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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나이 가수 와이프 부인 아내 이경은 결혼 자녀 가족 군대 프로필

by 제로스 2023.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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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독 가수 김현철 프로필

김현철 나이 키 학력 고향 몸무게 혈액형 가족관계 종교 데뷔 소속사

출생: 1969년 6월 14일 (50세), 서울특별시

키: 172cm

배우자: 이경은 (2002년–)

앨범: 그대 안의 블루, 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 Talk About Love

학력: 홍익대학교, 영동고등학교, 언북중학교, 서울청담초등학교

​이름

김현철(金玄澈)

출생

1969년 6월 14일 (50세)

서울특별시 중구

신체

173cm, 70kg, B형

가족

배우자 이경은, 아들 김이안, 김정안

종교

개신교

학력

리라초등학교 → 서울청담초등학교

언북중학교

서울영동고등학교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

데뷔

1989년 정규 1집 '춘천 가는 기차'

소속

Fe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그룹

주식회사 (2007)

장르

팝, 발라드

직업

가수, 싱어송라이터, 교수2, 라디오 DJ3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가수, 라디오 DJ, MC. 1969년 6월 14일생으로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과 2014년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드러난다. 1996년 5집 <일생을> 활동 때부터 서서히 살이 찌기 시작했지만 현재는 살이 빠진 상태. 판정단으로 출연 중인 복면가왕을 보면 알 수 있다. 참고로 윤상과 김현철은 꽤 오래 된 절친이다. 사실 호적상 윤상이 나이가 한 살 더 많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막역히 지내 현재도 그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1남 1녀 중 첫째로 아버지가 대통령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자금 담당으로 근무하게 되어 김현철은 리라초등학교 1학년 재학 중에 온 가족이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하여, 초등학생 시절의 대부분을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서 보냈다. 정확히는 2학년부터 6학년까지 5년간 체류했다고 한다.

귀국 후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으로 이사를 와서 서울청담초등학교에서 학교 생활을 이어 간다. 그의 1집 수록곡인 '동네'라는 노래가 그의 유년시절 당시 택지개발을 앞두고 있던 압구정의 시골같은 옛 모습을 회상하며 만든 곡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작 중간에 해당 곡의 제목도 '압구정동'으로 될 뻔 했을 정도였다고.

당시 음악 말고도 축구를 유별나게 좋아해 일화가 몇 가지 있다. 뚱뚱해서 축구 시합에 끼지 못했던 친구를 두고 "괜찮아. 얘는 골키퍼를 보면 다 함께 놀 수 있잖아!"라 친구들을 설득해 함께 축구를 했다고 한다5. 또 축구하다가 시비가 붙어서 싸움이 났는데, 상대방이 학교 짱이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있다.

하여간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찬양 봉사 활동을 하며 음악과 가까이 자랐다. 본인 말로는 피아노 외에도 바이올린도 6살 때부터 5년간 배웠다고.

청담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언북중학교를 거쳐 영동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그의 음악 사랑은 계속되었고, 엄마에게 기타를 파손당하는 일까지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공부도 제법 잘 했다고 한다. 학창 시절 중 윤상을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전태관이라는 대선배들에게 연결시켜주는 등 꽤 교류가 있었다. 당시 윤상은 그 동네 독서실 멤버의 베이시스트 중 가장 곱상한 외모여서 뽑히게 되었다고... 하지만 끝엔 탈출

부모님은6 그에게 안정적인 진로가 보장되는 의대를 권했고, 그걸 수도 없이 들은 그도 이를 당연시 여겨 고3 때 열심히 공부해서 고려대 의대에 지원했지만 아깝게 낙방한 뒤 재수했다.

고교 2학년이었던 1986년엔 친구들과 함께 '아침향기'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멤버들의 자작곡들을 모은 비공식 노래집도 만들고 자작곡 발표회 형식의 콘서트도 열었다. 밴드 '아침향기'는 김현철을 비롯하여 강승식, 강준모, 박용근, 윤필현 5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청소년들의 밴드라면 선망의 대상이었던 헤비메탈이나 해외 팝송을 커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이하게도 이들의 음악은 포크 발라드 성격이 강했으며 (밴드 구성에 드럼이 없었음), 대부분의 레퍼토리를 자신들의 자작곡으로 구성하는 등 나름의 음악적 색체와 창작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영동고 시절 동창생들에 의하면, 선생님들이 "저렇게 공부를 안 하고 잘하는 애 처음 봤다"고 말했다고. 재수학원에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어린이날에 함께 경춘선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놀러 갔는데, 이날의 기억이 훗날 〈춘천 가는 기차〉의 모티브가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재수 생활도 망쳤는지, 전기 모집에서 연세대 의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졌고, 후기 모집에서는 안정하향지원을 하여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에 합격하게 된다7. 그 이후 한동안 그는 연고대 두 학교만 생각하면 이를 벅벅 간다고 한다.

대학 합격자 발표 날 고모에게 김수철의 공연 티켓을 받아 관람하던 중, 후반부에 게스트로 출연한 그룹 '어떤날'의 공연까지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그 그룹의 베이시스트인 조동익을 만나게 된다. 그는 말을 걸까 말까 고민했는데, 어느새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고 한다. 당황한 조동익은 전화번호를 남긴 뒤 연락하라고 했다. 그는 바로 전화를 걸기 뭐해 1달 뒤에 연락해 그의 집을 찾아갔으며 그런 김현철에게 조동익의 부인은 삼겹살을 구워주었다.

 

 

그렇게 조동익의 집을 자주 놀러가던 어느 날, 김현철은 조동익의 집에 있던 <오페라>8의 악보를 손 봐주고 가 버렸다. 다음 날 자고 일어난 조동익은 그 악보를 보고 이거 누가 그렸어?라며 김현철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오라고 한 뒤, 그를 역삼동의 카페 「심플라이프」에 데려갔다. 그 카페는 가수 이장희의 전 부인이 운영하던 곳으로 당시 많은 가수들이 자주 찾았는데, 전인권, 최성원, 박학기 등을 만나 그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그들에게 "얘 재작년에 죽은 재하랑 비슷하지 않냐?"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이후 이들의 도움으로 그의 곡과 앨범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온 것이 <우리노래 전시회> 3집. 당시 그는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 1학년 신입생이었지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음악에 완전히 빠져 있었고 9 당연히 학교 생활은 뒷전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학교를 갔더니 동기들이 문제 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라고 라디오 프로에서 술회한 적이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졸업은 했다.

이후 그의 재능을 알아본 동아기획의 김영 사장은 보자마자 골프 가방에 돈을 현찰로 담아서 가져가라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러나 당시 김현철은 정 붙이지 못하고 학교 생활을 망쳐 버린 홍익대를 때려치우고 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기에10 이를 거부하게 된다. 21세의 가수 지망생에게 뻰찌를 맞아 자존심이 약간 상한 김영 사장은 김현철을 다시 만났을 때, 그 골프가방에 현금 3,000만 원을 미리 넣어 두었다. 김현철은 바로 동아기획과 계약하게 된다.

이 앨범이 바로 자신이 직접 앨범 전체를 작사, 작곡, 프로듀스하여 1989년에 발표한 1집 "김현철 Vol.1"이다. 이 앨범에 수록된 〈춘천 가는 기차〉가 상당한 히트를 쳤다. 또한 동 앨범에 수록된 〈아침 향기〉12"라는 곡은 고등학교 시절 만든 곡을 다듬어서 수록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동반자였던 조동익도 받쳐 주는 등 세션 진영도 화려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꽤 이른 나이에 싱어송라이터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김현철의 1집과 2집은 비록 당시에는 아는 이들만 아는 앨범이었지만, 소년적인 감성을 세련된 퓨전 재즈 양식에 담아낸 명반으로 평가받았다.

데뷔 앨범은 대한민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17위에 선정되는 등 당시의 명문 레이블인 동아기획의 마지막 적자로 평가받으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인기를 누렸던 1집 활동을 마친 그는 1990년 5월에 콘서트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던 도중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뇌출혈 등으로 2년 동안의 공백기를 가졌으며, 이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에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19일 방송된 MBC ‘사람이 좋다’에서는 가수 김현철이 출연했다. 김현철은 1989년 벼락처럼 등장한 천재로불리며 등장한 싱어송라이터다. 싱어송라이터인 김현철은 작년부터 시티팝 열풍이 불면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김현철은 만 스무 살의 나이에 직접 작곡, 작사한 ‘춘천 가는 기차’를 발표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제2의 유재하’라는 별명을 얻으며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김현철은 이제 데뷔 31년이 된 가수이자 국가대표 급 DJ로 불리며 MBC 라디오를 진행하며 활약하고 있다. 김현철은 인생 최초로 온라인 콘서트도전을 앞두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복면가왕>에 출연하면서 예능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현철은 데뷔 31년을 맞은 우리나라최고의 뮤지션 중 한 명이다. 그는 1989년 직접 작사·작곡과 제작까지 맡은 <김현철 1집>을 발표하며 등장했다. 1집은 대한민국 100대 명반 중 12위에 오르며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김현철의 음악이 탄생한 마음속 고향은 서울의 압구정동이다. 그저 노래가 좋았던 청년 김현철은 압구정동에서 운명적인 인연을 만났다. 이날 방송에서는 김현철이 1집을 발표하기 전, 고등학생 밴드로 활동하며 만든 음악이 처음으로 공개되기도했다. 무려 30년 전에 제작된 카세트테이프에서 고등학생 김현철이 부르는 풋풋하고 싱그러운 노래가 기분좋은 미소를 자아냈다.

2020년은 DJ 김현철에게 매우 뜻 깊은 한해이다. MBC 라디오를 진행한 지 만 1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김현철은 1994년 <밤의 디스크쇼>를 시작으로 <오후의 발견>, <김현철의 골든디스크>까지 청취자의큰 사랑을 받아왔다. 올해 그는 MBC 라디오를 10년 동안 진행한 DJ에게 주어지는 ‘브론즈마우스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김현철은 DJ를 맡은 후 단 한 번도 지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MBC 라디오국 안에서는 ‘부장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라고 한다. 김현철은 “그때는 라디오가 TV보다 더 힘이 센 적이 있었어요. 저 혼자 방에 있을 때 노래를 재생하면서 ‘다음 노래는 몇 년도에 누가 낸 노래입니다’하고 혼자 따라했었다”고 말했다.

이현우, 윤상, 윤종신과 함께 연예계의 ‘노총각 4인방’으로 불리던 김현철은 2002년 결혼하며 슬하에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자택과 개인 작업실을 공개했다. 따뜻한 봄날, 결혼 19년을 맞이한 김현철 부부의 단란한 일상을 들여다봤다. 굴곡이 없을 것 같은 김현철의 음악 인생에도 두 차례 큰 위기가 존재했다. 1집이 대성공을 거둔 다음 해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교통사고로 이어졌다.

재활을 거쳐서 다시 무대로 돌아오기까지는 2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복귀 후 김현철의 대표곡인 ‘달의 몰락’이 실린 3집 앨범은 약 8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또다시 2006년부터 2019년까지 13년 동안그는 이유모를 슬럼프를 겪으며 음악작업을 할 수 없었다. 소유한 모든 악기를 팔았고 새로운 곡을 쓸 수 없었다. 가혹한 슬럼프 끝에 지난 해 데뷔 30주년을 맞아 김현철은 10집 앨범을 발표했다.

공연계는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극심한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김현철은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특별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브론즈마우스상’의 수상을 기념하는 콘서트는 시간과 장소의 장벽 없이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팬들을 찾아간다. 데뷔 31년을 맞은 그가 준비한 온라인 콘서트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김현철은 “제가 가수 30년, DJ 10년이 됐는데요. 이게 시작이라고 생각을 한다. 건강 닿는 데까지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천재로 불리며 벼락처럼 등장해 이제 데뷔 31년이 된 싱어송라이터 김현철의 음악인생이 방송된다.

김현철은 만 스무 살의 나이에 직접 작곡, 작사한 ‘춘천 가는 기차’를 발표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김현철 1집’ 발표 이후 ‘제2의 유재하’라는 별명을 얻으며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가수 김현철은 데뷔 후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수와 DJ 등 활동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굴곡 없을 것 같은 김현철의 음악 인생에도 큰 위기가 존재했다. 1집이 대성공을 거둔 다음 해 그는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교통사고로 이어졌다. 재활을 거쳐서 다시 무대로 돌아오기까지는 2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복귀 후 김현철의 대표곡인 ‘달의 몰락’이 실린 3집 앨범은 약 8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또다시 2006년부터 2019년까지 13년 동안 그는 이유모를 슬럼프를 겪으며 음악작업을 할 수 없었다. 가혹한 슬럼프 끝에 지난 해 데뷔 30주년을 맞아 김현철은 10집 앨범을 발표했다. 13년의 세월이 흐른 후, 위기를 극복하고 그가 복귀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코로나19로 인해 극심한 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공연예술무대. 김현철은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특별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MBC 라디오를 10년 동안 진행한 DJ에게 주는 ‘브론즈마우스상’의 수상을 기념하는 콘서트는 시간과 장소의 장벽 없이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팬들을 찾아간다.

가수 김현철이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를 고백했다.

19일 방송된 MBC ‘사람이 좋다’에서는 김현철이 출연해 아내에게 프러포즈한 일화를 전했다.

이날 김현철은 집으로 제작진을 초대했다. 제작진은 아내 이경은의 미모에 “배우 같다”고 말해 김현철을 미소 짓게 했다.

김현철은 “제가 우리집에서는 제일 작다. 아들들 키가 178cm, 176cm다”고 말했다. 김현철은 2002년 지금의 부인 발레리나 이경은 씨와 결혼에 골인했다.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이경은 씨는 “제가 결혼하고 처음 배운 음식도 남편한테 배웠다. 칼질도 저보다 훨씬 잘하고 저희 아버님이 요리를 굉장히 잘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잘하더라”라며 “저희 아이들도 아빠가 요리를 하니까 같이 요리를 한다. 잘 얻어먹고 있다”고 남편에 대한 남다른 자랑을 전했다.

김현철은 “삼계탕 먹으면서 프러포즈했다. 먹다가 ‘이게 뭐야 반지네’ 그랬다. 삼계탕에 반지를 넣었는데 삐쳐서 안 먹더라. 반지는 찾았다. 삼계탕 식은 기름에 범벅이 돼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가수 김현철은 지난 1989년 정규 1집 '춘천 가는 기차'로 데뷔했다. 현재 ‘복면가왕’을 비롯해 다양한 방송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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