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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스 2023.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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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해설가 레슬링선수 심권호 프로필

심권호 나이 키 학력 고향 몸무게 가족관계

출생: 1972년 10월 12일 (47세), 대한민국

키: 160cm

체중: 54kg

방송: 아홉수 소년

가족

부모님 부모

어머니 아버지 심귀남, 이화순

배우자 결혼 와이프 여부 미혼

자녀 없음

학력: 한국체육대학교, 서울체육고등학교, 성남수정초등학교, 성남문원중학교

이름

심권호(沈權虎, Sim Kwonho)

출생

1972년 10월 12일(47세), 경기도 성남시

학력

수정초등학교

성남문원중학교

서울체육고등학교

한국체육대학교

신체

157cm1, 58kg

종목

레슬링

체급

그레코로만형 -48kg → -54kg

별명

작은 거인

아이큐

145

심권호(沈權虎1, 1972년 10월 12일 ~ )는 대한민국의 전직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선수이다. 현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장으로 재직중이다.1985년 경기도 성남문원중학교 2학년 때부터 레슬링을 시작, 1986년 중학교 3학년 때에 경기도 소년체전 사상 최초로 레슬링 금메달을 안겨주었고,3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때에는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주었다.3 1996년과 2000년 올림픽 레슬링에서 각각 금메달을 획득, 단체 종목을 제외하면, 대한민국 하계 올림픽 사상 최초, 대한민국 하계 올림픽 남자 선수 사상 최초로 올림픽 2연패를 기록하였다. 또한, 그레코로만형 48kg급과 54kg급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 대한민국 올림픽 사상 최초로 2체급 을 석권하였다.3 또한, 대한민국 최초로,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 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모두 제패한 그랜드 슬램을 체급을 달리하여 두 번 달성하였다.37 2001년 최고등급(1등급) 체육훈장인 청룡장을 수훈하였다.

2004년 선수 은퇴하며 레슬링 코치를 맡았고, 2004년 하계 올림픽과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 SBS 레슬링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 첫 해설 때는 솔직하고 소탈한 해설로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어 '심권호 어록' 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2008년 해설 때는 막말 해설로 일부 언론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올림픽조직위원회 선정 레슬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위례사업본부 부장으로 재직 중이며, KBS 출발 드림팀 시즌2 등 다양한 방송활동도 병행하고 있다.12 또한, 대한레슬링협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4년 9월 국제레슬링연맹(FILA) 선정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이며, 그레코로만형 선수로는 아시아 최초이다.

레슬링 경량급의 전설적인 선수이다. 그레코 로만형에서 48kg과 54kg 두체급 올림픽 금메달을 비롯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다. 선수 이후에는 코치를 잠시 역임하다 해설가로 나름대로 명성을 날렸으며, 현재는 선수시절 오랫동안 소속이던 한국토지주택공사에 근무하며 간간이 방송에 출연하고있다.

소년체전부터 고등학교까지 전관왕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으며, 서울체육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체육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자유형 선수였지만, 자유형이 자기와 맞지 않다고 생각해 그레코로만형으로 전향했다.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자신의 체급인 -48kg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국제대회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1991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권덕용에게 밀려 바르셀로나행이 좌절되었다.

하지만 권덕용이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하여 예선에서 탈락한 후, 그의 자리를 밀어내고 1993년부터 국가대표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1993년 세계선수권 동메달로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린 후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5 세계 선수권 금메달, 1995년과 1996 아시아선수권 대회 우승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며 일찌감치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심권호는 대진이 최악으로 걸린다. 2회전에서 라이벌인 러시아 선수를 만나게 되었다. 이 경기에서 연장 접전 끝에 2:1로 승리한 후 그 뒤로는 이렇다 할 위기 없이 결승까지 순항했고,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4:0으로 승리하면서 마침내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올림픽에서 따낸 100번째 메달의 주인공이자, 애틀랜타 올림픽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워낙 압도적인 기술과 경기 운영을 보였기 때문에 앞으로도 순항할 줄 알았는데,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48kg급이 애틀랜타 올림픽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다만 알아둬야 될 것이 이것이 결코 심권호 때문에 사라진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체급을 줄여가는 과정에 심권호가 걸린 것일 뿐이다.

졸지에 레슬링 최경량급이 -54kg이 되면서 체중을 한 번에 6kg을 불려야 했고, 그 결과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3 그러나 체급에 적응한 후 다시 이 체급의 절대 강자로 부상하게 된다. 후배인 하태연과의4 치열한 승부를 거치면서 국가대표팀에서 살아남는 데 성공한 심권호는 -48kg에서 그랬듯이 또 다시 -54kg에서도 같은 코스를 밟아나가기 시작했다.

4년 전에 비해 원숙해졌으며, 8강전에서 한 번 고비를 맞아 독일 선수와의 경기에서 5:4 역전승을 따냈다. 4강전에서 북한의 강영균을 10-0 테크니컬 폴로 눌러버렸고 결승에서는 당시 -54kg 세계 최강으로 여겨지던 쿠바의 리바스를 맞아 초반 상대의 방심을 틈타 8-0을 만들고 남은 4분 동안 끈질기게 버티며 우승을 차지했다.5 훗날 IOC 인터뷰에서 이 당시 상황을 회고하기를 10:0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8:0이라서 남은 4분을 필사적으로 버텼다고 한다. 이로써 서로 다른 2개의 경량급 체급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뤘다.

그리고 재미난 사실은 심권호가 1996년 LF급 금메달-00년 F급 금메달을 목에 걸 때 불가리아 출신의 아르만 나자라얀이란 선수가 1996년도 F급 금메달-2000년도 B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사실. (나자라얀은 올림픽 2연패는 맞지만 두체급 그랜드 슬래머는 아니다)

모든 것을 다 이뤘다면서 현역에서 잠시 은퇴해서 코치로 생활하다가,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컴백했다. 대표선발전 1차 대회에서는 후배에게 졌지만, 2차 대회에서는 결승까지 오르면서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과시했으나 협회가 이미 대표를 결정하는 바람에 올림픽 출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심권호 자신은 3연패라는 대업7을 이루기 위해 최후의 노력을 다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은퇴하게 되었다. 사실 심권호가 실력으로는 한 번 해볼 만했지만, 협회도 그렇고 레슬링계 내부에서 "그 정도 했으면 이제 후배에게 좀 양보하지?"라는 심리가 없지 않았다고 한다.

레슬링 선수로서의 심권호는 한 마디로 굉장히 영리하고 기술에 능한 선수였다. 잠시 방심한 척 틈을 보이다가 상대가 미끼를 물면 바로 공세에 돌입해서 가볍게 상대를 제압하는 힘을 가진 선수. 워낙 기술이 다양해서 상황에 맞춰서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10 다른 선수들이 하나의 주무기를 가졌다면 심권호의 레파토리는 5~6가지 정도 되었다. 여기에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체급의 정상에 군림한 보기 드문 자기 관리까지 겹치면서 전 세계 레슬링 최경량급의 레전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은퇴 후에 2004 아테네 올림픽부터 해설자로 데뷔했다. 경기를 분석하고 전달하기보다는 상황에 맞춰 같이 흥분하며 코치마냥 선수에게 지시를 내리는 듯한 해설을 하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렸는데,11 그나마 아테네 올림픽 당시에는 재미있는 해설이라는 의견도 많았고 정지현이 금메달을 따면서 분위기가 좋았던 것도 있었기에 그럭저럭 무난하게 넘어갔다.

그러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그의 해설 방식은 결국 다시 한 번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야이씨 바보야!"를 비롯한 정제되지 않은 멘트들로 많은 비판을 받았고, 결국 이로 인해 공개적으로 사과방송도 해야 했다. 그 때만 생각하면 말도 못할 정도로 창피하다고 했다. 사실, 그럭저럭 입담도 좋고 예능감도 있는데다 해설도 잘하는 편이지만 흥분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정제되지 않은 멘트를 사용해서 망가진 케이스로 봐야 한다.

그래도 말주변도 좋고 레슬링계의 전설이기 때문에 자주 해설 외에도 예능 프로그램에도 반 고정으로 나왔다. 특히 몸을 쓰는 예능에서는 거의 100% 단골. 한 번은 어느 예능 프로그램 몸 쓰는 코너에서 쇠봉으로 만든 훌라후프를 출연자 중에 유일하게 돌리기도 했다. 코치로도 활동했지만 코치보다는 예능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출발 드림팀에 많이 나왔고 2012년에는 채널A의 불멸의 국가대표에 출연하기도 했다.

주택공사 소속으로 오래도록 뛰었다가 LH의 코치를 잠시 역임했다. 2012년 현재는 코치 대신에 일반 직장인이 되었다. 보직은 신도시 보상팀 팀장. 유명한 레슬러가 보상을 담당해서 그런지 험한 보상팀 임무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마찰은 없다고 한다. 보상 논의를 위해 험악하게 기다리고 있던 입주자들도 심권호가 나타나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술한잔 하며 좋게 마무리가 된다고. 2017년 현재는 인천본부 사회공헌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사회공헌 업무로 타기관에 협의가거나 임대주택 단지에 나타나면 바로 아이돌 수준의 환호가 돌아온다고 한다.

이미 알코올 의존증 수준이고 뇌와 간이 많이 망가졌다는 충격적인 모습이 나왔다.2019년 뭉쳐야 찬다에 '작은 거인'이라는 닉네임으로 잠시 출연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돼서 하차했다. LH 직장과의 병행이 어려워서 잠정 하차라고 한다.

심권호 올림픽

금메달

1996 애틀랜타

-48kg

금메달

2000 시드니

-54kg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5 프라하

-48kg

금메달

1998 예블레

-54kg

동메달

1993 스톡홀름

-48kg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4 히로시마

-48kg

금메달

1998 방콕

-54kg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1995 마닐라

-48kg

금메달

1996 샤오산

-48kg

금메달

1999 타슈켄트

-54kg

은메달

1993 히로시마

-48kg

아직 미혼이다. 여담이지만 여자친구를 한 번도 못 사귀어 봤다는 소문이 있다. 위에서 서술한 흥분 해설도 성격이 지나치게 순수하고 멋없다 보니 발생한 것이라 한다. 그의 혼자 사는 싱글라이프가 화제가 되었는데, 그의 무심한 듯 시크한 태도에 감탄 및 웃픈 감정을 표하고 그를 구출할 처자가 어디 없냐는 네티즌이 대부분이다.게다가 LH공사의 부장이다.레슬링 종목에 남긴 업적에 비해 은퇴후 삶이 너무도 조용하고 소박한데, 이건 본인이 한참 운동할 때는 계체량이다 뭐다 하도 빡세게 살다보니, 좀 백수처럼 놀고 먹고 사는 게 소원이라서 지금 이렇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IQ가 145라고 한다.

2013년, IOC에서 2020년 올림픽부터 레슬링을 잠정 퇴출하겠다고 발표하자 아쉬움을 토로했다. 다행히도 레슬링이 올림픽 종목으로 잔류하면서 한숨 돌렸을 듯하다.2014년, 드디어 국제레슬링연맹에서 발표하는 레슬링 명예의 전당에 한국인 최초로 입회하는 영광을 안았다.엄청난 실적을 쌓은 레전드인 건 사실이지만, 실제 업적 이상으로 부풀려진 정보가 떠돌기도 한다. 2체급 그랜드슬램이란 엄청난 실적을 쌓았지만, 국제대회 패배도 가끔 있었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국내 선수에게 패배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국제대회 무패의 흠잡을 데 없는 무패의 챔프로 잘못된 소문이 돌고 있다. 심권호 선수의 독주로 48kg이 폐지됐다는 어처구니 없는 낭설도 돌고 있는데, 실은 여자 레슬링의 창설과 올림픽 규모 축소화가 맞물려 체급을 줄이는 과정에서 없어진 것에 불과했다. IOC는 국가별 종목 쿼터제를 줄 정도로 올림픽 비대화를 막느라 대단히 골몰하고 있다. 실례로 태권도는 8체급이 벌어지지만, 국가별로 4개 체급, 역도도 8체급 중 국가별로 5체급까지 출전가능하다.

2016년 우리동네 예체능 리우 올림픽 출전기원 레슬링 특집에서 정지현과 박은철12과 같이 출연했다. 여기에서 정지현과 스폐셜 매치를 벌여서 패배했다. 왜 졌냐고 할 수도있는데 아무리 전설이던 그도 나이가 벌써 불혹이 넘었다.

심권호 건강 알콜중독

2017년 방송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알코올 의존증 + 알코올성 간염 진단을 받았다. 일주일에 3~4회씩 3병 정도를 마셨다고 한다. 연애 문제와 함께 선수 생활 당시부터 도전자들 사이에서 느낀 외로움이 알코올 중독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결국 건강이 크게 상했다고 한다.

신태용 감독이 K리그 첫 승을 거둘 때 세리머니로 맥콜을 뿌렸다. 마침 신태용 감독은 레슬링 유니폼을 입고 나와 심권호와 함께 파테르 퍼포먼스를 했다.2019년 6월 13일에 첫 방송을 한 JTBC 뭉쳐야 찬다 - 전설들의 조기축구의 '어쩌다FC' 멤버로 출연 중이었지만, 2019년 9월 19일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잠정하차했다. 위의 건강문제와 관련하여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네이버 실검 1위를 차지했지만, 심권호 측근의 말로는 개인사정 때문에 잠시 쉬게 된 것을 기자들이 부풀린 것이라고 한다.

심권호 연금 체육 재산 수입 수익 연봉 빌딩

레슬링 국가대표 심권호가 지금까지 받은 연금을 고백해 눈길을 끌었다.지난 13일 방송된 E채널 예능프로그램 '찐어른 미팅: 사랑의 재개발'(이하 '사랑의 재개발') 7회에서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심권호가 미팅 출연자로 등장했다.

이날 심권호는 자신의 메달 연금 액수를 매력으로 어필했다. '23살부터 지금까지 받은 메달 연금이 얼마일까'라는 프로필을 내세운 것.

심권호는 "상한제가 없었을 때 연금을 월 300만원 이상 받았다. 학생 때 부터 연금을 받았다"라고 고백했다. 지금까지 받은 연금만 최소 10억원 이상이다.서포터로 나온 신진식 감독은 "월급보다 연금을 더 받았다. (거기에) 최근까지 공사 부장으로 근무했다. 연봉이 상당했다. 다 좋은데 여자만 없다"라고 말을 더했다.심권호 현재 지업 근황은 선수시설 몸담던 주택공사가 LH로 합병된 뒤, 부장 직함을 달고 재직 중이다. 심권호가 세계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포상 승진이 이루어졌으며 LH공사 부장의 연봉은 8000 만원에서 1억원 사이로 알려졌다.심권호는 과거 방송에 출연해 "어머니가 재테크를 굉장히 잘 해 빌딩이 2채가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심권호 결혼 부인 아내 와이프 여자친구 전여친

심권호는 21세기 숫총각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20년 동안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말해 출연진들을 놀라게 했다.

심권호는 "어쩔 수가 없었다. 2000년 이후 만난 여자가 없었다. 2000년도에 잘 될 뻔한 사람이 있었는데 올림픽을 준비를 하느라고 레슬링에 집중하다 보니"라며 "여자하고 호프집에 가서 대화한 게 23살이 처음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심권호는 첫인상부터 호감을 가졌던 오드리에게 밀실 데이트를 신청했다. 3분이 끝나고 영화관 데이트를 가지는 못했지만 심권호는 오드리와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은 차 한잔 사고 싶다는 심권호 말에 의해 근교 데이트를 이어갔다. 심권호의 연애는 열린 결말로 끝났다.

심권호가 '뭉쳐야 찬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에 대해 "개인적인 사정일 뿐,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라고 밝혔다.

심권호는 20일 한경닷컴과의 전화 통화에서 "새벽부터 전화를 너무 많이 받았다. 갑자기 방송에 나오지 않아 걱정을 하시는데 건강은 너무 튼튼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개인적인 일정 등의 문제로 당분간 출연이 어려워진 것"이라면서 "건강 문제가 아니니 예전에 방송에서 비쳤던 모습으로 추측하지는 않으셨으면 한다. 지금도 등산은 물론, 소속 축구팀인 일레븐FC에 매주 축구를 하러 간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심권호는 "축구 실력도 많이 늘었다. 매주 게임을 하니까 실력이 상위권"이라며 "얼굴도 축구를 많이 해서 탄 거다. 이번 주 토요일에도 축구를 하러 갈 예정"이라면서 밝게 웃었다.

앞서 지난 19일 심권호는 출연 중이었던 JTBC '뭉쳐야 찬다'에 등장하지 않아 많은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샀다. 방송에서 안정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심권호가 당분간 휴식기를 갖는 걸로 했다. 선수를 보강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 되면 우리끼리 해야 한다"라고 했다.

심권호는 독보적인 기술로 아시안게임은 물론, 세계선수권, 올림픽 등을 제패하며 세계 무대를 누빈 저력의 사나이다. 48kg, 54kg 두 체급에서 모두 그랜드슬램을 달성, '작은 거인'이라 불리는 레슬링계 살아있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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