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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나이 프로필 전남편 직업 이혼 사유 결혼 재혼 가족 자녀 김부선

by 제로스 2023.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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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설가 공지영 프로필

작가 공지영 나이 키 학력 고향 가족관계 종교 혈액형

이름

공지영 (孔枝泳)

출생일

1963년 1월 31일 (57세), 서울특별시

본관

곡부 공씨

신체

167cm, O형

학력

예일초등학교

서울여자중학교

서울중앙여자고등학교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

직업

소설가

성향

페미니즘, 친문

지지정당

더불어민주당

가족

1남 2녀 중 셋째

슬하 2남 1녀

종교

가톨릭 (세례명: 마리아)

출생: 1963년 1월 31일 (57세), 서울특별시 마포구

배우자: 이해영 (1997년–2004년), 오병철 (1993년–1995년), 위기철 (1985년–1991년)

자녀: 위윤녕, 이제재, 오둥빈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도가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의 방

학력: 중앙여자고등학교, 서울여자중학교, 연세대학교

공지영 소설가

학력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 학사

데뷔

1988년 창작과비평 '동트는 새벽' 등단

수상

2011년 제35회 이상문학상 대상

2007년 제10회 한국 가톨릭문학상 장편소설부문

2006년 제9회 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2004년 제12회 오영수 문학상

공지영 가족관계 자녀

공지영은 세 번의 결혼을 하였고 각 결혼마다 한 명의 자식을 두어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첫번째 : 위기철(작가, 1985년 결혼~ 1991년 이혼, 딸 이름: 위위녕)

두번째 : 오병철(영화감독, 1993년 결혼~ 1995년 이혼, 아들 이름: 오둥빈)

세번째 : 이해영(교수, 허수경 세번째 남편, 1997년 결혼~ 2004년 이혼, 아들 이름: 이제제)

소설가 작가 공지영 책 저서 도서 작품활동 필모그래피

작품

1988년 등단작(단편) 《동트는 새벽》(창작과비평)

1989년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1991년 장편소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1-2》

1993년 장편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문이당)

1994년 《미미의 일기》(한양출판)

1994년 창작집 《인간에 대한 예의》(창비)

1994년 장편소설 《고등어》(웅진출판)

1996년 《상처없는 영혼》(푸른숲)

1997년 장편소설 《착한 여자 1-2》

1998년 장편소설 《봉순이 언니》

1999년 창작집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창비)

2001년 《작가 공지영과 다시 만난 어린왕자》(세상모든책)

2001년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김영사)

2004년 《별들의 들판》(창비)

2005년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

2005년 《사랑 후에 오는 것들》(소담출판사)

2006년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황금나침반)

2007년 《책로역정(冊路歷程)》 (스쿱(SKOOB))

2007년 《즐거운 나의 집》(푸른숲)

2008년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오픈하우스)

2008년 《괜찮다, 다 괜찮다》(알마)

2009년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한겨레출판)

2009년 장편소설 《도가니》(창비)

2010년 《공지영의 지리산행복학교》(오픈하우스)

2010년 《사랑후에 오는것들》(소담출판사)

2012년 《의자놀이》(휴머니스트)

2013년 《높고 푸른 사다리》(한겨레출판)

2014년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분도출판사)

2015년 《딸에게 주는 레시피》(한겨레출판)

2016년 《시인의 밥상》(한겨레출판)

2017년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해냄출판사)

2018년 《해리 1,2》(해냄출판사)

2020년 《먼 바다》(해냄출판사)

방송

공지영 작품 집안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대표작으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도가니가 있다. 현재는 작품보다, 논란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있다.1963년 서울특별시 태생. 어렸을 때부터 집안이 꽤 유복했다고 한다. 아버지 공석붕은 서울대 출신 유학파에 식모까지 두고 자가용도 있었다고 유명 인사였다고 한다.

 

예일초등학교(구 운화초등학교), 서울여자중학교, 중앙여자고등학교4를 거쳐,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가톨릭 신자로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20대 초반부터 냉담(성당에 안나간다는 뜻)을 했고, 18년 후에야 다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이 무렵에 낸 책이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이다.

1988년, 창작과 비평에 <동트는 새벽>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했다. 또한 공지영은 1990년대에 작품 활동이 활발했는데 주로 여성주의와 페미니즘 성향의 작품이었다. 1980년대 당시 학생운동가 중 하나였으며5 이때의 경험이 바탕이 된 작품은 《동트는 새벽》, 《무거운 가방》,《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다. 이후의 작품들에도 당시의 경험이 녹아들어있는 편. 《도가니》, 《해리》 등 사회 참여적 성향의 작품도 내고 있다.

이혼을 3번 했고, 각각의 결혼에서 자녀를 1명씩 얻어 2남 1녀를 두고 있다. 이혼 후 재혼을 부정적으로 보는 가톨릭 신자라 좀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는듯 하다.공지영 작품의 경향을 크게 3가지로 정리하면 페미니즘, 가톨릭, 운동권이다.

공지영 작품의 특징은, 가부장적 가치관이 박혀 있고 보수적 폐쇄적인 한국 사회에 대한 여성의 입장을 페미니즘 논리에 녹여내는 것에 있다. 또한 그녀는 평소에 적극적으로 페미니즘적인 발언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공지영 자신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전반적으로 종교적 색채를 풍기는 작품이 많다. 실제로도 성지순례 처럼 유럽의 수도원들을 다녀와서 기행문도 출간했던 적이 있다. 천주교인이라 사형제에 반대하며, 낙태도 좋게 보지 않는다.8 하지만 은근히 개신교는 안 좋게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사회적인 이슈를 건드리거나 하는 경우도 많다. 문예창작학과라면 한 번쯤은 접하게 되는데, 보통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특히나 인터넷 활동 덕분에 더 극명하게 갈리는 경향이 많다.

만연체와는 또 다른, 감성적인 우유체를 즐겨 사용하지만, 의외로 공지영의 작품은 직접 분석해보면 묘사가 적고 서사에 집중하는 면이 있다. 즉 높은 핍진성(사실적 구체성)9을 가진 사건과 사건이 빠른 속도로 연결되어, 전개 속도가 빠르고 독자로 하여금 멈추지 않고 소설을 읽어나가게 한다. 공지영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독자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일종의 추리소설과 같은 소설적 장치를 심어넣는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블루노트'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공지영의 많은 소설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면이 있다는 뜻이다. 공지영 스스로의 평을 빌리면 서사 중심의 소설 전개가 바로 그 핵심적인 면이며, 오히려 한국문단보다는 영미권의 장르소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소설가 공지영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해 화제다.이에 덩달아 과거 공지영이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세 번의 이혼 사실을 언급한 것과 그 배경에 대해 털어놓은 사실이 재조명됐다.당시 공지영은 "과거에 친한 기자에게 '내가 지금 성이 다른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우연히 말했는데 '세 번 결혼, 세 번 이혼, 세 명의 아이'라는 기사가 신문 1면에 나더라"며 언급했다.이어 공지영은 " 7년간 대중의 손가락이 무서워 이혼 사실을 숨긴 채 살아왔는데 막상 신문 보도난 것을 보니 오히려 통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이어 공지영은 "기사가 나가자 아버지가 바로 전화와서 '난 네가 세 번 이혼한 사실이 정말 싫다. 하지만 네가 불행한 건 더 싫다. 알아서 잘 하거라'고 하더라”고 고백했다.공지영은 자신의 이혼 배경에 대해선 "아내로서 해야 할 일을 모두 요구해 함께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서로 안 맞았던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한편, 방송인 허수경과 8년 전 결혼한 이해영 교수는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로 공지영의 전남편으로 알려졌다.

공지영 첫번째 전남편 위기철 직업 이혼 사유 결혼

소설가 공지영의 첫 번째 남편으로, 대2때의 전형적인 선-후배 (2년차) 운동권 커플이자 첫사랑으로 결혼했다. 대학시절(1985년) 결혼 당시 공지영이 "아버지와 같은 부르주아가 좋아하는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라는 소리까지 하면서 결혼한 첫 남편이었지만 6년만에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가사분담 문제에 따른 불화와 폭력 등이다.

세 번의 이혼 원인이 모두 폭력이었다는 점에서 과장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이후로도 전 남편이 프라이버시 문제로 자전적인 소설을 쓴 것에 가처분 소송을 건적도 있다.

다만 공지영 문서에 언급되어 있듯이 인터뷰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며, 그녀의 자전적인 작품에 언급된 내용을 읽은 독자들이 그런 쪽으로 추측을 한 것으로 보인다.2004년까지 두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공지영 이혼 사유 이유 두번째남편 직업 오병철 재혼 결혼

공지영 두번째 남편은 오병철 직업은 영화감독.(공지영 재혼 남편 오병철).1958년 ~ 2005년 사망.공지영 전남편 오병철 나이차이 5살 연상공지영 오병철은 1993년 결혼했고, 1995년 이혼.오병철 사망 원인 이유 사유2005년 10월 식도암으로 사망.공지영 오병철 자녀 아들이 한명

공지영의 두번째남편 이혼사유는 바로 '폭력'때문이라고 .공지영: "저는 성장하면서 남을 때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두번째 남편(오병철)에게 맞았지만, 그때는 남편이 딴따라인데다가(영화인인데다가) 운동권도 아니라서 그냥 제가 잘못 결혼한 거라고 생각했어요."공지영: "난 내 인생이 너무 아까워요. 시간이 아깝죠. 제가 모스크바 가서 호텔에서 남편에게 맞고 나서도, (바로) 파란 아이섀도 바르고 혼자 모스크바 박물관에 갔어요. (남편에게) 맞은 것도 억울한데 그것 때문에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거든요."폭력이 원인이 되어서, 공지영은 불과 2년만에 이혼을 하게 됐다고.

공지영 세번째 전남편 직업 재혼 결혼 이해영

공지영 세번째 남편은 대학교수인 이해영.공지영 세번째 전남편 나이차이 1962년생으로 공지영보다 1살 연상.공지영 세번째 전남편 자녀 아들.공지영: "애가 열다섯 살 때 새엄마와 불화가 있었나 봐요. 아이가 많이 힘들어해서 뉴질랜드로 갔는데, 아빠랑 새엄마랑 그곳으로 살러 왔더래요. 결국 딸아이가 저에게 요청해서 저가 데리고 왔어요."공지영: "한국에서 당분간은 할머니와 살도록 거처를 마련해 줬죠. 그 다음에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지 2년 만에, 그러니까 지난해(2005년)에 "이제는 엄마랑 같이 살고 싶다"라고 하더라구요."

공지영 세번째 전남편 이혼 사유 이유

공지영: "그래서 찾고 찾은 게 좋은 학교를 나와서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남녀평등 얘기를 많이 하고, 또 제 둘째 아이도 흔쾌히 받아줬고요. 결혼 전에는 얼마나 잘해줬는지, 정말 영원히 행복하리라 생각했어요.(웃음)"공지영: "제가 주변에서 폭력적인 사람을 보고 자랐으면, (폭력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을 텐데, 교양 있는 사람은 그럴 리가 없다고 너무 쉽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교양과 폭력성이 별개인 걸 알아요."공지영의 세번째 이혼 역시 '폭력'이었다고.

공지영의 전남편인 이해영 교수와의 이혼 사유가 폭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교수의 배우자는 인터뷰에서 "그런 악소문 때문에 10년간 매우 고통 받았다"며 부인했다. 인터넷에서는 다른 전 남편들과의 이혼 이유도 폭력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지영은 인터뷰에서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대신 자신의 자전적 작품들 ('즐거운 나의 집', '수도원 기행 2') 등에서 폭력이 원인임을 암시한 바는 있다.

이 교수의 현 배우자가 (전 부인에 대한) 폭력 사실을 부인했다고 주장하는 인터뷰 내용에는 '(이 교수를) 만나 보니 소문과는 다르더라' 라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지 폭력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공지영 김부선

공 작가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부선 일에) 더 얽히지 않으려 피했지만 우리 아이들을 위해 대답한다"며 "전남편이 보냈다는 소위 그 음란사진 공개하시라"고 했다.

그는 "내 아이를 위해 막으려 애썼으나 생각해보니 부질없는 짓이었다"면서 "아이도 이제 성인이니 알아서 해석하리라 믿는다"고 자신의 아이를 봐서 공개하지 않겠다는 김부선씨의 협박에 굴하지 않겠다고 했다.

공 작가는 "세번째 이혼을 한지 16년이 지났다"며 "내 전남편인 그가 어떤 여배우(김부선)와 섬싱이 있었던 걸 최근 알았다"고 했다.

이어 "둘 사이에 무슨 문자와 사진이 오갔나보다 아니면 일방적으로 보냈는지, 나는 당연히 전혀 모른다"고 전남편과 김부선씨와 관계를 새까맣게 몰랐다고 했다.

공 작가는 "그녀가 내 전남편이 자신에게 보낸 음란사진을 공개한다고 내게 협박을 해 왔던 것이 거의 일년전이었다"면서 "(김부선씨는)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우리 아이가 타격을 입을 테니 그걸 막으려면 녹음유출에 대해(경찰조사후 무혐의) 자기와 딸에게 공개 사과하라고 (협박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연히 개인적으로 사과를 백만번도 더 했지만 그녀는 공개로 발언해줄 것을 요청했고 나는 아이를 보호해야한다는 생각에 지금 시기가 좋지 않다며 필사적으로 그녀에게 대답했고 달랬다"고 했다.

하지만 "새벽마다 보내는 문자를 견디다 못해 그녀를 차단했다"며 1년여간 큰 고통을 겪었음을 시사했다.공 작가는 "이제 답한다"며 "(우선 녹음유출) 그 점을 공개로 사과한다"고 했다.

다만 "녹음을 유출시킨 이모씨의 전화번호를 당시 경찰에게 주며 신고했지만 소식이 없다"며 김부선씨 주장처럼 '신고하는 척'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뒤 공 작가는 "이제 더 이상 대응 않겠다"며 "전남편이 보냈다는 음란사진 공개하라"고 이 일로 인해 더 이상 고통받을 수 없다고 했다.

끝으로 공 작가는 "나는 일면식도 없던 그녀를 변호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이는 "내 양심에 따른 행동이었기에 다시 그날이 와도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고 했다.공 작가는 2018년 김부선 논란 당시 김씨를 적극 지지한 바 있다.

하지만 2018년 10월 4일 모 정치인의 신체적 특징을 언급하는 음성 파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출돼 큰 논란이 일었다.

통화에서 김부선씨로 추정되는 인물은 이 공지영 작가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신체 한 곳에 크고 까만 점이 있다. 법정에서 최악의 경우 꺼내려 했다"고 했다. 이에 공 작가로 보이는 이는 "대박"이다며 "성폭력 사건에서 승소할 때 상대 남성의 특징을 밝힐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고 조언했다.

논란이 커지자 공 작가는 다음날인 5일 파일 유출과 자신은 무관하다며 이모씨를 파일무단 유출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김부선씨는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지영 때문에 재판 망한건 어쩔건데"라며 녹음유출로 결정적 무기를 잃고 지금의 신세가 됐다고 맹 비난했다.

또 "그 사람이 '점 뺐을까봐 걱정된다'고(공지영이 말해 놓고선) 이 가증스러운 거짓"이라며 분노를 터뜨린 뒤 "난 그 남자, 그 음란사진, 당신 자식들과 사회적 체면 봐서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죽을 때까지 그럴거야, 그게 인간에대한 최소한 예의고 자식둔 부모들이 해야 할 의무니까"라는 말로 '음란사진' 단어를 끄집어 냈다.

'음란사진'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지는 공 작가만이 알 것이라는 묘한 뒷맛을 남긴 채 김부선씨는 "책장사 할 생각말고 위선부터 팔기를 희망한다"며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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