀환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지난 28일 방송된 JTBC 예능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3'에서는 이수영이 출연해 반가운 근황을 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발라드의 여왕 이수영은 '라라라를 부르며 무려 89불을 기록하며 등장했다. 이수영은 "예전에는 무대에 서면 누구나 다 알아서 즐겨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을 못 알아보길래 나는 아는지 확인하러 나왔다"라며 예능감 넘치는 입담으로 출연 계기를 전했다.

최근 근황에 대해 이수영은 "9집 앨범을 발매하고 결혼을 하면서 아이가 생겼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엄마가 됐다"라고 말했다.

이수영은 2000년대 예능 천재답게 지코의 '아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면서 넘치는 끼와 흥을 발산했다. 이수영은 과거 예능 'X맨'에서 선보였던 연변 사투리를 다시 한번 재연하며 여전한 예능감을 뽐내며 유재석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날 이수영은 가수로서의 10년 공백기에 대해 밝혔다. 이수영은 "소속사에 문제가 생겼다. 소송도 하고 사기도 맞았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우울증이 너무 심해지다 보니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다"라고 전해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수영은 "그 당시 남편을 만났는데 남편이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줬다. 아이를 키우는 10년 동안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이수영은 "진짜 10집 앨범을 너무 내고 싶었다. 이제는 신곡을 내고 싶다"라며 가요계 복귀에 대한 소식을 전하며 팬들의 기대감을 자아냈다.

한편 이수영은 지난 1999년 1집 앨범 'I Believe'를 발매하며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적도의 남자', '유령',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하나뿐인 내 편'의 OST를 부르며 발라드 여왕의 행보를 이어갔다. 현재 이수영은 CBS 음악 FM 라디오 '이수영의 12시에 만납시다'를 진행하고 있으며, TV조선 시사교양 '알콩달콩'의 진행을 맡고 있다.

가수 이수영 남편 직업 조재희는 대기업(광고회사) 회사원으로 알려 졌다.

이수영이 우울증, 공황장애를 겪은 사실을 고백했다.

22일 방송된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는 이수영이 8년 만에 출연했다.

이수영은 첫 무대로 2002년에 발표한 4집 앨범 타이틀곡이자 이수영 인생에 첫 1위를 안겨준 노래인 ‘라라라’를 선곡, 녹슬지 않은 음색과 실력으로 클래스를 입증했다.

유희열이 “8년만의 출연이다. 첫 출연 때는 박경림, 장나라와 출연한 파격적인 무대도 기억난다. 그동안 활동이 뜸했다”라고 하자 이수영은 “대중 앞에 많이 서지 못했더니 조금씩 마음이 힘들어졌다. ‘슈가맨’에 출연했을 때도 추억을 좋아해줘서 너무 감사했지만 부담도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나도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있었다. 근긴장성 발성장애 진단도 받았다. 너무 떨려서 성대도 컨트롤이 안됐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내싿. 또한 “병이 있는 걸 얘기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병원에서 오픈하라고 하더라. 망쳐도 괜찮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뿐만 아니라 이수영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20대는 열심히 일했고, 30대는 결혼과 출산 그리고 40대는 더 나아가고 싶다”며 앞으로의 활발한 활동을 예고, “스케치북에 3주에 한번 나가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전했다.

한편 이수영은 지난 1999년 1집 앨범 'I Believe'를 발매하며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적도의 남자', '유령',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하나뿐인 내 편'의 OST를 부르며 발라드 여왕의 행보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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