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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나이 와이프 부인 아내 심하은 직업 결혼 남편 자녀 고향 가족

by 제로스 2023.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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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축구선수 이천수 프로필

이천수 나이 키 학력 고향 가족관계

출생: 1981년 7월 9일 (38세), 인천광역시

키: 173cm

이천수 가족관계

아내 심하은

딸 이주은

이란성 쌍둥이 아들 이태강

이란성 쌍둥이 딸 이주율

배우자: 심하은 (2012년–)

등번호: 10 (인천 유나이티드 FC / 공격수)

포지션: 공격수

자녀: 이주은

​이름

이천수

李天秀 / Lee Chun-Soo

출생

1981년 7월 9일 (38세)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

국적

대한민국

신체

171.5cm

직업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행정가

소속

선수

울산 현대 호랑이 (2002~2003)

레알 소시에다드 (2003~2005)

CD 누만시아 (2004~2005 / 임대)

울산 현대 호랑이 (2005~2007)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7~20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8 / 임대)

전남 드래곤즈 (2009/ 임대)

알 나스르 FC (2009~2010)

오미야 아르디자 (2010~2011)

인천 유나이티드 (2013~2015)

프런트

인천 유나이티드 (2018~ / 전력강화실장)

국가대표

14경기 20골(대한민국 U-20/1999~2000)

27경기 11골(대한민국 U-23/1999~2006)

78경기 10골(대한민국/2000~2008)

청소년 대표 시절 최태욱과 함께 투톱으로 뛰며 당시 한국 축구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작은 체구에 뛰어난 스피드를 가졌으며 특히 공 잡고 방향전환하면서 순간적으로 가속을 붙이는 능력이 좋았다. 거기에 발재간, 정교한 크로스와 킥 능력 등으로 국가대표 경기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

공격 포지션은 대부분 소화했지만, 가장 파괴적이던 위치는 쳐진 스트라이커. 이후 국가대표에서는 작은 키로 인해 최전방 공격수보다는 주로 측면 공격수로 뛰게된다. 또한 정지된 상태에서 킥 능력은 세계적이었으나, 러닝 크로스의 성공률은 생각보다 평범하다.

그럼에도 이천수가 한때 박지성과 비교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엄청난 활동량을 이용한 뛰어난 오프더볼 움직임과, 순간 속도를 이용한 돌파, 침투능력, 위협적인 중거리 슛 덕이었다. 박지성이 뛰어난 활동량과 경기 관여로 전체적인 경기력과 흐름을 주도해 나간다면, 이천수는 경기가 비벼질 때 상대를 흔들고 파고들어서 위협을 가하는 크랙이었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과 골 욕심으로 말도 많은데, PK나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낸 상황에서 전담 키커를 무시하고 자신이 공을 차려는 경우가 빈번하다.

프리킥의 경우 욕심을 내는 편이나 자신보다 잘 찬다고 인정하는 선수라면 굳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지만 이천수의 킥 능력은 아시아 원톱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고 이을용, 고종수 등 톱클래스 왼발잡이 키커들을 제외하면 당시 국내선수 중 이천수만큼 프리킥을 잘차는 선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기에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PK의 경우 2006년 A3 대회에서 실축하고 나선 다시는 차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담으로 울산 현대는 그 경기에선 PK 실축으로 2-3으로 패했지만, 다음 경기인 알 샤밥전에서 이천수를 앞세워 6-0으로 승리하고 우승했다. 두번의 유럽진출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두번의 울산현대 시절의 이천수는 그야말로 언터처블.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멘탈적으로도 무시무시한 선수였는데, 사건 사고에 자주 연루되는 악영향도 있지만 그 똑같은 멘탈이 필드 위에서는 흔히 전설로 얘기되는 파올로 말디니 뒤통수 후려차기와 같이 스포츠맨 정신에 어긋나 해외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행위도 있었으나, 2002 월드컵 미국전에서 PK를 자청하던 모습 혹은 2006 월드컵 스위스전에서의 투혼과 눈물처럼 국내 국대 팬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긍정과 부정 양 측면이 국내 선수에게는 유례가 드물 정도로 공히 두드러지니, 이런 류의 멘탈이 거의 천부적이란 걸 생각하면 이 선수의 선수 생활이 끝나감에 이르러서 못내 아쉬운 감은 금할래야 금할 수가 없다. 다행히 말년인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에는 술집 폭행 사건을 제외하고는 정말로 갱생한 듯 사고가 크게 줄었으며, 특히 말년에 고향 팀 인천에 대한 충성심은 당시 설기현의 통수질로 분노가 극에 달한 인천 팬들에게 위안이 될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실력의 수준은 좀 차이가 있겠지만 안토니오 카사노와 커리어가 묘하게 비슷하다. 또한 체력과 활동량도 최상급.

동갑내기 축구 선수이자 비슷한 시기에 스타로 떠오른 박지성과 비교되며 '게으른 천재'라는 인식이 퍼져있다. 노력하는 수재 박지성과 노력하지 않는 천재 이천수. 이러한 비교가 흥하게 된건 두 선수의 축구 인생이 상당한 대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천수는 대학 축구 최고 명문인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고, 히딩크와 박지성조차도 박지성보다 이천수가 뛰어나다고 말한 사실 때문에 천재 이미지가 강했고 박지성은 어렸을때부터 축구 선수로선 치명적인 평발에다 받아주는 대학도 없었고 천재로 유명했던 이천수와 달리 거의 무명 선수로서 안습한 시절을 보낸뒤 월드컵을 통해 스타가 되며 '노력끝에 성공한 수재' 이미지가 있었던 것.

 

거기다 두 사람 다 비슷한 시기에 해외 진출을 했는데, 이천수가 적응 실패 이후 귀국하여 여러가지 스캔들에 휘말리며 일이 꼬인데 비해 박지성은 승승장구하고 성공하여 맨유로 간 이후에도 거의 도닦는 스님 수준의 멘탈을 보였으니 두 선수는 비교될수 밖에 없었다. 스타에서 출발하여 여러가지 스캔들등으로 재능을 다 꽃피우지 못한 선수와 무명 듣보에서 출발하여 현세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국민적 스타가 된 선수의 대비이니 축구 인생 자체로만 놓고보면 딱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게으른 천재 vs 성실한 수재의 전형이었던 것. 또한 박지성과 대비되는 잦은 방송 출연과 연예계 활동으로 인한 이런 저런 스캔들 때문에 안 좋은 의미의 풍운아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천수도 충분히 노력하는 선수였다. 부평고 시절 고교 축구계를 씹어먹던 동갑내기 최태욱에게 실력의 벽을 느끼고, 최태욱을 이기기 위해 미친듯이 연습했다고 한다. 비교대상인 박지성 역시 전국에서 가장 축구 잘하는 초등학생 6명에게 주는 차범근 축구상을 받았을 정도로 재능이 좋았던 선수였다. 다만 중고교 시절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평발 + 무명 시절로 인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력가로 보였을 뿐이다. 물론 노력가는 맞지만 노력 이상의 재능이 있는 선수였다는 것.

 

애초에 박지성과 이천수를 재능과 노력의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다. 한국 학원 축구를 통해 성장한 선수가 월드컵에서 유럽 최강국들(포르투갈, 스페인)을 탈탈 털었다는 데에서 이미 두 선수는 한국에서 재능과 노력 모두 끝판을 찍은 것이다. 스페인전에서 이천수가 투입되기 전과 후를 비교해보면 명확하다. 20살에 경기 내용을 이렇게 바꿀 수 있는 거 자체가 실력 포텐 모두 최상급이라는 얘기이다. 이 두 선수 중 한 선수는 세계 최고의 감독에게 '미친듯이 공간창출 해내는 월드클래스'라는 찬사를 받고 한 선수는 유럽에서 숱하게 방출된 이유를 찾자면 축구외적인 멘탈관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앞으로도 있기 힘들 너무 큰 성과를 거두었고 그 주역들 역시 단숨에 톱스타 반열로 올라갔다. 이는 박지성과 이천수 모두 관련되는 얘기이다. 고참 선수들은 그나마 나았지만 이제 막 프로 생활을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이 한국에서 '영웅' 칭호와 함께 최고 스타 반열에 올라간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을 케어해줄 에이전트 시스템 역시 전무했다. 그당시 한국의 에이전트 시스템이라 해봤자 세계적으로 자기 선수가 어느 정도 수준인줄도 모른 채 그저 4강 가고 유럽 강국들을 상대로 깜짝 활약을 했으니 유럽에서도 먹힐거라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있었고 선수의 유명세를 이용해 광고나 뮤직비디오 출연 등 단기적인 수익에만 열을 올리는 상황이었다.

박지성은 성격 자체가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나서지 않는 성격이었던 반면, 이천수 자체가 워낙 에고가 강한 선수라 이러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 흠뻑 빠져있었다. 수많은 B급 연예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으며 20살 축구선수 치고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자서전, 수많은 TV 광고와 예능 출연으로 한국에서의 톱스타로서의 위상을 충분히 즐겼다.

만약 이천수가 한국에서만 뛸 것이었으면 리그 탑급 선수로 자리잡을 수도 있었지만, 당시 이천수의 재능은 충분히 탈아시아 급이었다. 에이전트 또한 유럽에서 통할 것으로 봤기에 전 시즌 라리가 2위에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는 레알 소시에다드에 이적시킨다. 그러나 아무리 월드컵 깜짝 스타라고 하더라도 이천수는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자세로 도전자의 자세로 이적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안정환은 '유럽에서 축구를 아예 새로 배웠다,'고 언급할 정도로 한국 축구와 유럽 축구는 수준차가 매우 컸다.

반면 박지성의 경우, 도전자의 자세에서 이적을 임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초반에의 부진 역시 부상 여파도 있었지만 유럽 수위리그에서의 완전히 다른 축구를 접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도전자의 자세로 부와 명성이 보장되는 J리그 리턴의 유혹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만개하기 시작하면서 03/04 아인트호벤의 역대급 스쿼드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그는 퍼거슨의 콜을 받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진출하게 된다. 거기다 박지성은 같은 팀의 감독인 히딩크가 애정을 가지고 그를 지도했다는 점도 큰 차이였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에게 일반적인 유럽 구단과 감독들이 하는 것 이상의 애정과 관심을 쏟아서 키워냈다. 아는 사람 없는 타지에서 능숙하지 않은 외국어와 냉정한 평가 속에 던져진 이천수와,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지닌 베테랑 감독과 이영표라는 의지할만한 한국인이 함께하고 있던 박지성의 차이는 유럽 적응에 있어서 크게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두 선수의 이러한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것은 어린 나이에 너무나 큰 성공 후의 멘탈 관리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스포츠 언론인들 사이에서의 중평은, 해외 진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적응력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선수 중 이 적응력이 강한 사람이 박지성, 안정환, 설기현 등이고, 약한 사람이 이천수, 이동국, 송종국 등이다. 국가대표에서 보여준 축구 실력적인 측면에서는 결코 해외 리그에서 성패가 이렇게 크게 벌어질 레벨은 아니지만, 시즌 준비부터 시작해서 한 시즌이라는 긴 기간 동안 용병이라는 입장과 외로움을 이해하고 사생활 관리를 하며 경기력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만드는 것에서 커다랗게 수준 차이가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1월 녹화한 지역민방 프로그램 <토크콘서트 화통>에 출연해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하면서 체격이 작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운동을 하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끈기의 사나이. 목표 의식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축구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고 한다.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도 '게으른 천재'라는 세간의 평가를 직접 언급했는데, 자신은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건 없다는 주의이며 현역 시절 노력파였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이천수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와 별개로, 은퇴 후에도 박지성과 비교되며 까이고, 게으른 천재 취급을 받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그의 재능을 보고 기대했는지를 알 수 있다.

컴맹이다. 1 대 100에서 '키보드에서 볼 수 없는 키'를 묻는 질문에 ESC와 Ctrl을 몰라서 축구단같은 단어인 AC를 답으로 골랐다.2002년 월드컵 당시 홍명보에게 반말을 한 사람이 김남일이 아닌 자신이라고 밝혔다. 히딩크 감독의 지시에 의해서 그렇게 했고, 나중에는 그냥 그게 자연스러웠고 경기력에도 훨씬 도움이 됐다고.2002 국대에서 뛸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는 골때리게도 릴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프랑스 축구 클럽인 릴 OSC로 이적을 추진했었던 경력 때문에 릴+성인 리(Lee)를 합쳐서 그렇게 부른 것.

2003년 7월 스페인 진출 직전 "난 야구가 싫다."라는 발언으로 야빠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다만, 이것은 기레기들이 쓰는 와전된 이야기라고 말하는 의견도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른뒤 야구 시구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고, 롯데 자이언츠의 시구를 하기도 했으며 2017년 중순부터는 연예인 야구단 활동도 하고 있다.

2003년에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다.루다 - 투비 이 뮤직비디오 출연 관련해서도 인터넷에서 루머가 돌고 있다.이영표 말에 의하면 고등학생 시절부터 이천수는 남달랐다고 한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에서 만났다고 한다.한일전에서의 씁쓸한 패배 뒤 이천수가 팀에 합류를 했었고 안 좋은 분위기에서 밥을 먹고 있는 자리였는데 이영표를 비롯한 대표팀 선배들에게 이천수가 꺼낸 멘트는 일본한테 지냐. 내가 있었으면 이겼다라는 멘트를 날렸고 당시 상상을 초월한 문화충격을 받은 이영표는 아무말도 못했다고 한다.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 구단주였던 송영길 전 인천시장과는 집에도 방문할 만큼 각별한 사이라고 한다. 2018년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송영길을 당대표 후보로 지지하며 대의원과 당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기도 하였으며, 21대 총선을 앞두고는 더불어시민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참석해 송영길을 비롯해 박찬대, 허종식 등 더불어민주당 인천광역시 총선 출마 후보 유세에 힘을 보태는 등 정치적으로는 민주당 지지파인 것으로 보인다.또한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김철우 보성군수 후보를 지지하며 송영길과 같이 김철우 후보 지원유세에 나서기도 하였다.

3년 동안 산 속에서 제기만 찼다는 컨셉으로 제기왕 이천수를 터치플레이에서 하고 있다. 그리고 이수근을 꺾었다 최근에는 위국헌신 국군장병을 위한 기부 프로젝트인 군대스리가를 진행하고 있다. 전 대한민국 국대 선수들을 모아 군인 올스타를 상대한다. 피파 온라인 4에서 2019년 만우절 기념 선수팩으로 등장하였다. 독보적인 피지컬을 자랑한다.2020년 1월 11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쌍둥이 아빠가 됐다는 소식을 알렸다. FIFA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축구선수 1위가 호나우지뉴이고, 2위가 이천수이다.

‘택시’에 출연한 이천수-심하은 부부가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방송된 tvN 예능프로그램 '현장 토크쇼 택시'(이하 '택시')에서는 '야수의 아내' 특집으로 꾸며져 이천수-심하은 부부가 게스트로 동반출연했다.

이날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한 이천수의 아내 심하은은 모델 출신답게 큰 키와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로 이목을 사로잡았다.

심하은은 "해외 유학파 출신 엘리트라더라"는 MC오만석의 질문에 "모델 시절 서울 컬렉션에 매년 섰다"며 "그 전에는 소소하게 활동했다. 예쁘진 않고 튀는 아이였다"고 말했다.

심하은은 "할머니대부터 일본 유학을 갔었다. 일본 유학 중 한국에 놀라왔다가 길거리 캐스팅이 되서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방송에서 심하은은 이천수의 아내가 아닌 교수로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워킹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뭉쳐야 찬다' 이천수가 오랜만에 출연하면서 관심이 쏠렸다.

지난 31일 방송된 JTBC '뭉쳐야 찬다'에서는 2002 한일 월드컵의 주역인 유상철, 최진철, 이운재, 송종국, 이천수, 최태욱, 현영민은 물론 박재홍, 김용대, 김정우 등 전 국가 대표 축구 선수들이 오랜만에 얼굴을 비췄다.

특히 그 중 2002년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팀 막내로 뛰어난 실력과 못 말리는 쇼맨십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축구선수 이천수에 관심이 쏠렸다.

​이천수 와이프 부인 아내 직업 심하은 프로필

특히 이천수는 2012년 미모의 아내인 모델 출신 교수 심하은과 결혼하면서 이목을 모았다. 당시 두 사람은 혼전임신으로 결혼식보다 혼인신고를 먼저 올린 후 슬하에 딸 1명을 두게됐다.

지난 2016년 방송된 MBN '사돈끼리'에서 이천수는 혼인신고 4년 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된 이유에 대해 "당시 그라운드 복귀 문제 때문에 결혼식을 미뤘는데, 어느덧 4년이 지났다. 저 역시 딸 가진 부모가 되고 보니 이제야 장인어른, 장모님의 마음이 더 이해가 된다. 예쁘게 자란 딸이 결혼식도 안 하고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 마음이 어떻겠냐. 큰 불효에 너무 죄송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천수 아내 심하은은 "엄마가 목사님이시고 아버지도 너무 무서운 존재라서 혼전 임신 사실을 알리기 힘들었다. 너무 미안한 마음 뿐"이라며 힘들었던 당시를 떠올렸다.

한편 이천수는 2002년 울산 현대 축구단 입단으로 데뷔 후 현재 인천유나이티드 전력강화실장 겸 방송인으로 활동중이다.

축구선수 출신 방송인 이천수가 쌍둥이 자녀 100일을 축하했다.

이천수는 4월 19일 개인 SNS에 쌍둥이 아들 태강 군, 딸 주율 양 100일상 영상, 사진을 게재했다.

이천수는 "우리 둥이 태강 주율 100일 축하해 사랑해. 오늘 우리 둥이 최고로 이뻤어 고마워. 100일 준비때문에 고생한 하은이도 고생했어. 고맙고 사랑해. 동생들 때문에 오늘은 좀 밀린 주은이도 이해해줘요 고맙고 사랑해"라며 가족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천수 결혼 한편 이천수는 지난 2013년 결혼해 이천수 자녀 자식 아이 아기 슬하에 1녀, 남녀 쌍둥이를 두고있다.(이천수와 쌍둥이 붕어빵 귀욥+_+)

이천수 집 아파트 위치 어디 동네 주소 사는곳 평수 가격 매매가 전세가 이사한집 새집

이천수가 이사한 집은 청라 국제도시에 위치한 한 아파트로 84평 규모의 펜트하우스다. 네이버 부동산에 따르면 20층 기준 펜트하우스는 약 84평(278m²) 크기로, 평당 1,500~1,700만 원 수준인 것으로 확인된다. 추정가는 대략 12~13억 원이다.

이천수 인스타그램 주소

https://www.instagram.com/2000su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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