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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나이 농구선수 프로필 사망 결혼 남편 투병 가족 고향 근황 리즈

by 제로스 2023.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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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선수 김영희 프로필

김영희 나이 학력 키 고향 가족관계 소속팀 종교 데뷔

출생

1963년 5월 17일

경상남도 울주군 언양면

(現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사망

2023년 1월 31일 (향년 59세)

국적

대한민국

가족

부모님 부모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

남동생

신체

205cm

종교

불교

포지션

센터

학력

숭의여자고등학교 (졸업)

소속

한국화장품 (1981~1987)

출생: 1963년 5월 17일 (58세), 울산광역시

키: 205cm

팀메이트: 박찬숙, 김화순, 성정아, 이형숙, 최경희, 김은숙, 최애영, 박양계, 문경자, 이미자, 정명희

영화: 피아골

출생

1963년생 60세

신체

205cm

학력

숭의여자고등학교

수상

1983년 여자농구대잔치 최우수선수상

1983년 여자농구대잔치 인기상

경력

한국여자농구연맹 경기기술위원

1984 LA올림픽 여자 농구 국가대표

출생 1963년 5월 17일(58세)

대한민국 울산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키 205cm

선수 경력

고등학교 숭의여자고등학교 (졸업)

프로 선수 경력 1981년~1987년

클럽 경력

선수

1981-1987 대한민국 한국화장품

국가대표팀

김영희 직업 전 농구선수.김영희 나이 1963년 5월 17일 (58세).김영희 고향 출생지 울산광역시.김영희 사망 나이 2023년 1월 31일 (향년 59세)

김영희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메달 기록 국가대표 팀

올림픽

은 1984 로스앤젤레스 농구

김영희 경력 수상 내역 필모그래피

수상내역

1983

여자농구대잔치 최우수선수상

1983

여자농구대잔치 인기상

1983

여자농구대잔치 자유투상

1983

여자농구대잔치 리바운드상

1983

여자농구대잔치 득점상

경력사항

한국여자농구연맹 경기기술위원

1984

LA올림픽 여자 농구 국가대표

1979~1987

한국화장품 농구팀 선수

 

김영희 국가대표 여자 농구 선수이다.김영희 키 205cm로 현재 공인된 대한민국 최장신 여성이다.국내 거주 여성으로서는 공동 1위인데, 키 205cm의 몽골인 유학생 여성이 있기 때문. 거인증을 앓고 있는 김영희 선수와 달리 이 여성은 질병이 없이 키가 큰 것이다. 또한 북한의 농구선수 박진아가 205cm라고 하는데 박진아는 2018년 기준 15세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더 자랄 것을 감안하면 한민족 최장신 여성 타이틀은 내줄 것으로 보인다.김영희 포지션은 센터이다.

김영희 어린시절 학창시절

김영희 과거 경남 울산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키가 컸던 김영희는 부산광역시의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배구 선수로 운동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농구로 종목을 바꾸었고, 동주여자중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장신의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치열한 스카우트 경쟁 끝에 농구 명문 학교인 서울의 숭의여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김영희 데뷔

숭의여고를 졸업한 뒤에는 실업팀 한국화장품에 입단했다.숭의여고 2학년 때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으며, 은퇴할 때까지 대표 선수로 활동했다.

김영희 국가대표 올림픽

구기 종목 최초의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도 출전하여 김영희 은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김영희 리즈 과거사진 과사 젊은시절

김영희 기록

점보시리즈 농구대잔치에서 한 경기에 52점을 기록하여 여자농구 한 경기 역대 최다 득점을 기록하였고, 75 리바운드를 기록하여 한 경기 역대 최다 리다운드를 기록하는 등 그녀의 전성기는 8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졌다.국내 무대에서는 오랫동안 깨지지 않았던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우고 태평양화학의 센터 박찬숙과의 라이벌 대결로 눈길을 모았으나, 국제 대회에서는 느린 스피드 등의 몇가지 단점 때문에 주전으로 많이 뛰지는 못했다.1984년 농구대잔치에서 베스트5상을 수상했다.

김영희 투병 말단비대증 거인병

1987년 연습 중 쓰러진 뒤 말단비대증, 일명 거인병으로 투병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여자농구연맹은 2003년부터 그를 경기위원에 임명하여 병원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2009년 2월,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을 통해 그의 사연이 소개되기도 했다.

김영희 은퇴 후

김영희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지면서 뇌수술을 받게 되었고, 은퇴식도 없이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말았다. 2002년에 거인병이라 불리는 말단비대증 판정을 받으며 투병 중이며 이로 인해 한때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술에 빠져 처참한 세월을 보냈으나 많은 농구인들의 도움을 받고 이를 어느정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농구인들 뿐만 아니라 농구 스폰서 기업에서도 김영희를 평생 도와주기로 했는데 모 스포츠 용품 기업에서 김영희의 운동화를 평생 공짜로 지원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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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결혼 에 대해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았다. 보통 사람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체격이 컸던 터라 자신과 어울릴 만한 남자도, 자신을 좋아할 남자도 없다고 미뤄 짐작했기 때문이다.김영희:“저를 데리고 살려면 우선 집도 커야 하고, 차도 커야 하고 모든 것들이 다 커야 하는데…. 유지비가 좀 많이 들겠어요? 저를 데리고 살 남자가 없다고 단정지은 지 오래됐어요. 나도 여잔데 그렇게 마음먹기까지 어찌 제 속이 편하기만 했겠어요. 보통 사람들처럼 가정을 꾸리면서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싶은 기본적인 욕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죠. 결혼에 대한 꿈은 오래전에 접은 터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지만 엄마는 선수시절부터 딸이 여자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어요.”

농구선수 김영희 가족관계

김영희 가족 아빠 엄마의 키는 165cm와 163cm로 평범했고 남동생도 173cm인데 자신만 이렇게 키가 크는 이유가 거인병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김영희 부모님 부모 김영희 가정사 가족사

1998년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2000년 아버지가 암수술 끝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어머니는 지난 1998년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호하다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없이 집까지 팔아가며 아버지를 간호했지만 결국 아버지도 병을 이기지 못하고 김영희 곁을 떠났다.

김영희 연금 재산

김영희 “올림픽 연금으로 70만원으로 생활 중인데 입원하면서 병원비가 많이 나왔다”고 토로했다.

김영희 특별 보조금

김영희 문화체육관광부 특별보조금을 받았다. 김영희 전성기였던 1987년 거인병, 거인증 등으로 불리는 ‘말단비대증’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계속해왔다.국민체육진흥공단과 이사회를 열고 김영희에 대해 특별보조금 1000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며 황희 문체부 장관이 김영희 자택을 직접 방문해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했다.

농구선수 김영희 근황

김영희 최근 '스타다큐 마이웨이' 출연하여 근황을 알렸다.88년 서울 올림픽을 대비해 선수촌에서 훈련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졌다. 반신마비가 오고 한쪽 다리, 한쪽 팔이 마비가 오고 앞이 안 보였다. 병원에서'머리에 큰 혹이 있는데 어떻게 훈련했냐'고 하더라. 혹이 너무 커졌다고 조금만 더 늦었으면 사망이었다더라. 사형 선고를 내리더라. '운동하면 안 된다. 김영희 사망이냐 운동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고 떠올렸다.35년째 김영희는 거인병과 그로 인한 각종 합병증을 앓고 있었다. 김영희는 약 봉투를 보여주며 "거인병에 대한 약도 있고 복합적이다. 이번에 머리에 피가 고이면서 머리 약도 있고 항생제도 있고 골고루 있다"고 설명했다. 또 성장 호르몬 분비가 많이 돼 인슐린이 나오는 구멍을 막는 탓에 당뇨가 생겨 인슐린 주사도 매번 스스로 놓고 있었다.그럼에도 김영희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과거 극단적 시도를 할 정도로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지만 이제는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며 비법으로 마음가짐을 전했다. 그는 "밤에 자다가도 여러번 깬다. '내가 깼지, 살아있구나. 또 자자, 두 시간만 더 자자'. 두 시간 있다가 또 깬다. 여전히 깜깜한 밤이지만 '깨었구나. 살았구나. 내일 아침 해를 볼 수 있겠구나' 한다. 계속 자다가 한 번도 안 깨면 그냥 저 세상으로 갈까봐 항상 그게 불안한 거다"라고 밝혔다.

농구선수 김영희 사망 이유 사유 원인 사인

2020년에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져 입원했었단 사실이 밝혀졌다.거동이 불편해져 작은 문턱조차 혼자 넘지 못했었다. 2006년에 인간극장에 출연했을 당시엔 불편한데는 있었을지언정 걷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그렇게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중 2022년 10월경에 목을 다쳐 한동안 요양원에 머물렀지만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한 채 2023년 1월 31일 급성 호흡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경기도 부천 다니엘 장례식장 특실이었으며 2월 4일 오전 8시 30분에 경기도 부천 다니엘 장례식장에서 발인되었고 장지인 경기도 화성시 함백산추모공원에서 영면에 들었다.부고 소식이 전해진 뒤 농구계는 추모에 나섰다. 2월 1일부터 2월 3일까지 진행된 여자농구 정규리그 경기에서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경기전 묵념을 했다.

김영희 친구 친분 인맥 인간관계

서장훈 허재 김영희

서장훈은 김영희 계좌에 거액의 돈을 송금했고 허재 는 금전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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