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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구민 태영호 나이 프로필 와이프 부인 아내 오혜선 결혼 자녀 가족 재산

by 제로스 2023.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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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태구민 태영호 프로필

서울 강남구갑 국회의원 후보 행정동

정당

미래통합당

출생

1964년 6월 24일 (55세)

직업

외교정책 전문가

학력

평양 국제관계대학 국제관계과 졸업(1980.4.~1984.8.)

경력

(전)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전)대한민국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관련

선거공보

사이트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태영호 태구민 나이 학력 고향 가족관계 결혼 부인 아내 오혜선 자녀 아들 국회의원

출생: 1962년 7월 25일 (57세), 북한 평양

배우자: 오혜선 (1989년–)

학력: 평양외국어대학

유명한 이유: 망명

저서: 삼 층 서기실 의 암호

자녀: 태금혁

출생

1962년 7월 25일3 (58세)

평양직할시 중구역 종로동

본관

협계 태씨

학력

베이징외국어대학부속중고등학교

평양국제관계대학 (국제관계학 / 학사)4

베이징외국어대학 (영문학 / 학사)

국민대학교 법무대학원 (통일융합법무전공 / 석사과정)5

종교

무종교(국가 무신론) → 개신교(침례회)6

가족 관계

태형길(부), 김명덕(모), 2남 1녀 중 둘째7

배우자

오혜선8

자녀

슬하 2남9

직업

외교관 (1993~2016 / 해임10)

연구기관인 (2016~2018 / 퇴직)

정치인 (2020~ )

소속 정당

파일:United Future Party_white.png

지역구

서울 강남구 갑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21

소속 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경력

주덴마크북한대사관 서기관

주스웨덴북한대사관 서기관

주영국북한대사관 공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특임전략자문위원11

남북함께시민연대12 상임대표

태영호(太永浩, 1962년 7월 25일1 ~ )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으로 근무하다가 대한민국에 망명한 탈북민이다. 대한민국 주민등록상 이름은 태구민(太救民)으로, '북한 주민들(民)을 구(救)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현재 본명으로 다시 개명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평양에서 출생하였지만 지난날 한때 함경북도 명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는 태형길로 평양건설건재대학 시공강좌 교원이었으며, 어머니는 김명덕으로 서문인민학교 교원이었다. 그의 조부는 태동식으로 그는 아직 인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많이 생활하였다. 고등중학교 재학 중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건너가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다. 당시 그와 학업에 함께한 이들이 오진우 조선 인민무력부 부장의 자녀들, 허담 조선로동당 대남담당 비서장의 자녀들 등 북한 고위간부들의 자녀들이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5년제 평양국제관계대학을 나온 그는 북조선 외무성 8국에 배치되었다. 태영호는 곧바로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총비서의 전담통역 후보인 덴마크어 1호 양성 통역관으로 선발돼 덴마크 유학길에 올랐다.

1993년부터 덴마크 주재 북한 대사관 예하 서기관으로 활동하다가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웨덴 생활은 길지 않았고 곧 귀국해 EU 담당 과장을 거쳐 영국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으로 파견되어 3년 정도 근무하였다.

2015년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이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의 런던 공연장을 찾았을 때 동행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망명

주영 공사로 있던 중 2016년 8월 17일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것이 확인되었다. 공사는 대사 다음 서열로, 탈북한 외교관 중에서는 최고위급이다. 대한민국 통일부에서는 이름을 태용호라고 밝혔으나, 이후 태영호가 본명이고, 태용호는 가명이라고 정정했다.2018년 10월에는 대한민국의 보수주의 변호사 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이 제정한 제1회 북한인권상을 수상했다.

2018년 11월 7일에는 대한민국의 대학생 친북성향 대학생 단체가 태영호 전 공사에게 ‘차라리 가만히 있으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고 태 전 공사의 강연이 경호상의 문제로 취소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친북 성향 단체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은 6일 태 전 공사에게 보낸 이메일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공개된 이메일에서 이 단체는 “가만히 있으라”며 “통일에 방해되는 행동을 당장 멈추라”고 경고했다. 이 단체 회원들은 8월 ‘태영호·박상학 체포 결사대 감옥행’을 결성해 선전 활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20년 2월,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여 지역구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알렸다. 미래통합당 공천 결과 서울 강남구 갑에 전략공천되면서 21대 총선에 나서게 되었다.

그의 배우자는 오혜선이며, 부인 오혜선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장남은 영국 런던 대학교 공중보건경제학과를 중퇴하였고, 차남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를 중퇴하였다. 이 외에도 그의 북한 친인척 관계로는 장조부 오백룡 조선 국방위원회 호위총국장과 처재종조부 오중흡 조선혁명군 예하 분대장과 처재종숙부 오극렬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과 처중부 오금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과 처숙부 오철산 조선로동당 중앙정치위원 등이 있다.

태병렬의 아들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으나, 그는 기자 회견에서 '같은 태씨 성을 가지고 있지만, 태병렬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였고, 아내 오혜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겸 호위총국장을 지낸 오백룡의 딸이라는 논란이 있었으나 오백룡의 손녀이며 오금철·오철산 형제의 조카딸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1962년 평양 출생. 본관은 협계이다. 주영 북한 공사로 근무하다가 북한 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탈북하여 2016년 8월에 한국에 입국하였다. 동년 12월에 주민등록을 하여 한국 국민이 되었다.

탈북 이전까지는 주영 북한 공사로 현학봉 대사에 이어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서열 2위였다. 1996년에 탈북한 잠비아 주재 북한 대사관 서기관이었던 현성일과 함께 북한 외무성에서 손꼽히는 유럽 전문가다. 또 대사관 내 당 책임자인 '세포비서'로, 외교관과 그 가족들의 사상교육 업무까지 관장해 왔다고 한다.

 

초기에는 언론에 '태용호'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지만 이는 영문 언론이 북한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태영호의 영문 이름을 간소화하여 표시하면서 일어난 혼동이었다. 북한은 한국과 다르게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기반을 둔 조선어의 라틴문자 표기법을 사용하는데, 이 방법에 따르면 한글 "영"은 "Yŏng"으로 쓴다. 그런데 신문에서 편의를 위하여 반달표를 생략하고 "Yong"으로 표기했고, 이를 대한민국에서 "용"으로 읽게 된 것이다. 과거에 김정은의 이름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도 한글 "은"을 조선어의 라틴문자 표기법에 따라 적은 "ŭn"을 단순하게 un으로 썼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김정운"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태씨가 생소한 한국인이 많을 텐데, 발해 대씨의 시조 대조영의 후손으로 북한 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에는 태씨네 집성촌이 존재한다. 아예 마을 자체에 대조영을 모신 사당이 존재한다.

망명 초기에는 그의 아버지가 항일 빨치산 1세대이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한 태병렬 인민군 대장이라고 알려졌으나, 국가정보원에 의해 태병렬의 아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거기에 2016년 12월 27일 통일부 출입 기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태병렬 인민군 대장쪽 집안은 아니라고 부정한 바 있다. 태영호의 집안은 엘리트 가문이 아니지만, 부인은 엘리트 가문 출신이다.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 오백룡의 집안이고, 아버지는 김일성정치대학 총장을 지낸 인민군 중장 오기수다. 하지만 오기수는 1990년대에 숙청되어 한직으로 쫓겨났다고 한다. 태영호 자신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장남인 큰할아버지와 달리 땅을 재대로 물려받지 못해 빈농으로 살았지만 북한군이 북중국경으로 후퇴할 때 대부분의 마을 당원들은 같이 후퇴하지 않았지만 태영호의 할아버지는 후퇴하고 돌아와 핵심계층으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항상 1-5등을 한 태영호는 출중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교관의 길을 걷는다.

열심히 노력한 덕에 고등중학교 재학 중 중국으로 건너가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고, 그 덕에 각종 외국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5년제 평양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되었다. 얼마 후 그는 곧바로 김정일 총비서의 전담통역 후보인 덴마크어 1호 양성통역으로 선발되어 덴마크 유학길에 올랐다.13

1993년부터 주 덴마크 대사관 서기관으로 활동하다가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북한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웨덴 생활은 길지 않았고 곧 귀국해 EU 담당 과장을 거쳐 2006년경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으로 파견되었다.

국제 외교무대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은 그가 40세인 200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과 유럽연합(EU)의 인권대화 때 대표단 단장으로 나서면서부터이다. 이때 그의 직책은 서구라파국(외무성 8국)에서 EU를 담당하는 과장 겸 구주국장 대리였다.

유럽과 런던 등지에서 북한의 상징체제와 김일성 · 김정일 우상화를 선전하는 등 북한의 홍보에 적극 앞장섰다.14 2015년 5월 김정철이 런던 에릭 클랩튼의 공연장을 찾았을 당시 수행하기도 했다.

2017년 태영호가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김정일 말기 때부터 북한 정권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정은이 승계하자 뭔가 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를 가졌지만 크게 실망했다고 증언했으며 몇년 간 탈북 준비를 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김정은이 승계하고 1~2년 정도 뒤에 탈북을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태영호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따르면 탈북의 가장 직접적 동기는 아들들의 강제귀국이었다. 북한의 해외파견근무자들은 자녀가 둘이면 하나는 반드시 북한에 두고 가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태영호는 그동안 갖은 핑계를 대며 두 아들을 데리고 해외근무를 했지만 이번만큼은 큰아들과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게 되자 탈북을 결심했다고 쓰고 있다.

 

북한 김정은 체제에 염증을 느낀 태영호는 가족들을 데리고 지난 7월 망명길에 올랐으며, 제3국 망명 신청을 하고 2016년 8월 17일 한국에 입국하게 된다. 10년 간의 영국 공사 활동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한국으로 탈북한 것이다. 그리고 12월에 있던 국회 정보위에서 체제에 대한 환멸감이 커져 귀순 결심을 굳혔다고 전했다.

귀순 소식이 보도되자 정부는 8월 17일 오전까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미 입국했지만 안전과 안보를 위해 일부러 공개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외신과 몇몇 기자들의 잘못된 로 인해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급하게 발표를 했다고 한다. 박근혜가 태영호의 탈북을 미리 알고 있어서 광복절 축사 때 주민 말고도 북한 당국 간부도 따로 언급했던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왜 탈북했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일단 북한 외교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영국 대사관에서 근무한 것으로 보아 황장엽과는 달리 권력투쟁에 밀려서 탈북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언론에서 많이 나오는 추측은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 탈북했다는 점이다. 또, 대북제재로 북한 외교관들의 활동에 제약이 커지고 생활도 궁핍해진 현실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때 추방당한 BBC 기자의 입국보증 담당자가 태영호였고, 그에 따른 문책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 직접적인 동기 중 하나라는 주장도 있다.출처 태영호 자신에 의하면 노예처럼 살며 김정은이 노예주인 북한 사회에서 벗어나 자식들만이라도 노예 사슬을 끊어주고 싶어 탈북하였다고 한다.

북한 당국의 입장이 나오지 않았지만 북한 관계자는 한국 정보당국이 뇌물을 줬거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위 사진에서 나온 BAe 146편은 영국항공의 암만에서 히드로로 가는 항공편(BA146)이 아니라 브리티시 에어로 스페이스라는 항공기 제작 회사의 비행기의 이름이다. 애초에 영국항공의 세자리 ICAO 코드도 BAW로, BAe 146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당 사건 진행을 볼 때 보안 유지를 위하여 영국 공군이 보유한 VIP 전용기인 BAe 146 여객기 4대 중 한 대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이후 자세한 내막이 공개되었다. 북한을 떠나겠다는 생각이 든 후 골프장에서 영국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처음 접촉한 뒤, 미국 요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어디든 갈 수 있었지만 남한으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후 7월 어느날 새벽 영국 공군기지를 떠나 독일의 미군 기지인 람슈타인 공군기지에서 한국행 A330 여객기를 타고 들어왔다.

그리고 태영호의 부인 오혜선이 빨치산 가문의 딸이 아니라고 돌기도 했지만 국정원에서 직접 빨치산 가문이 맞다고 했으며, 2남 1녀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두 아들만 두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군사기밀 유출 건으로 탈북을 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태영호 공사 본인이 입국후 주성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북한 외교관은 주재국의 군사과학기술을 빼내라는 지시를 매년 1회 받긴 하나 강제성은 없다고 한다. 기술을 빼내는데 성공하면 표창 등 포상을 받지만 성과가 없다고 해서 처벌하지는 않는다며 자신은 실제로 시도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북한 외교관이라서 더더욱 MI5, MI6, GCHQ와 같은 영국 정보기관들의 감시를 받는데 섣불리 움직이다 걸리면 추방당할 위험이 높다.

2016년 12월 23일부터 조사가 끝나고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내에서의 사회 활동에 나서게 된다. 2016년 12월 국방위 의원들과의 회견에서 그는 북한의 지속적인 신변 위협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위하여 대외 활동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천명했다. 그리고 "북한에서 자기 자신을 두고 자금 횡령 등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이 무서워 도주했다고 비난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자신의 망명에 북한 측이 그런 말을 할 것을 대비하여 미리 대사관 내 자금 현황을 문서로 정리하고 그걸 사진까지 촬영해 놨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보도와는 달리 자신에게는 아들 둘만 있고 딸은 없으며 현재 가족 전원이 대한민국에 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12월 23일, 첫 공식 일정으로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했다. 촛불시위에 대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국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과 청문회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고 한다., 2016년 12월 29일 주성하 기자와 이만갑 측과의 인터뷰 자료에 따르면 기자 간담회에서 한 만세는 노예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쁨에서 취한 제스처이며, 원래 공항에서 하려고 했으나 사람들이 없었고 주변에서도 말려서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연설단이 없어서 못할 뻔했는데, 다행히도 기자 간담회가 있어서 한 것이라고 한다. 그 만세 이후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자기에 대한 환영 댓글보다는 공개 장소에서 만세를 한 것이 누군가가 시켜서 한 거냐는 내용 일색이라는 것에 제법 놀랐다고 한다.

2017년부터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소속으로 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주영 대사가 교체되어 최일 외무성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최일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북한 김씨왕조가 핵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는 유고 내전때 미군이 폭격하는 것을 보고 북한의 급변상황시 이처럼 미국이나 한국의 군사적 개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그런거고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 구조상 암살이나 군사쿠데타는 거의 불가능하고 내부 봉기가 현실성있다고 했다. 그리고 1994년 북핵위기를 벗어나는 데 결정적으로 맺은 제네바 합의에 대해서 빌 클린턴과 김정일의 사기 합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태영호의 가족들은 북한의 선전에 이용되었다. 그리고 탈북 이후 첫 공식 방미에서 미 하원 외교위원회서 김정은 정권의 목표는 핵 개발 완료한 다음 미국과 협상을 벌어서 협상 대상 중 주한미군 철수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CNN에 출연했다.

2018년 5월 자유한국당 소속 심재철 국회부의장이 태영호를 국회로 초청해 강연을 했으며 이 강연을 문제삼아 북한에서는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했다. 그리고 김정은을 비판하는 내용의 저서를 낸 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사직하였다.

같은 태씨 5촌 친척과도 만났다고 한다.2018년 8월 15일, 보수진영 건국절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탈북 직후 기자회견에서의 만세를 또 보여주었다.

2019년 남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 "북한은 지난 30년간 동일한 대화 패턴을 거듭해왔다", "지금으로선 비핵화 의사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19년 6월부터 국민통일방송에 태영호의 북한매체 읽기를 주마다 내보내고 있다. 이전 2018년 7월 ~ 11월 칼럼을 내던 것의 연장. 2019년 말일까지 기고하였고 2020년부터는 후술할 정치활동으로 중단 되었다.

2019년 9월 현재에는 탈북자들과 함께 '남북함께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를 조직하여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주로 대학교, 보수단체, 교회 및 미국, 영국, 호주 등 영미 국가 등을 돌면서 강연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강연활동도 하면서 틈틈이 3층 서기실의 암호의 후속작의 집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며, 북한의 주체사상과 기독교 등 종교와의 공통점을 드러내는 저서가 될 것이라고 한다.

2019년 9월 19일, 태영호 前 주영 공사가 대만 타이베이를 찾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관련하여 미국 타임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여기에서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에서도 20년 내에 홍콩과 비슷한 시위가 일어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2020년 1월 3일, 유튜브에 태영호tv를 개설했다.2020년 2월 10일 자유한국당 입당을 선언했다. 문재인 정권이 탈북 선원을 강제로 송환한 것을 보고 출마를 결심했다고 한다.

21대 총선에 지역구로 출마한다고 한다. 북한에서 암살을 위해 사람을 보낼 수도 있기 때문에 유세 때는 경찰의 호위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태영호는 주민등록상 이름인 '태구민'으로 출마한다고 밝혔다. 신변 문제로 이름을 태구민으로 하였으며 구원할 구(救)에 백성 민(民)자를 써서 북한의 형제자매들을 구원해보겠다는 의미이다.

2020년 2월 26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강남구 갑 지역구로 전략공천 되었다.

이후 지역구 현역 의원인 이종구 의원23에게 부동산, 세금 등 강남의 현안에 대해 듣고 시, 구의원들에게 강남의 현 상황과 코로나 사태 대처방안 등에 대해 보고를 받고 상의하는 등 본격적인 지역구 활동에 나서고 있다. 더불어 강남스타일로 대표되는 한국의 자유시장경제의 우수성에 대해 역설하며 "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교과서와 매스컴을 통해 간접적으로 밖에 경험하지 못한 사회주의 국가기획경제24에 대한 허구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살았다. 대한민국의 자유시장경제체제가 북한식 기획경제체제로 변질되는 것을 막겠다"고 발언하여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한편 김종인 前 의원이 미래통합당의 선대위원장직을 맡는 조건으로 강남 갑의 태영호 공천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김 前 의원은 인터뷰를 통해 태영호 공천은 국가적인 망신이며 태영호가 강남하고 무슨 관계가 있냐면서 남한에 뿌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태영호는 3월 13일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저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선대위원장으로 거론되는 분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자신은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고, 막말을 한 적도 없고, 뇌물 수수로 실형을 받은 적도 없다며 강남 갑 공천이 잘못된 이유를 국민적 눈높이에서 밝히지도 못하면서 유권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유가 납득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뇌물 수수로 실형을 받은 적도 없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이유는 김종인 前 의원이 지난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 뇌물수수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었던 전력을 일종의 돌려까기 형식으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종인은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에 임명되고, 태영호에게 사과하고 화해하였다. 그리고 서로 협력하기로 다짐하였다.

만일 총선에서 당선될 경우 최초의 탈북자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이 된다.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으로는 2012년 19대 총선 때 당선된 조명철 의원의 선례가 이미 있으나 조 의원은 당시 비례대표(새누리당) 의원이었다.

선관위에 신고된 태영호 가족의 총 재산은 18억 6천 5백만원 이었다. 탈북한 지 4년 만에 18억을 모은 것인데, 재산 형성 과정을 밝힐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또한 1992 및 1997년생 두 자녀의 재산이 각각 1억 4천만원으로 신고되었는데, 스스로 그 정도 돈을 모으기에는 자녀들이 어리므로 정상적으로 증여가 되었는지 밝히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북한 특권층이었던 태 후보가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특권층으로 살아가고 있음이 드러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태영호 측 관계자는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축적됐고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이 설 것"이라며 "세금 냈던 내역을 뽑으면 다 나오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선관위에 신고된 납세 내역에 따르면 태영호 본인은 2017년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았고, 2018년에는 1116만원, 2019년에는 1억 1858만원을 소득세로 납부하였다. 종합소득세 세율에 따라 계산하면 2018년에는 6천 8백만원, 2019년에는 3억 5천 9백만원으로 총 4억 2천 7백만원을 번 것이다.26 태영호 측의 주장과 달리 납세 내역으로는 전체 재산의 1/4 가량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소득 전체를 기타소득으로 가정하고 필요경비 60%를 제외하면 총 소득은 10억 6천 7백만원 가량이지만 여전히 8억 가량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소득이 주로 기타소득이었다면 기타소득을 누가 제공했는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첫째 자녀의 경우 이제까지 총 3만 1천원의 소득세를 냈고 둘째 자녀는 소득세를 낸 적이 없으므로 각각 보유한 1억 4천만원은 증여에 의한 재산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각각 1천 8백만원의 증여세를 납부할 필요가 있는데 증여세는 국회의원 후보가 공개해야할 대상이 아니므로 납부 여부를 알 수 없다. 참고로, 재산이 임차보증금, 전세보증금과 예금 등으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를 납부하지 않았다.

박형준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장은 '김현정의 뉴스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 재산 논란에 대해 '(태영호 후보가)강연도 많이 했고 책도 써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었고 여러 가지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서 재산을 모은 것이다. 자유시민으로서 그게 북한과 대한민국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삼남이자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14번 후보인 김홍걸이 박형준 미래통합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의 '강연도 많이 했고,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로 만들었고, 여러 가지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서 재산을 모은 것이다.'라는 발언에 대해 '가난한 탈북민은 노력하지 않은 것이냐'라며 발언하였다. '김제동한테는 강연료 비싸게 받았다고 비난하더니, 태영호는 왜 감싸냐?'는 반응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인 것은 김제동 고액 강연료 논란의 핵심은 단순히 강연 출연료가 비싼게 아니라 개그맨인 김제동이 자신의 본업, 전공 등과 관련 없는 내용을 강연하면서 부족한 전문성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는데도 그렇게 비싼 출연료를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태영호는 외교를 전공하고 외교관으로 근무한 외교 전문가로서 외교 관련 강연을 하고 강연료를 받은 것이다. 김제동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주영 공사로 근무하던 시절 외교에서는 골프 사교가 중요하다고 하여 골프를 쳤는데, "골프채를 놓지 않으면 평양으로 돌아가겠다"는 부인의 항의에 골프 대신 테니스를 선택했다고 한다. 때문인지 탈북 때 골프채를 가지고 왔다는 가 있었지만, 태영호는 자신이 골프를 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으며 오보라고 밝혔다. 실제로는 골프채 대신 빵집을 차려서 먹고 살려고 제빵과 관련된 책을 많이 가져왔다고 한다.탈북 전에 한국 교민과의 접촉도 꺼리지 않았고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김정일 사망 때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탈북자들이 난입,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축하드리며'라는 유인물과 김정일의 영정 사진을 대사관 건물에 붙이고 만세를 부르는 행위를 벌인 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대사관 직원(문명신 2등 서기관)'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가 유인물을 떼어내면서 김정일의 사진을 찢고 구겨서 처리하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이 일로 문제가 생겨서 북한 대사관 내에서 연일 심각한 회의가 있었는데, 태영호의 강력한 선처 주장으로 살아났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주성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 증언은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태영호는 김정일 사망시에 북한에 있었고, 2013년부터 다시 대사관에서 활동했다. 또한 문명신이 숙청 당하지 않은 이유로는 모르고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2015년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이 영국 런던으로 에릭 클랩튼 공연을 보러갔을 때, 25년 지기인 현학봉 대사와 함께 김정철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한 적이 있다.태영호의 부인 오혜선은 북한군 총참모부 오금철의 일가이며, 오금철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자 로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의 아들이다. 북한판 성골인 '항일 빨치산 가문'이 탈북해 입국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다.27 오혜선은 대외무역 · 외자유치 · 경제특구 업무를 맡고 있는 대외경제성에서 영어 통역을 담당했으며, 홍콩을 거쳐 런던에 왔다고 한다.

그의 큰 아들은 영국의 한 대학에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았고, 덴마크에서 태어난 작은 아들은 막 고교를 졸업하고 임페리얼 칼리지 진학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사족으로 작은 아들은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를 자주 했다고 하며, 심지어 닉네임은 폴란드볼을 비롯해 영미권 인터넷에서 북한을 비꼬는 의미의 밈으로 쓰이는 North Korea is Best Korea라고 한다. 그 외에 2017년 1월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큰 아들은 대학 졸업을 하지 못하고 바로 대한민국으로 귀순하였기에 대한민국에 와서 다시 대학을 다닐 예정이라고 한다.북한 외교관 및 해외 주재원의 탈북 사례는 해당 사건 이전부터 여러차례 있어 왔는데 대표적인 사례로는 1997년에는 장승길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가 부인과 형(장승호 프랑스 주재 북한 대표부 참사관)과 함께 탈북하여 미국에 망명하는 일도 있었으며, 태영호 이전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외교관 출신 탈북자로는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으로 있는 고영환(당시 직책은 콩고 주재 북한 대사관 참사관이었다)이 있다.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 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감은 오래 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건 이후 25세 이상 해외 거주 외교관 자녀의 평양 소환령이 떨어져 맏아들이 평양에 돌아가야 할 상황에 놓이자 가족들이 매우 힘들어 한 것이 탈북의 결정적 계기였다고 한다. 원래 외교관은 자녀 한 명만 데려올 수 있었지만 간청으로 두 명 다 해외에 있을수 있었고, 해외 인재를 키우라는 김정은의 명령으로 자녀 모두 해외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2년 만에 조치가 번복되어 소환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탈북 전에는 북한 대사관 인근 아파트에 살았다고 한다.

태영호 탈북 이후 모 학생이 이를 인용해 해외 주재 북한 대사관에 장난전화를 건 사건이 있다. 북한 전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대장의 숙청 사유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 고위층 인사들에 대한 정권의 감시가 일상화된 상황에 자택에서 말을 잘못한 것이 발각되어 처형당했다는 것이다.한국 드라마 중 불어라 미풍아를 즐겨 보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해당 드라마의 주인공과 출연자들이 같은 외교관 출신의 탈북 가정이기 때문에 동질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랑의 불시착은 어떻게 보셨을까 궁금해진다 또한, 이만갑, 모란봉클럽,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배나TV의 몰랐수다 북한수다같은 탈북자 관련 방송도 자주 봤다고 한다. 드라마 같은 TV 프로그램과 달리 탈북자이면서도 대한민국 유력 신문사들 중 하나인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 중인 주성하 기자에 대해서 평소에 존경해왔다고 밝히면서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도 꾸준히 읽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6년 12월 29일 동아 미디어 센터에서 주성하 기자와 이만갑 출연으로 유명세를 탄 여성들 중 하나인 신은하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시절 당에서 한국 휴대폰을 경계하여 삼성 휴대폰 사용 금지령이 내려졌지만 평양에서는 한국산 휴대폰 중 LG전자가 있다는 것은 몰라서 LG 폰을 사용했다고 한다.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국 술이 참이슬이라고 밝혔다. 망명 초기에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많이 마셨으나 아내의 만류와 북한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을까 하는 걱정에 요즘은 술을 줄였다고 한다. 실제로 1983년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 전 대한민국 공군 대령이 북한의 가족 생각에 술을 먹다가 원인이 되어 2002년 간 기능 부전증으로 사망한 적도 있다.

1997~8년 사이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한국 영화를 보았는데, 그게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이었고 영화 후반부에서 후퇴하는 인민군이 주민을 학살하는 것을 본 김범우(안성기)가 공산주의자인 염상진(김명곤)에게 "당신들은 그런 식으로 사람의 목숨을 귀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에 실패한 거요. 아주 철저히 말이오. 사람들을 수단으로 삼고, 사람들의 증오에 토대하는 한 그 어떤 사상도 사람들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고 일갈하는 장면, 나아가 무수한 숙청을 지켜보며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라며 고민하는 염상진의 모습을 보고, 북한 체제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되었고, 이것이 훗날 "한국으로의 귀순을 결심하는 계기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영화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이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반공분자들이 불결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용공영화인지 반공영화인지 구분이 안갔지만 영화가 흐르면서 (좌우익을 막론하고 제각기) 정의로운 이상을 표방하면서도 자기의 사상과 대치되는 모든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없애버리는 것이 북한의 실상과 매우 유사했다며 "영화가 흐르면서 느낄 수 있었던 사상(메시지)은 참으로 심오한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암살을 우려해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그의 말에 의하면 이미 자신 뿐만 아니라 한국에 왔거나, 올 예정인 공개가 되지 않은 북한 외교관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BBC 서울-평양 특파원 스티브 에반스가 밝히길 그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커리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뇨병이 있어 난이나 밥 없이 먹는다고 한다.

'감.옥.행'이라는 구 통진당 계열의 종북 대학생 연합단체에서 박상학과 태영호를 잡아서 감옥 혹은 북한으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잠적한 것으로 알려진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와 인연이 있다.조명철 前 자유한국당 의원, 강철환 조선일보 기자,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임영선 탈북동지회 회장,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과도 친한 사이이다. 또한 최근에는 강남 갑에 출마선언을 하면서 강남 갑 현역의원인 이종구 의원과도 가깝게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위의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개인적으로 2030년대까지 북한에서 급변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모양이다.

4·15총선 서울 강남갑에 출마한 태구민 미래통합당 후보가 당선을 확정 지으면서 탈북민 출신 첫 지역구 의원이 됐다. 태 후보는 이날 새벽 당선이 확실시되자 강남구 선거사무소에서 선거원들과 함께 애국가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저의 조국이고, 강남은 저의 고향”이라며 당선 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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