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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희 나이 농구선수 와이프 부인 이광선 결혼 가족 자녀 아들 근황

by 제로스 2023.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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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농구선수 농구 코치 감독 강동희 프로필

강동희 나이 키 학력 고향 몸무게 혈액형 가족관계

이름

강동희(姜東熙, Kang Dong-hee)

생년월일

1966년 12월 20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기도 수원시

출신학교

송도고등학교- 중앙대학교

가족

1남 2녀 중 셋째, 부인과 슬하 2남

십이지

말띠

별자리

궁수자리

혈액형

B형

포지션

포인트가드

신체

180cm, 95kg

별명

마법사, 깡통

프로입단

1990년 기아자동차 농구단 입단

소속팀

파일:LreU3kv.png 기아자동차/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990~2001)

파일:mobis_automons.png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2001~2002)

파일:Changwon_LG_Sakers_1st Emblem.jpg 창원 LG 세이커스 (2002~2004)

국가대표

올림픽 1회(1996)

FIBA 세계선수권 3회(1990,1994,1998)

아시안게임 3회(1990,1994,1998)

FIBA 아시아선수권 6회(19891 ~ 19992)

지도자

파일:Changwon_LG_Sakers_1st Emblem.jpg 창원 LG 세이커스 코치 (2004~2005)

파일:external/file.newswire.co.kr/2005102111298554120.66287900.jpg 파일:동부 프로미 로고.png 원주 동부 프로미 수석코치 (2005~2009)

파일:동부 프로미 로고.png 원주 동부 프로미 감독 (2009~2013)

수상경력

<선수>

1986-87 농구대잔치 신인상

농구대잔치 MVP 1회 (1993)

농구대잔치 베스트 5 6회 (1991~1993,1995~1997)

농구대잔치 어시스트상 6회 (1991~1993,1995~1997)

농구대잔치 스틸왕 3회 (1995,1996,1997)

KBL MVP 1회 (1997)

KBL 베스트 5 6회 (1997~2001,2003)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동메달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은메달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은메달

FIBA ABC 우승 1회 (1997) / 준우승 4회 (1989,1991,1995,1999) / 3위 1회 (1993)

<감독>

KBL 감독상 1회 (2012)

종교

개신교

출생: 1966년 12월 20일 (53세), 인천광역시

키: 180cm

체중: 92kg

배우자: 이광선 (2004년–)

포지션: 포인트 가드

학력: 인천송림초등학교,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송도중학교, 송도고등학교

강동희 전 농구감독, 전 농구코치

출생

1966년 12월 20일

신체

180cm, 92kg

가족

1남 2녀 중 셋째

학력

중앙대학교 학사

수상

2012년 2011-2012 KB국민카드 프로농구 감독상

농구대잔치 7회 우승

경력

2009.12 프리스타일 명예고문

강동희 아들 강성욱 사진

대한민국의 농구선수 출신 전 감독.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원주 동부 프로미 감독을 맡았지만, 승부조작 등을 이유로 영구제명되었다.

한국 농구를 대표'했던' 최고의 포인트 가드. 현역 시절 및 나이가 들어 프로에 와서도 최고의 기량을 뽐낸 당대 제 1의 가드였다. 감독으로도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이어갔던 인물.

하지만 2013년 9월 3일에 승부조작 혐의의 처벌이 확정되고, 9월 6일에 영구제명되어 프로농구계에서 완벽하게 퇴출됨에 따라 사상 첫 감독 출신 승부 조작범이 되었다. 국내농구판 피트 로즈.34 현재 그에게 남아 있는 건 승부를 조작한 범죄자라는 낙인 뿐이다.

 

강동희 승부조작 사건

2013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파동이 일면서, 승부조작 연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강동희 검찰소환 만약 연루 혐의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선수가 아닌 지도자가 승부조작에 연루된 사례인데다, 그가 농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여간 큰 게 아닌지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었다.

본인은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지만...2013년 3월 7일 출두하여 2011년 3월 플레이오프에서 수천만원을 받고 4차례에 걸쳐 승부조작을 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당일 늦은 오후 강동희가 승부조작을 시인하였고 검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일부 매체들의 보도가 있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2차 조사까지 들어갔으며, 자정을 앞둔 시점에서도 계속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결국 3월 8일 새벽 2차 조사가 끝난 후 검찰에서는 강 감독이 승부조작에 개입한 사실을 확인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011년 6월에 YTN에 나와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은 가슴이 아프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정작 강동희 본인은 이미 3개월전에 조작을 한 상황이었다.그리고 3월 11일,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본인은 혐의를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으나 담당 판사는 도주 위험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였다고. 3월 12일 결국 승부조작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동부 감독에서 사퇴하였다. 천하의 개쌍놈 확정 이후 김영만14 코치가 원주 동부 프로미의 감독대행이 되었으며, 2013~2014 시즌 동부는 이충희 감독을 맞이하게 되었다.강동희의 승부조작에 대한 1차 공판이 2013년 4월 22일 오전 10시에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실시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1차 공판에서 기소된 2011년 4700만원을 받고 4경기 조작한 혐의 중 2월 26일 경기에서 700만원을 받은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나머지 3월 11, 13, 19일 경기에 대한 혐의는 부인하였다.이후 증인대질과 증거조사를 위해 2013년 5월 6일에 실시한 2차 공판 대질심문에서 브로커는 강동희가 4경기를 조작했다고 진술하는 바람에 브로커와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3차 공판은 2013년 5월 20일에 치뤄졌으나 혐의사실만 치열하게 떠넘기고공방만 벌여서 공판이 무성과로 끝났다. 결국 4차 공판이 확정되었으며 2013년 6월 11일 오후 5시에 동법원 3호 법정에서 실시될 예정이다. 이 공판에는 강동희측 증인으로 강동희의 밑에서 원주 동부 프로미의 코치를 하던 김영만이 재판에 출석하여 증언을 하기로 되어 있다. 김영만 코치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될 경우 주전급 선수들의 출전 시간을 줄이는 것이 관례"이고 "감독이 선수 몰래 고의적으로 패배를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증언했으나.결국 8월 8일 1심에서 징역 10개월, 추징금 4700만원 판결이 내려졌으며, 강동희에 이어 검찰도 항소를 취하. 징역 10월이 확정되었다.16 그리고 KBL에서는 같은 달 6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이 판결을 근거로 강동희를 제명 조치했다. 영구제명이라는 용어는 KBL 규정 상으로만 존재하지 않을 뿐, 승부조작의 해악을 생각한다면 사실상 영구제명이나 마찬가지였다.

2016년 KBO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불거지면서, kt wiz에서 승부조작 예방을 위한 강사로 위촉되었다. 본인 인터뷰에 따르면 승부조작이 위험하고 쉽게 빠질 수 있는 유혹이며, 한번 빠져들면 절대 나올 수 없다는 본인의 경험을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반발이 많지만, 이런 식의 교육은 흔히 있는 것이다. 음주운전 범죄자나 도박중독자, 마약 중독자가 음주운전, 도박, 마약 근절 교육에 강연을 하는 게 그 사례. 더구나 교육을 받는 선수들의 종목과 강사가 한때 몸담았던 종목은 다르지만 한때 한 종목의 전설적인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그가 승부 조작으로 인해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졌는지 그 자체도 충분히 좋은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더욱이 경험자로서 승부조작 브로커들의 접근 방법, 대처 방안들을 후배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비록 본인의 죄는 용서 받을 수 없을 지라도 후배들을 자신과 같은 범법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는다는 점에서 무조건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추가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당시 있었던 몇 가지 사실을 언급헀다.최초 승부 조작은 "1쿼터에 주전 선수들을 빼준다면 술값을 내준다"는 말에 승부 조작에 대한 의식 자체가 없었고, 어차피 휴식을 위해 주전들을 뺄 계획이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응한 것이 시작이었다.이후 3차례의 승부 조작을 더 해 총액 3700만 원을 받았으며, 그 시기 터진 프로 축구 승부 조작 사건을 보고 그때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3700만 원을 브로커에게 돌려주고 없던 일로 하려고 했으나, 그 때부터 2년 간 브로커에 협박으로 시달렸다.

네티즌들은 이미 지은 죄를 돌이킬 수는 없겠지만,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할 만큼 고통 받았던 것도 사실이고 더 이상 자신 같은 사례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강의를 진행한 것인 만큼 더 이상은 이런 실수를 하지 말고 새로운 인생을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반응이 다수이다. 조작으로 제명당했음에도 뻔뻔하게 타국 리그 팀의 입단을 시도하기까지 했으며 자기 아들을 변명삼아 감성팔이나 시전하는 최읍읍이나 아예 다른 강력 범죄까지 추가로 저질러 싹수가 노랗다는 것만 증명한 김 모씨와 유 모씨, 사생활이 좋지 못한 것도 모자라 겁도 없이 경찰 축구팀 선수에게 조작을 제안한 장 모씨등 뻔뻔함이 넘치는 악질들과는 비교되는 진정성이 보여서 그의 행보에는 굳이 토를 다는 일은 거의 없다.

이후에도 대전 KGC인삼공사 선수단 강연에도 참석하는 등 승부조작 방지 교육 전담으로 나선 모습을 보여주었다.2019년 11월에는 춘천시장애인체육회 농구팀의 기술 고문을 맡기도 했다. 2019년 7월 24일에 실린 점프볼 기사에는 인천에서 농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강동희 리즈 선수시절 과사 과거사진

2020년 7월 28일, 강동희의 사면 공론화와 관련된 기사에서 한 농구 관계자가 사면에 대한 전, 현직 농구인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며 아마추어 감독과 일부 프로 구단 등은 이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니 이제 KBL에 사면 탄원서를 제출하면 된다고 말했고, 의지와 상관없이 추진하여 그동안 표면에 드러나지 못한 것이 여론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감대 형성을 제외하고는 부정적인 여론 우려로 KBL에 사면 탄원서를 제출한다고 해도 이뤄지는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강동희 농구교실'이라는 자기 이름을 딴 유소년 농구 육성클럽을 운영하고 있었다. 현역 시절일 때부터 이미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시작한 것이 훗날 그가 감독이 될 때도 계속되었다. 물론 직접 지도할 수는 없었지만, 자기 이름을 걸고 하는 교실이니 신경을 쓰긴 썼다.그러나 정작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리자 강동희 농구교실에서는 발빠르게 대처를 하였고 결국 KBC(Korea Basketball Club) 농구교실로 이름이 개명되었다.

강동희 인터뷰게임 승부조작 근황

강동희가 과거 승부조작 사건에 대한 사과를 전했다.10일에 방송된 SBS '인터뷰 게임'에서는 前프로농구팀 감독 강동희가 '승부조작' 사건 후 인터뷰에 나섰다.

강동희는 "과거 농구선수였고 프로농구팀 감독이었다. 평생 코트위에서 살았던 나는 나의 잘못으로 인해 농구 코트를 떠나게 됐다"라며 "당시 나를 믿고 따라왔던 선수들, 내가 지켜주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뒤늦게 나마 사죄와 용서를 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라고 말했다.

과거 강동희는 '승부 조작 사건'의 중심에 섰다. 혐의는 사실로 드러났고 그는 결국 농구코트를 떠나게 됐다. 강동희는 "많은 사람들 앞에 다시 서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그냥 계속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살아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라고 말했다.

강동희는 "나에 대한 이해를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일거다"라며 "2011년 2월 경이었는데 플레이오프를 준비하는 시점이었다"라고 말했다.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순위가 정해진 상황에서 들어온 검은 제안.

강동희는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경기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길래 예정대로 주전을 내보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 돈을 받았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강동희는 "내가 그 유혹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돈을 받은 게 모든 일의 핵심이자 시작이었다"라며 "허재 형 얘길 듣고 거절했다가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갖고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강동희에게 ‘인터뷰 게임’을 제안한 건 허재였다. 허재는 “형으로서 너무 답답했다. 모자쓰고 마스크 쓰고 4~5년은 그러고 다니더라”라며 “모든 걸 털어 놓고 같이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면 되게 좋을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강동희 결혼 2004년 5월 29일 이광선 과 결혼식을 올렸다.강동희와 부인은 결혼 이후 슬하에 아들 2명을 자녀로 두고 있다. 방송에서는 강동희의 아들 둘 모두 농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강동희 자녀 아들)

이에 대해 강동희는 "저는 농구장에서 많이 멀어지고 싶었다. 관두게 하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안되고, 왜 내 꿈을 아빠가 막냐는 말에 졌다. 시합을 제가 응원을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 농구인들이나 체육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아 마음이 아팠다"며 아들들의 농구 선수 생활을 막으려 했던 사실을 털어 놓았다.

올해 나이 55세인 강동희는 창원 LG세이커스 등에서 활약했던 농구 선수다. 프로 선수 은퇴 이후 강동희는 창원 LG세이커스 코치, 원주 동부 프로미 코치를 거쳤다. 2009년부터는 원주 동부 프로미의 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강동희는 지난 2013년 프로농구 승부 조작 혐의를 받았다. 당시 강동희는 2011-2012년 시즌 남자 프로농구 리그 경기에서 4차례 승부조작을 한 혐의로 조사 받았고, 이후 법원은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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