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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나이 감독 와이프 부인 최상아 결혼 베트남 근황 연봉 가족 자녀

by 제로스 2023.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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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 감독 박항서 프로필

박항서 나이 학력 키 고향 가족관계 소속사 소속팀 종교 데뷔 군대 병역 몸무게 혈액형

성명

박항서

朴恒緖 | Park Hang-Seo

출생

1957년 10월 1일 (64세)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국적

대한민국

신체

박항서 키 몸무게 혈액형 166cm 62kg O형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제일은행 축구단 (1981)

육군 축구단 (1981~1983 / 군 복무)

럭키금성 황소 (1984~1988)

감독

럭키금성 황소 (1989~1990 / 트레이너)

LG 치타스 (1991~1996 /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 (1994 / 트레이너)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7~2000 /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 (2000~2002 / 수석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02)

포항 스틸러스 (2003~2004 / 수석 코치)

경남 FC (2005~2007)

전남 드래곤즈 (2007~2010)

상주 상무 (2012~2015)

창원시청 축구단 (2017)

베트남 U-23 대표팀 (2017~2022)

베트남 대표팀 (2017~ )

국가대표

1경기 (대한민국 / 1981)

본관

반남 박씨

학력

생초초등학교 (졸업)

생초중학교 (졸업)

경신고등학교 (졸업 / 70회)

한양대학교 (체육학 / 학사)

종교

개신교

가족

아버지 박록

어머니 백순정

형제자매

4남 1녀 중 막내

배우자 부인 아내 와이프

최상아

자녀

장남 아들 박찬성

출생: 1957년 10월 1일 (64세), 산청군

국적: 대한민국

체중: 62kg

배우자: 최상아 (1987년–)

감독: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팀 코치: 베트남 U-23 축구 국가대표팀 (축구 감독, 2018년–)

자녀: 박찬성

출생

1959. 1. 4. 경상남도 산청

신체

170cm, 62kg

소속사

디제이매니지먼트

소속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학력

한양대학교 학사

데뷔

1984년 럭키금성 입단

수상

2020년 베트남 정부 2급 노동훈장

작품

기타 1건

로마자 표기 Park Hang-Seo

출생일 1959년 1월 4일(63세)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남도 산청군

키 170cm

포지션 미드필더

클럽 정보

현 소속팀 베트남 (감독)

청소년 클럽 기록

1977-1981 한양대학교

클럽 기록*

연도 클럽 출전 (득점)

1981 제일은행

1981-1983 육군 축구단 (군복무)

1984-1988 럭키금성 황소 99 (15)

국가대표팀 기록

1977-1978 대한민국 U-20 8 (0)

1979-1980 대한민국 B

1981 대한민국 1 (0)

지도자 기록

1989-1990 럭키금성 황소 (트레이너)

1991-1996 LG 치타스 (코치)

1994 대한민국 (트레이너)

1996 안양 LG 치타스 (감독 대행)

1997-2000 수원 삼성 (코치)

2000-2002 대한민국 (수석 코치)

2002 대한민국 U-23

2003-2004 포항 스틸러스 (코치)

2005-2007 경남 FC

2008-2010 전남 드래곤즈

2012-2015 상주 상무

2017 창원시청

2017- 베트남

2017-2022 베트남 U-23

2022- 베트남 U-23 (기술 고문)

박항서 메달 기록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축구

아시아 주니어 선수권 대회

금 1978 방글라데시 단체전

박항서 직업 축구선수 베트남 국가대표팀 축구감독.박항서 나이 1957년 10월 1일 (64세).박항서 고향 출생지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축구 선수 박항서 감독 지도자 경력 기록 국가대표 수상 이력 수훈 훈장 필모그래피

축구 선수 경력

럭키금성 황소 (1984~1988)

K리그: 1985, 준우승: 1988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1981)

FIFA U-20 월드컵: 1978

전국 축구선수권대회: 1988

코치

럭키금성 황소 (1989~1990)

K리그: 1990, 준우승: 1989

럭키 금성황소 (1991~1996)

K리그 리그컵 준우승: 1992, 1994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7~2000)

K리그1: 1998, 1999

K리그 리그컵: 19992[27], 3위: 1997

K리그 슈퍼컵: 1999, 2000

포항 스틸러스 (2003~2004)

K리그1 준우승: 200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02)

FIFA 월드컵 4위: 2002

지도자 경력 감독

클럽 감독

경남 FC (2006~2007)

K-리그 6강 플레이오프: 2007

전남 드래곤즈 (2008~2010)

K-리그 준플레이오프: 2009

K리그 리그컵 준우승: 2008

상주 상무 (2012~2015)

K리그 챌린지: 2013, 2015

창원시청 축구단 (2017)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2017

국가대표 감독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2002)

아시안게임 축구 동메달: 2002

베트남 U-23 축구 국가대표팀 (2017~ )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2018

아시안게임 축구 4위: 2018

동남아시안 게임: 2019, 2021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2017 ~ )

동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2018

AFC 아시안컵 8강: 2019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최종 예선 진출: 2022

개인 수상 기록 선수

1985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감독

2013년 K리그2 올해의 감독상 수상

2017년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최고 감독상 수상

2019년 AFF 올해의 감독상 수상

서훈

2002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

2018년 베트남 3급 노동 훈장 수훈

2018년 베트남 우호 훈장 수훈

2020년 베트남 2급 노동 훈장 수훈

축구선수 박항서 축구 감독

축구선수 출신 축구 감독. 2017년부터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박항서

아시아에서도 축구 약체로 분류되던 베트남 국가대표팀을 맡고 난 이후부터, 2018 AFC U-23 아시안컵(준우승)에 이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4위)에서도 마찬가지로 매 대회마다 팀의 역대 최고 성적을 경신하며 동남아 축구의 부흥과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2018년 동남아 축구연맹 대회인 스즈키컵도 10년 만에 우승시켰고, 직후 2019 AFC 아시안컵에서는 8강에 올랐다. 2019년 동남아시안게임(축구팀은 22세 이하 대회. 각국 올림픽위원회 연합 주관)에서 60년만에 우승을 달성했다. 메인 전술은 5-4-1 카운터 어택으로 철저한 실리주의 축구를 추구한다. 2020년 4월 16일자 소식에 의하면 팀 전술의 변화를 시도하려고 한다.

박항서 어린시절 학창시절

박항서 과거 일본 유학생 출신인 박항서 아버지 아빠 직업은 경찰 간부로 재직하다 부상으로 국가유공자로 선정되었고 어머니는 명문 진주여고를 나왔다. 박항서 집안 부모님 부모는 고향에서 약방을 운영해서 크게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랐다. 축구를 굉장히 늦게 시작했는데 중학생때까지만 해도 장래희망이 군인이었고 축구는 논두렁에서 공차는 게 전부인 평범한 학생이었다.박항서 가족관계는 4남 1녀 중 막내다. 고령의 어머니는 형 한 명과 함께 경상남도 산청군에 살고 계시는데, 정작 어머니는 막내아들 얘기만 나오면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시는 통에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전하는 중이란 얘기도 매우 조심스럽게 했다고.막내아들 보러 베트남에 가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다고 한다. 또한, 어린 시절 공부도 축구도 잘 했다는 게 어머님의 이야기. 후에 베트남 대표 선수들이 “감독님의 어머님을 뵙고 싶다”며 고향에 방문해 박 감독의 어머니를 만나 인사도 드리고, 용돈도 드렸다고 한다.

축구 감독 박항서 축구 선수 가 된 계기 사연 이유 사유 원인

박항서 부모의 높은 교육열에 서울로 상경했으나 처음 목표했던 배재고 진학에는 실패하고 경신고에 진학했다. 배재고 낙방에 좌절하고 있을 때 교실에선 경신고 축구부원들이 공차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차범근이 이곳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이 운명을 갈랐다. 공부보다 축구에 대한 열망이 강해져 그들 사이에 들어가 함께 땀흘리고 싶었지만 신장 166cm에 비쩍 마른체격, 축구부 경력 조차 없는 범생이를 받아줄 축구부는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축구를 하고 싶었던 그는 이경이 당시 경신고 축구부 감독과 절친한 사이였던 자형의 빽으로 겨우 축구부에 들어갔다. 이런 무경력자에게 기회가 올리 없어 6개월간 후보선수로 지냈고, 운동선수 학사관리가 미흡했던 그 시절 관행을 따라 제때 졸업을 못하고 1년을 꿇었다.종일 축구공을 가지고 훈련하며 빠르게 실력을 키웠다. 1976년 고 3때 전국 청룡기 축구대회에서 결승골을 넣어 경신고에 우승컵을 안겼다. 한양대 2학년이였던 1978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 주장을 맡아 우승을 하였다.

축구선수 박항서 데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1981년 실업팀인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며 실업선수로서 데뷔하였으며, 박항서 군대 병역은 육군 축구단에서 군복무를 한 뒤 1984년 럭키금성 황소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하였다. 등번호는 12번. 1985년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리그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86년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어 팀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기도 하였다. 그리고 호적상 만 29살, 실제론 만 31살이던 1988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축구를 늦게 시작했고, 리그 태동기라 실업과 군복무를 거쳤기 때문에 다른 역대 국가대표 감독들에 비해 짧은 4년의 프로선수 시절을 보냈다.박항서 국가대표 선수시절 축구선수로 뛴 A매치는 단 1경기. 1981년 3월 한일정기전에서 전반 17분 교체 투입돼 73분간 뛴 게 전부다. 박항서가 지금도 가장 아쉬워하는 선수 시절 커리어라고 한다.

축구선수 박항서 국가대표팀 경력

1977년 제19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하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었으며 1978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 주장을 맡아 우승을 하였다. 1979년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B팀인 충무에 선발되었다. 1981년에는 1진인 화랑팀에 선발되었다. 국가대표팀 소속 A매치 출전 기록은 1981년 3월 한·일 정기전 1경기이다.

박항서 포지션 축구 선수 시절

선수 시절 미드필더였으며, 짧으면서도 빠른 패스를 상당히 중요시한 선수였으며, 체력이 좋고 항상 전력을 다하는 근성이 있는 선수라는 의미에서 '악바리'와 밧데리, 대머리 링커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박항서 은퇴후 지도자 축구 코치 감독

은퇴 후 친정 팀 LG 치타스의 트레이너로 선임되어 1996년까지 LG의 트레이너와 코치로 활동했다. 1994년에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 출전하는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김호 감독을 보좌하였으며,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창단 감독을 맡은 김호 감독을 따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로 합류하여 2000년(시즌 전)까지 활동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박항서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 거스 히딩크 와의 관계

허정무 감독이 사퇴하여 공석이 된 뒤, 후임 대표팀 감독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내정된 박항서는 2000년 12월 20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한일 정기전에서 감독 대행 자격으로 경기를 지휘했고, 이후 히딩크호의 수석코치로 합류하여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까지 대표팀 수석코치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다. 그렇게 감독과 선수들 간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면서 한국 대표팀 선수단의 융화를 일구어내며 월드컵 4위의 성과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다.

박항서 친구 친분 인맥 인간관계

박항서 황선홍

박항서 황선홍이 조별 리그 첫 경기인 폴란드전 때 선취골을 넣고 안기러 간 사람이기도 하다. 진상은 게임 시작 전에 황선홍이 골을 넣으면 박항서 코치를 안아준다고 농담 삼아 말을 했는데 골을 넣어버려서 옆에 있던 히딩크는 섭섭해 했다고 한다.

박항서 안정환

2002년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박항서 안정환이 결승 골든골을 넣은 뒤 환호하다가 이내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라운드로 향할 때 다가와서 격하게 환영해주기도 했다.

박항서 박지성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시절 당시, 박항서 감독은 무명으로 입단 테스트를 받은 박지성을 탈락시킨 적이 있다고 알려졌으나, 2018년 4월 22일에 박지성 본인이 박항서 감독에게 "그때 왜 저를 안 뽑았습니까?"라고 물어보니 "그때 나는 2군 감독이라서 결정권이 없었다."라고 대답하였다.

박항서 이천수

이천수와 한동안 원수지간이었다. 전남 감독 시절 온갖 사건사고 일으킨 문제아를 자기가 책임지고 구제하겠다고 영입건을 밀어붙여서 데려왔더니 문제 일으키고 계약관련으로 말썽부리고 급기야 깽판쳐가면서 싸우고 나가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몇 년 후 이천수를 용서하기는 했지만 박항서 감독에게 이 당시 이천수와 일을 거론하는 건 금기사항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나중에 축구인 행사가 있을 때는 서로 어깨동무하는 장면도 보여주는 등 겉으로는 사이가 진전된 것처럼 보여줬고 이후 2018년 11월 이천수가 인천 유나이티드 전력강화부장이 되어서 응우옌꽁프엉을 영입하려고 박항서 감독에게 "꽁프엉을 인천에 데려오려는데 직접 설득 좀 해주세요."라고 요청해서 그걸 들어준 걸 보면 갈등은 해소된 듯하다는 의견이 있다.

박항서 문재인

2018년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훈련장을 찾아 박항서 감독과 선수들을 격려하고 훈련을 참관하기도 했다.

박항서 김병지

박항서 재산 집 아파트 25억에 대해서 김병지가 운영하는 유튜브채널 이름 꽁병지tv에서 박항서 감독 본인이 집 3채와 보너스 25억 설에 대한 해명을 하였다. 베트남에 본인의 명의로 등기한 집은 하노이의 한 채뿐이고, 언론에 등장한 거액의 격려금도 선수,감독등을 포함한 대표팀 전원이 1/N로 분배해야 하고, 베트남의 경제수준까지 고려하면 생각처럼 거액은 아니라고 한다.

박항서 강호동

가로채널 8~9회에 출연했는데, 이전부터 강호동을 꼭 보고 싶어서 섭외에 응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실제 생일이 1957년 10월 1일인 것을 공개했다. 중학생 시절엔 이미 졸업장을 받았지만 또래들에 비해 축구를 늦게 시작하다보니 더 잘하고 싶었던 맘에고등학교를 1년 더 다니면서 변경했다고 밝혔다. 강호동과 테이프 미식축구를 했는데, 명장답지 않은 실수를 범해 고양이 모양으로 오징어 먹물을 그려 탁본이 찍히는 굴욕을 당했다.

박항서 아내 부인 와이프 최상아 가족 사진(가운데)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박항서 감독

2017년 9월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고 2017년 10월 11일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과 베트남 U-23 축구 국가대표팀의 겸임 감독으로 공식 취임하였다. 2018년 AFC U-23 챔피언십에서 약체로 평가받던 베트남 U-23 대표팀을 결승에 진출시키는 파란을 일으켰고 비록 우즈베키스탄에게 지면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 대회를 통해 베트남 국민들로부터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또한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베트남을 56년만에 아시안 게임 축구 4강에 올려놓으며 베트남 축구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그것도 모자라 2018년 AFF 스즈키컵에서도 베트남을 2008년 대회 이후 무려 10년만에 우승으로 이끌며 2018년을 최고의 한해로 만들었다.그리고 2019년 AFC 아시안컵에서 베트남을 12년만에 아시안컵 8강으로 이끌었으며 2019년 킹스컵에서도 준우승을 이끌어내면서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축구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2019년 11월 7일 3년 재계약을 맺으며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계속 이어갔고 다음날인 8일에는 아세안 축구 연맹이 선정한 '올해의 감독상'에 이름을 올렸으며 2019년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도 베트남에 1959년 대회 이후 60년만에 통산 2번째 금메달을 선사했다.2021년 11월 10일 박항서의 소속사 DJ매니지먼트는 박항서가 베트남축구연맹(VFF)과 1년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고 밝혔고 계약은 2023년 1월 31일에 만료된다.비록 2020년 AFF 스즈키컵 4강에서 라이벌 태국에 패하며 대회 2연속 우승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2022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서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진출을 이끌었고 이후 중국과의 최종 예선 B조 8차전에서 베트남의 역사적인 월드컵 최종 예선 첫 승리를 이끌어내는 기염을 토했으며 일본과의 최종전 원정 경기에서도 1-1 무승부의 쾌거를 이끌어내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그리고 베트남 U-23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마지막 대회인 2021년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도 베트남의 2회 연속 금메달이자 이 대회 전승 무실점 금메달을 이끄는 성과를 거두며 U-23 대표팀 감독 생활을 멋지게 마무리지었다.

박항서 베트남 어

베트남의 영웅이라고 불리지만, 베트남어는 잘 하지 못하며, 간단한 회화(Xin chào 같은 인사말) 정도를 구사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항상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어 어학당을 운영하는 축잘알 현지인 통역사를 거쳐서 대화하는 중. 이에 베트남 푹 총리가 '당신은 이제 베트남 사람(?)이니 베트남어를 배우세요'라고 농담섞어서 권유하기도.

모델 박항서 광고 박카스

베트남 현지에서 판매중인 박카스의 모델이 되었다. 박카스가 옆나라 캄보디아에서는 국민음료급으로 자리잡았지만, 베트남에서는 레드불 등 타 자양강장제에 밀려서 그리 잘 팔리던 음료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박항서를 광고 모델로 선정한 이후로 점유율이 급상승해서 잘 나가고 있는 중. 또한 베트남 기준으로 발음도 비슷한 덕분인지, 베트남 현지에서 박항서 감독의 별명으로 굳어지는 중. 한국 발음도 비슷하다. 바캉서 박카스 발음 비슷하기론 바캉스 드립도 있다.

박항서 인삼

박카스와 비슷한 이유로 한국산 인삼 제품도 베트남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선수들의 체력을 위해서 박 감독이 인삼을 달여서 먹게 했는데 이 때문에 입소문이 크게 퍼져서 인삼이 많이 팔린다고 한다.

베트남 국가대표팀 축구 박항서 감독 연봉

축구 감독 박항서 연봉은 과거 감독으로서 월급 2,500만원으로 연봉이 3억원(세금은 35%)이다. 이는 주변 나라 국대감독들에 비해 엄청 낮은 편이 었다.박항서 감독 스스로는 커리어를 마감할 뻔하다가 다시 잡은 기회이기 때문에 연봉에 대해 만족한다고 얘기하지만 오히려 베트남 국민들이 박항서 감독에게 이 연봉을 주는 것은 결례이자 주변국에 대한 자존심 문제라며 연봉 인상을 베트남 축구 협회에 요구 했다. 그리고, 베트남 최대 기업인 호앙아인 질라이 컴퍼니의 대표로 유명한 두안 응우옌 둑 씨가 "베트남 축구협회와 상관없이 내가 연봉을 주겠다.", "계약기간이 끝날 때 박항서 감독이 연봉 인상을 원할지 모르겠지만, 베트남에 남게 하고 싶다."라고 이야기를 하였다.2019년 11월 7일 재계약을 하면서 9일 베트남 현지 언론이 밝힌 바에 따르면, 연봉이 약 11억원(96만 달러)으로 인상되었다고 한다. 11억 연봉도 '엄청 많다'라고 간주하긴 어렵겠지만 베트남의 나라 사정을 감안한다면 상기 언급한 베트남 내 대기업이 정말로 연봉을 대준 것이 아닌 한 베트남 축협의 예산을 싹싹 털어 준 셈이나 다를 바 없다.

축구 감독 박항서 근황

유퀴즈온더블럭 박항서 유퀴즈 출연했었을 때 "베트남에서는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는 문화가 있다. 그래서 나도 낮잠을 잔다." 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박항서 탈모 대머리 별명 대머리 링커

박항서 20대부터 탈모 증상이 있었기 때문에 대머리 링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박항서 노안인 탓에 묻히는 사실이지만, 차범근 감독의 경신고등학교 5년 후배이다. 차범근 감독이 1972년 졸업생(65회)이고 박항서 감독이 1977년 졸업생(70회)이다. 황선홍 감독과 11살 차이며, 김학범 올림픽 대표팀 감독보다 3살 연상이다.

박항서 매직

박항서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2018년 스즈키컵 우승,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4위, 2019 AFC 아시안컵 8강 진출 등의 성적을 내며 '박항서 매직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박항서 결혼 전부인 아내 배우자 와이프 직업 최상아 박항서 여자친구 전여친 열애설 연애 스캔들 결별 이별 이혼 재혼

박항서 결혼 최상아와 1987년 5월 결혼식을 올렸다고 알려져 있다.박항서 부인 아내 와이프 직업 나이 차이등 박항서 아내 최상아와의 첫만남이나 러브스토리 등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최상아 박항서 종교

박항서 종교 개신교 상당히 독실한 신자로, SBS 집사부일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기도부터 한다고 한다. 신앙생활은 선수 시절부터 시작했다고 말한다. 현지 선교사들에 의하면 박항서의 인기 덕에 덩달아 박항서가 믿는 개신교에 관심을 갖거나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현재는 베트남 한인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항서 아내 부인 와이프 최상아 집안

박항서 부인 최상아 권사와 함께 예수님의 제자되기를 소원하며 늘 기도의 삶을 살아온 믿음의 사람이다.박항서 아내 최상아 권사의 외사촌 오빠인 이경재 권사(제천 토교감리교회)에 의하면 박감독 부부는 늘 스스로가 부족하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만을 의지했단다. 또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는 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을 믿었다고 한다.박항서 감독 부부는 바쁜 가운데서도 기도하는 시간을 만드려고 노력했고, 항상 기쁜 마음과 평안을 간구했다. 그래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두사람은 항상 매사에 자신감 넘치게 살아왔다고 한다. 또 "항상 기도하라"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늘 기도에 힘쓰고 살았는데, 부부가 기도할때는 항상 짧은 내용을 계속 반복했고 응답을 받으면 또 다른 기도를 짧게 반복했다고 한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으로 가기로 결정한 것도 부부가 합심으로 기도한 결과였다고 한다.

박항서 베트남 감독으로 진출한 계기 사연 이유 사유 원인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 간 계기에 대해 베트남 언론 봉다플러스는 지난 2020년 박항서의 베트남행 결정이 박항서 와이프 최상아 덕이라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부인은 박항서가 베트남행을 고민하자 "해외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았냐.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라고 설득했다.2019년 박항서는 SBS '가로채!널'에 출연해 와이프의 반응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뒤돌아 볼 것이 뭐가 있느냐'고 그러더라. 아내가 봤을 때 '남편이 감독생활을 더 할 수 있는데 '라는 생각에 저를 안타깝게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항서 리즈 과거사진 과사 젊은시절 노안 대머리

박항서 자녀 자식 아이 아기 아들 딸

최상아 박항서 사이에 자녀 아들 1남 장남 박찬성을 낳았다.

박항서 가족관계

아버지 박록

어머니 백순정

형제자매

4남 1녀 중 막내

배우자 부인 아내 와이프

최상아

자녀

장남 아들 박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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