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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 나이 성악가 프로필 결혼 남편 남자친구 자녀 가족 집안 조카

by 제로스 2023.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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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성악가 조수미 프로필

조수미 나이 학력 고향 가족관계 본명 종교 데뷔 소속사

본관

창녕 조씨

본명

조수경

출생

1962년 11월 22일 (60세)

경상남도 창원군 동면 본포리 활천마을

(現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본포리)

국적

대한민국

학력

서울금성초등학교 (졸업)

선화예술중학교 (성악과 / 졸업)

선화예술고등학교 (성악과 / 졸업)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81학번 / 제적)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성악 / 학사)

종교

천주교 (세례명: 소화(小花) 데레사)

데뷔 1986년 오페라 '리골레토'

출생: 1962년 11월 22일 (60세), 창원시 동읍

가족

부모님 부모

아버지 어머니 조언호 김말순

형제자매

조영구, 조영준

조카 유건

배우자 결혼 남편 여부 미혼

자녀 없음

학력: S.Cecilia Conservatory in Rome (1983년–1985년)

가족: 유건(조카)

소속사: SMI엔터테인먼트

출생 1962년 11월 22일(60세)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원군 동면 본포리

국적 대한민국

직업 성악가, 가수

장르 클래식, 오페라

활동 시기 1986년~

학력

서울금성초등학교

선화예술중학교

선화예술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제적)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성악 학사

종교 천주교(세례명: 소화데레사)

소속사 SMI엔터테인먼트

조수미 직업 소프라노 성악가.조수미 나이 1962년 11월 22일 (58세).조수미 고향 출생지 경상남도 창원군 동면.조수미 개명 전 이름 조수경.

조수미 조카 집안

탤런트 영화 배우 유건 고모(오촌)이다.

조수미 조카 탤런트 영화 배우 유건 프로필

유건 나이 학력 키 고향 국적 본명 가족관계 몸무게 혈액형 데뷔 소속사

출생: 1983년 1월 21일 (38세), 미국 아리조나

키: 178cm

본명: 조정익(曺禎翊)

소속사: 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 엘엔컴퍼니

직업: 배우

본명

조정익 (曺禎翊)

출생

1983년 1월 21일 (38세)

미국 애리조나

국적

대한민국

본관

창녕 조씨

가족

고모 조수미

신체

178cm, 66kg, AB형

학력

서울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

건국대학교 영화예술학과

데뷔

연예계 | 1997년 그룹 OPPA

연기 | 2006년 KBS 드라마 안녕하세요 하느님

소속사

에이스팩토리

유건 (조정익) 탤런트, 영화배우

출생

1983년 1월 21일

신체

178cm, 66kg

데뷔

2006년 KBS 드라마 '안녕하세요 하느님'

경력

2008 서울인형전시회 홍보대사

사이트

인스타그램

 

조수미 비키니 수영복 몸매

조수미 노래 앨범 음반

음반

1994년 - 《Virtuoso Arias-Verdi, Rossini...》

1994년 - 《Virtuoso Arias(From Seoul With Love)》

1994년 - 《새야 새야》

1994년 - 《SUMI JO - Virtuoso Arias》

1994년 - 《Carnaval》

1995년 - 《아리 아리랑》

1996년 - 《Dear Amadeus》

1997년 - 《비발디 사계 (조수미와 함께 하는 음악여행)》

1997년 - 《조수미가 들려주는 음악여행 - 피터와 늑대》

1997년 - 《Bel Canto (The Best Of Bel Canto Arias)》

1998년 - 《Jewel Song - French Arias》

1998년 - 《Caro Mio Ben - My Favorite Italian Songs》

2000년 - 《Only Love》

2000년 - 《카네기 홀 라이브》

2000년 - 《런던 필하모닉 & 조수미 내한 공연 (VCD)》

2000년 - 《Opera Love》

2001년 - 《카네기 홀 라이브(Live Carnegie Hall)》

2001년 - 《Prayers》

2002년 - 《New Year`s Concert 2003 -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위한 신년 음악회》

2002년 - 《My Story》-챔피언(champions) 수록

2002년 - 《향수 - 조수미 그녀의 첫 번째 순수 한국 가곡집》

2003년 - 《My Story 2》

2004년 - 《Peter And The Wolf (조수미가 들려주는 음악동화 )》

2004년 - 《Be Happy - Falling in Love with Movie》

2004년 - 《Be Happy 2005 - Falling in Love with Movie》

2005년 - 《화이트콘서트 (White Concert) - 조수미의 아주 특별한 겨울콘서트》

2006년 - 《Journey To Baroque (바로크로의 여행)》

2007년 - 《조수미 101》

2008년 - 《Missing You》

2009년 - 《Cristams Round The World》

2010년 - 《Love Never Dies》

2010년 - 《Ich Liebe Dich》

2011년 - 《Libera》

2012년 - 《La Luce》

2013년 - 《Norma(Decca)-Adalgisa 역》

2014년 - 《Arabella-Die Fiakermilli 역》

2014년 - 《Only Bach》

2014년 - 《Moon Flower(달꽃)》

2015년 - 《그.리.다》

조수미 드라마 방송 예능 책 저서 도서 출연작 작품활동

방송

드라마

2011년 KBS2 《드림하이 시즌1》- 특별출연

예능

2000년/2002년 KBS2《TV는 사랑을 싣고》- 게스트

2019년 KBS2 《대화의 희열》- 10회,11회

2021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108회

저서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1997년, ISBN 978-89-7919-085-4

《조수미의 아름다운 도전》 2007년, ISBN 978-89-7919-781-5

《꿈꾸는 프리마돈나 조수미》 2010년, ISBN 978-89-7919-941-3

조수미 어린시절 학창시절 사진

조수미 어린시절 조수미 가정사 집안

경상남도 창원군 동면에서 태어나 서울특별시에서 자란 조수미는 어렸을적 글을 배우기 전에 피아노부터 쳤을 정도로 음악 신동이었다. 부모는 조수미에게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켰다. 부모는 조수미가 똑똑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할머니는 조수미를 보며 "저렇게 아이가 영악하면 단명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부모는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는지" 물었더니 "뭐든지 두드리라. 두드리면 나쁜 기운이 빠져나갈 것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피아노를 두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한 부모는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어렵게 돈을 마련하여 고가였던 피아노를 구입했다. 4살부터 어머니와 함께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조수미는 이유도 모르고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쉬지도 않고 하루에 8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했다. 긴 연습이 지겨웠던 조수미는 어머니가 밖에 나가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려고 하면 밖에서 문이 잠겨있을 정도였다. 놀고싶었지만 놀지 못해 불만이 쌓인 8살의 조수미는 두 명의 남동생에게 "집을 나가겠다"고 말하고 가출했다가 돈도 없고 갈데도 없어 6시간만에 돌아왔다. 어머니는 조수미에게 "너는 나처럼 한 사람의 아내로 사는 것보단 만인에게 사랑받는 성악가가 되어라"고 가르쳤다. 어머니의 어렸을적 꿈이 성악가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조수미가 뱃속에 있을때부터 24시간 마리아 칼라스 음악을 틀어놓았을 정도였다.

소프라노 조수미 성악가가된 계기 사연 이유 사유 원인

조수미 어린시절 학창시절

조수미 과거 초등학교 4학년 때 KBS에서 주최한 전국 어린이 노래자랑에 나가게 된다. 주(週)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승승장구 연말결선까지 진출했으나 6학년 여학생에게 밀려 준우승에 그쳤으나, 거기서 인생을 변화시킨 한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선화예중의 교사였던 유병무였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조수미와 어머니는 전공을 성악이냐 피아노냐를 두고 고민끝에 피아노로 결정했다. 성악은 변성기를 거쳐야 하고 변성기 후에도 목소리가 아름다울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혹 도움이 될까싶어 찾아뵌 유병무가 조수미의 목소리는 굉장히 독특하고 만 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한 목소리라고 성악을 적극적으로 권하여, 성악으로 결정하였다. 성악을 강력하게 권유하고, 이후 변성기에도 목소리를 잘 관리해준 선생님의 지도 덕으로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고 조수미는 회고하고 있다.조수미는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비지스를 즐겨 듣는 등 팝이나 알앤비를 좋아했다.8 그러던중 여고시절 당시 한국의 가장 유명한 소프라노이자 교수인 서울대 이경숙 선생님께 레슨을 받게 되었고, 첫 만남에서 조수미의 노래를 들은 이경숙 선생님은 조수미를 끌어안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틀림없이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거야" 1주일에 한 번씩 레슨을 받으며 조수미는 자신의 음을 발견하고 가사의 이해와 전달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한다.7 이후 서울대학교 음대 입학시험에서 역사상 최고의 점수를 받고 입학했다.

​조수미 리즈 과거사진 과사 젊은시절

 

조수미 유학 생활 시절

유학 생활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유학을 결정하고 비행기표를 사야되는데 돈이 없어서 비행기표를 사지 못해 유학이 취소될 위기였으나 유학 3일 전 갑자기 돈이 들어올 일이 생기면서 가까스로 비행기표를 구해 어머니가 준 단돈 300달러를 들고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을 가서도 밥을 먹지 못해 초대받은 곳에서 음식을 먹다가 싸갖고 가서 다음날 아침을 해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날 빈혈이 와서 길바닥에 쓰러져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빈혈 증세가 심각하다"며 노래보다 건강을 챙기는게 중요하다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조수미가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입학 실기 시험을 보러갔었을 당시, 연주자가 오지 않았다. 교수가 반주를 할 수 있는 학생을 찾았고 조수미가 손을 들었다. 교수들은 조수미가 잘 칠 수 있을지 의심하였으나 전부 한국에서 배웠던 곡임을 확인한 조수미는 어렵지 않게 60명 학생의 곡을 전부 연주했다. 마지막에 자신의 차례에 노래를 반주에 맞추어 부르자 교수들은 실력에 감탄하였고, 역대 최고점수를 받으며 수석 입학하였다.

유학시절에 조수미가 가장 고생한 것은 집문제였다. 마당넓은 집에서 혼자 사는게 소원이었다. 노래소리를 이해해주는 집주인도 관건이겠거니와, 이웃들이 성악 유학생의 계속되는 노래연습에 불만을 제기하여 정작 어렵게 집을 구하고도 또 피아노까지 끌고 1년에 몇 차례는 이사를 다니는 일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소리를 질러 목소리를 키워야 할 성악가가 소리를 죽여가며 노래를 부르고, 이사한지 몇 달도 안 돼 짐을 꾸리며 노래할 공간 하나 없는 신세가 서러워 울기도 했다. 집문제 다음으로 고생한게 교통이었는데, 학교까지 버스로 1시간쯤은 걸리는데, 이탈리아의 들쭉날쭉한 버스시간과 시도 때도 없이 막히는 교통에 한 번 나갔다오면 파김치가 되어 30분은 드러누워 있어야 정신이 들곤 했다. 중고차 한 대 갖고 싶은 맘이 굴뚝이었지만 차마 집에 차 사달라는 얘기를 하지 못하다가, 스페인에서 열린 비냐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그 상금으로 가장 먼저 차부터 구입하였다.

유학생활을 할때까지 조수미는 평생 성악가로 살아갈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재능이 있다는건 알고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3시간씩 연습해서 발표를 했지만 조수미는 레슨 직전에 5분만 봐도 악보가 외워질 정도였고 그렇게 해도 교수들의 칭찬은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평소대로 5분간 악보를 보고 레슨을 들어갔는데 교수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악보를 찢더니 "내가 끝까지 모를줄 알았느냐, 5분전에 악보를 보고 들어온것 다 안다"며 크게 화를냈다. 이어 "너 자신이 떳떳하지 못한 데 그런 모습으로 어떻게 관중을 만날 수 있나"고 꾸짖었다. 조수미는 눈물을 흘리며 "이게 아니구나"라며 반성했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부모의 강요에 의해 음악을 했으나 서서히 가슴으로 음악을 느끼게 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됐다 그리하여 보렐리·발렌티니·베르곤치 교수에게 사사하여 2년만에 조기 졸업을 하게됐다.

조수미 노래 실력 평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912년에 작곡한 <낙소소의 아리아드네> '체르비네타의 노래'는 최고음으로 20분이 넘도록 쉬지 않고 불러야 하는 고난도 곡이어서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부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악보의 일부를 수정했었다. 그러나 1994년 조수미는 세계 최초로 수정되지 않은 원본으로 부르는 기록을 남겼다. 프랑스 리옹에서 일본계 미국지휘자 켄트 나가노와 녹음하여 출반 했는데, 조수미는 이 녹음이 젖먹던 힘까지 다 써버릴 정도로 가장 힘든 녹음이었다고 저서에서 적고 있다. 또한 조수미는 동양인 최초로 국제 콩쿠르 6개를 석권했고,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에서 주연으로 공연한 동양인 최초의 프리마돈나로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있다. 1993년에는 동양인 최초로 이탈리아 황금 기러기상(격년제)을 수상했다.20세기 최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그녀의 목소리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라고 말했다. 카라얀은 또한 "한국에서 배웠다니 놀랍다. 한국에도 그렇게 뛰어난 선생들이 있단 말인가? 한국은 대단한 나라이다"라고 감탄했다.27 뉴욕 메트로 폴리탄 극장 오페라 뉴스는 "그녀의 노래는 이미 비평을 넘어섰다"고 극찬했다. 프랑스 르 몽드지는 "요정도 그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고 평가했다. 2008년엔 르네 플레밍, 안젤라 게오르기우와 함께 세계3대 소프라노로 선정되어 베이징 올림픽 행사에 참여했다.

조수미는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많이 놀고 독서하고 자연과 함께 지내면서 아름답고 순수하게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 놀지 못했던 조수미는 아직도 곰인형 같은 장난감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성격이 형성되는데, 자연스럽고 깨끗하게 커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이란 것은 아름다운 혼이나 생각이 음악을 통해 나타나 사람들의 귀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수미 목젖

조수미는 목젖이 없다. 조수미가 목이 아프면 찾아가는 의사가 있는데 이 의사가 어느날 "조수미가 노래를 잘하는 이유를 알겠다. 목젖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조수미는 평소에 외모에 별로 신경쓰지 않으며 화장기 없이 편하게 다닌다. 그래서 옆집사람이 조수미인줄도 모르고 연습하는 소리를 듣고 음반소리가 크다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31 조수미는 수많은 공연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떨린다고 말한다. 조수미는 이러한 긴장을 풀기 위해 빨래를 한다고 말했다. 빨래를 하면서 노래에 대한 생각을 한다.32 조수미는 음악인으로써, 한국인으로써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으며 그런 기회가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한 "예술가로써 깨끗한 사람이 되고싶다"고 말했다. 조수미는 "선하지 않고 지저분한 사람의 노래는 아무리 잘해도 감동이 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세상을 순수하게 살고싶고 그런 마음이 노래에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수미는 한국의 노래를 앙코르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조수미는 "예술가는 결국 영감의 원천을 준 고국의 폼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라고 생각한다. 성악가로 성공한 조수미는 그러나 "다시 태어난다면 그냥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오순도순 여자로서 완벽한 행복을 맛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조수미 거주지 집 아파트

조수미는 로마에 거주중이며, 유튜브 인터뷰 영상을 보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유럽에서 통용될 수 있는 언어는 대부분 소통이 가능하다고 하며, 러시아어까지 구사 가능하다고 한다.

앙드레김 조수미

앙드레 김과의 인연도 유명하다. 가난한 예술가인 조수미는 한 벌에 수백 만원을 호가하는 드레스 대신 시장에서 원단을 끊어 연주회용 의상을 만들어 입어야 했다. 1988년 첫 귀국독창회에서, 공연장에 온 앙드레 김은 아름다운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은 초라한 드레스를 입은 조수미를 보고, 조수미에게 직접 연락을 하여 앞으로 드레스를 만들어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 약속은 20년이 넘게 이어졌고 세계 무대에서 조수미는 앙드레 김의 의상을 입고 노래했고,그간 입은 드레스가 200벌이 넘는다고 한다. 조수미의 한국 공연이 있을 날이면 무대 중앙 제일 앞자리에는 앙드레 김을 위한 자리가 항상 준비되었고, 공연이 끝나 커튼 콜을 할 때면 조수미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후원해 준 앙드레 김을 소개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했다. 2010년 앙드레 김이 세상을 떠나자, 조수미는 앙드레 김을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 헌정공연을 열었고,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불렀다. 앙드레 김이 세상을 떠났을 당시 조수미는 해외에 머물고 있었는데, 한걸음에 한국으로 들어와 고인의 빈소를 찾았고 오랜 시간 머물며 슬픔에 잠겨 있었다.38 조수미는 한국 디자이너의 한국미가 넘치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공연하는 것이 늘 자랑스러웠으며, 공연이 끝나면 드레스가 너무 예쁘다고 어느 디자이너의 작품이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저서에 적고 있다.

조수미 축구 열혈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2년 FIFA 월드컵때 "Champions"라는 월드컵 응원가를 발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그녀는 유로 2012 이탈리아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이탈리아 팬임을 인증 하며 응원 했다. 특히 로마의 왕자라고 부르던 토티의 열혈 팬이라고 한다. 하지만 발로텔리가 부진 하자 자신의 SNS에 “프란델리씨, 내가 당신이라면 나는 디 나탈레를 후반에 넣겠어”라고 하면서 “발로텔리는 헤어 스타일이나 바꾸러 가라”고 깔 정도로 축구에 무한한 사랑을 증명 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체사레 프란델리는 그 경기에서 정말로 디 나탈레를 교체 투입 시켰고, 디 나탈레는 그 경기에서 골까지 넣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에 힐링캠프 방송에 출연, 자신이 축구에 빠지게 되었던 이유를 설명함과 동시에23 축구 해설 위원은 물론 감독 뺨치는 완벽한 상대 팀 분석을 해내며 축구 광팬으로서의 모습을 유감 없이 보여줬다. 그녀는 원래 꿈이 축구 해설 위원이었다고 한다. 브라질 월드컵 첫 상대인 러시아에 대해서는 스타 플레이어가 없어도 감독은 AC밀란과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끌었던 세계적인 명장 카펠로가 있다며, 축구는 용병술이라 조심 해야 한다고 했다. 또 알제리에 대해서는 유럽파만 7명 정도 되고 국내파와 해외파로 나뉠 텐데 서로 단합이 될 지가 문제다. 기습 공격이 필요 하다고 말 했다. 또한 그녀는 축구는 감독의 미학 이라며 감독 입장에서 선수들을 분석 하면 선수 교체, 전술, 승리 예상 팀 등이 보인다고 했는데 10번 중 10번이 맞다고. 감독의 눈으로 경기를 본다고 밝혀 깜짝 놀라게 했다. 뿐만 아니라 2016년 체코와 A 매치를 앞두고 있는 한국 대표팀을 직접 찾아가 응원 하기도 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 팀이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무너뜨렸다는 소식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듣고는 너무나도 기뻐서 자신이 불렀던 2002 한일월드컵 타이틀 곡인 챔피언 노래 음원을 천장이 울리도록 볼륨을 크게 높여 재생 하였다고 한다.

조수미 종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조수미는 2014년 8월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시 성모대축일 미사 전 환영행사에서 넬라 판타지아 등 총 3곡을, 교황집전 미사 중 가톨릭 성가 '생명의 양식'을 부르는 영예를 안았다.

조수미 평창동계올림픽의 명예홍보대사인 조수미는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가수 소향과 함께 평창 패럴림픽 주제가인 "평창, 이곳에 하나로(Here as One)"을 불렀다.

조수미 언어 조수미 영어 6개 국어

한국어 외에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알며 러시아어도 배우고 있다.21 이 중 독일어와 이탈리아어는 성악 자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익혀야 하는 언어 이다. 클래식의 절대 다수가 저 두 언어로 작사, 작곡 하기 때문이다.

조수미 서울대학교

서울음대 성악과 역대 최고의 점수로 수석 합격했다(81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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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는 2021년 현재까지 미혼이다.

조수미 반려견 반려묘 강아지 개

개 2마리와 함께 살고있다(요크셔 테리어&셰퍼트). 그녀는 트위터에 자잘한 것들도 올린다고 한다. 조수미는 pescatarian(고기는 생선만 먹는 채식주의자)으로, 동물보호와 권리향상(특히 개)을 위해 힘을 쓰고 있으며, 관련기관에 수 차례 기부를 하기도 했다. 그녀는 아동관련기관과, 그 외 여러방면에 기부를 꾸준히 하고 있기도 하다. 조수미는 성대 보호를 위해 매운 음식을 피하며,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체형 유지를 위해 감자튀김과 같은 음식도 피한다. 좋아하는 음식은 피자, 파스타, 쌀밥, 리소토 등이다.

조수미 전남친들 열애설 스캔들 결별 이별 조수미 남자친구 직업 나이 차이 전남친

조수미 90년대에 결혼을 약속했던 프랑스 남자도 있었으나 성사되지는 않았고, "내 인생에서 나의 목소리와 음악은 많은 사람들에게 속해있으며, 또한 현실적으로도 늘 여행을 다니기 때문에, 한 남자에게 진정으로 소속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sns를 통해 사람들과 사랑을 나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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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때 같은 학교 경영학과에 재학중이던 동갑내기 남학생 K와 사랑에 빠지면서 조수미의 학업 생활은 모범생에서 날라리로 180도 달라졌다. 당시 K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조수미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조수미는 K에게 "나인지 그 여자친구인지 담판을 지으라"고 과감하게 대시했고, 결국 K는 자신의 여친과 헤어지고 조수미와 사귀었다. 그 후 다방, 영화관, 디스코클럽, 여행 등 어느 곳에서든 1년 24시간 내내 K와 함께 하면서 수업은 물론 시험까지 펑크 내는 바람에 학점은 선동열 방어율로, 석차는 1등에서 꼴찌로 전락하고 말았다.당시 이 정도로 깊은 사이였다면 K와 동거 생활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조수미는 "상상에 맡기겠다"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조수미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에는 K가 원한다면 성악가의 길도 포기할 수 있었을 정도로 오로지 K와의 결혼에만 마음이 전부 가 있었고, 심지어 K와 함께 태어날 아기 이름까지도 미리 지었을 정도였다. 게다가 당시에는 전두환 정권의 학생통제정책 일환으로 대학 입학정원을 늘린 뒤 성적에 따라서 졸업정원을 조정하는 졸업정원제가 시행 중이었기 때문에, 꼴찌를 계속하다 보면 대학을 졸업하기도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결국 졸업정원제는 FM대로 실시되지 않았다.조수미의 재능을 아까워하던 교수들과 조수미의 부모님은 결국 합심하여 조수미를 서울대에서 중퇴시킨 후, 이탈리아 로마의 명문 음악학교인 산타 체칠리아(Accademia Nazionale di Santa Cecilia) 음악원에 강제로 유학을 보냈다. 입학시험 때 반주자가 아파 감독관이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반주를 자원해 60여 명의 노래를 반주하고 본인도 로시니의 <La promessa>를 부르고 합격점을 받았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월간 객석 2014년 7월호 참조 조수미의 어머니는 이 때를 회고하기를, K가 인물도 집안 배경도 흠 잡을 데 없는 괜찮은 인물이었는데, K와 열애하면서 조수미가 음악을 놓았다는 것에 K와의 결혼을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학 후 몇 달 되지 않아 조수미는 편지를 통해 K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는데, 주변을 통해 알아보니 조수미의 같은 과 단짝친구가 K와 눈이 맞았다는 것이었다. K는 바람둥이였다. 그 뒤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 악물고 독하게 매달려 5년 과정을 2년 만에 마치고 졸업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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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의 옛 연인이었던 K는 1987년 결혼한 뒤 미국 유학을 떠나 MBA를 받고 1996년에 귀국하여 미국의 모 컨설팅 회사의 서울 지점 파트너로 재직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수미가 외국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아진 성악가가 된 후에 조수미의 공연장에 말 없이 관람하고 가기도 했다고 조수미가 언급하기도 했다. 무릎팍도사에서 강호동이 장난으로 K와 전화연결을 마련했다고 하니 조수미는 정말로 당황스러움 반 설렘 반으로 가득 찬 반응을 보였다. 이에 강호동이 놀려대자 '내가 왜 결혼을 지금까지 안 하고 있었겠냐' 며 진담 반 농담 반의 의미심장한 멘트로 받아치기까지 했다.조수미 아직 미혼이기도 하고 바쁜 스케줄 탓에 제대로 된 연애를 하기 어려운 조수미의 생활 환경상, 자신의 첫사랑인 K에 대한 마음을 아직까지도 완전히 정리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조수미는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기에 외국인과도 충분히 연애가 가능한 환경에 있지만, 개인적으로 배우자 상대는 반드시 한국인을 원한다고 한다. 이는 "K와의 첫사랑의 추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조수미가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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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가 20살 때 첫사랑 남자친구가 친구와 바람이 났다고 털어놨다.조수미는 “또 하나 너무 괘씸했던 건 그 남자친구의 새로운 여자 친구가 저희 학교 저희 과 친구였다. 그 당시 3일은 정신을 못 차렸다. 그런데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내가 그 사람에게 느꼈던 사랑, 미움, 감정들. 그걸 부르는 노래에 담으니까 이제는 고맙다”며 카메라를 보고 “고마워”라고 영상 메시지를 보내 웃음을 자아냈다.조수미는 “유학 가서 5년 만에 한국에 왔다. 88올림픽 초대를 받았다. 금의환향이었다. 김포공항에 공중전화가 있는 거다. 전화해야 할 것 같아.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소리가 나는데 끊었다. 이야기는 못했다. 심장이 멎으면서 내가 아직 사랑하고 있구나 그런 느낌이 나면서.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갈 때 발길이 안 떨어지더라. 그 분이 한국에서 내 독창회에 와서 내 노래를 듣다가 간 것까지 안다”고 첫사랑 후일담을 전했다.조수미는 “20대 사랑인데 그 때 너무 순수했다. 사랑의 힘은 시간이 흘러도 추억이 어쩔 수 없이 영원히 남는 것 같다. 애틋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음악이 성숙할 수 있었다. 제가 성공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그분의 스토리가 있다. 말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며 눈물을 보여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아직도 K군을 잊지 않고 있으며 그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K군을 만난 적은 없으나, 자신의 공연때 와서 보다가 간 것은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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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 지병인 자궁근종으로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이 사실은 그녀의 임신설 루머가 퍼지자 본인이 직접 일축하며 이야기한 부분이며 만약 미래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한 성악가라는 직업의 생활패턴상 전 세계를 정신 없이 돌아다녀야 하기에, 가정을 꾸린다 해도 정상적인 결혼생활은 어렵다. 1년 365일 중에 330일을 집을 떠나 공연하며, 개인 시간은 당연히 거의 없고, 2~3년 뒤 공연 스케줄까지 다 짜여져 있다고 한다. 물론 모든 유명한 성악가들의 삶이 이렇긴 하다. 조수미 본인도 이를 알고 있는지, 결혼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는 듯하다. 자서전에 나온 내용에 의하면, 애견인으로서 커다란 셰퍼드를 공연 중에도 동반하기도 했다고 한다.

조수미 가족 관계

가족: 유건(조카)

형제자매: 조영구, 조영준

부모: 김말순, 조언호

결혼 남편 여부 미혼

자녀 없음

조수미 부모님 조수미 가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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